문화·스포츠 문화

이상균 독도연구소 연구위원 "맵 트레이드 관점에서 봐도 독도는 우리땅"

"日 20세기 이후에 죽도로 지칭

고유 영토로 인식 안했단 증거"




대한민국 영토인 독도에 대한 일본의 끈질긴 도발 속에 ‘맵 트레이드(Map Trade)’의 새로운 관점에서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이 얼토당토않다는 것을 학술적으로 입증한 국내 연구자가 있다. 동북아역사재단 독도연구소 이상균(사진) 연구위원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이 연구위원은 최근 서울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일본은 죽도를 19세기 초까지는 울릉도, 19세기 중반부터 후반까지는 아르고노트, 20세기 이후에는 독도를 지칭하는 말로 사용한 것으로 나타났는데 이는 일본이 역사적으로 독도를 고유영토로 인식하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맵 트레이드에 관여했던 대다수의 행위자들이 의도하지는 않았겠지만 맵 트레이드를 통해 재생산되는 지도에 울릉도와 독도는 대부분 일본이 아닌 한반도의 동해상에 가깝게 표현됐다”고 밝혔다.

맵 트레이드는 단순하게 지도를 사고파는 매매 행위로 볼 수 있는데, 이 연구위원은 다양한 국적의 행위자들 간에 지도를 포함한 다양한 형태의 지리정보 수집, 교류, 전파에 이르는 수준까지 확장할 것을 제안했다. 그는 “영토문제를 맵 트레이드와 지도제작의 관점에서 살펴본 연구는 지금까지 없었다”며 “영토문제라는 특수한 테마를 지도제작이라는 보편적 프레임에 끼워 다뤘다”고 설명했다.


맵 트레이드 연구의 분석대상은 대부분 서구에서 제작된 지도인 만큼 서구의 관심을 끌 수 있다는 것이 이 연구위원의 생각이다. 그는 “영토 문제를 제 3자가 어떻게 보는지가 점점 중요해지는 만큼 독도의 영토주권을 수호하는데 있어서 일방적으로 우리 이야기만 하거나 일본을 공격하는 이야기만 늘어놓는 것은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관련기사



18·19세기에 서양에서 제작된 세계지도에는 놀랍게도 울릉도와 독도가 표현된 경우가 많다. 어떻게 독도처럼 작은 바위섬이 세계지도에 표현될 수 있었을까? 이 연구위원은 “대한해협을 통과하여 베링해를 향해 북동 방향으로 항해한다면 동해 상에서 이정표 역할을 했던 섬이 바로 울릉도였다”고 말한다. 독도도 마찬가지로 서구의 포경선들에 의해 자주 목격되었으며, 특히 러일전쟁 중에는 전략적인 중요성이 두드러져 일본에서는 1905년에 서둘러 이 섬을 시마네현에 불법적으로 편입시키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 연구위원은 14일 동북아역사재단이 독도연구소 개소 10주년을 맞아 개최하는 학술회의에서 김종근 연구위원과 공동발표하는 ‘영국 탐험가 제임스 콜넷의 동해항해와 아르고노트 섬의 발견’에서 이 같은 연구내용을 소개한다. ‘죽도’가 지칭하는 지역이 계속 바뀐 것은 단순한 착오가 아닌 일본의 지리지식이 단절됐다는 사실이 드러난다는 것이 두 연구위원의 주장이다. 이날 이 연구위원은 안옥청 박사(프랑스 사회과학고등연구원)와 공동발표하는 ‘프랑스 군함 카프리시으즈호의 동해탐사와 울릉도·독도 인식’에서도 프랑스 포경선 리앙쿠르호가 독도를 발견한 이후 프랑스에서 제작되는 지도에 독도가 표현되는 과정을 추적한다.

앞서 이 연구위원의 논문 ‘19세기 극동에서의 맵트레이드와 독도의 발견’(The Map Trade and the Discovery of Dokdo in the Far East in the 19th Century)은 지난해 12월 러시아 블라디보스톡 네벨스코이 국립해양대학교에서 발행하는 영문저널 ‘해양과학 & 교육 아태 저널(Asia-Pacific Journal of Marine Science&Education)’ 7호 2권에 실리기도 했다. 이 논문은 독도 이슈를 맵 트레이드의 관점으로 접근한 연구로 주목을 받았는데, 특히 ‘독도’를 표제로 한 논문이 해외의 해양 저널에 실렸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김현진 기자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