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네수엘라에서는 한 달 동안 일해도 이틀밖에 먹을 수 없다. 우리는 베네수엘라를 벗어나거나 굶주림으로 죽는다.”
사상 최악의 경제난을 겪고 있는 베네수엘라가 남미의 시한폭탄이 되고 있다. 상상을 초월하는 인플레이션과 식량 부족에서 벗어나기 위해 베네수엘라인들의 ‘엑소더스’ 행렬이 줄을 잇지만 니콜라스 마두로 정부는 실효성이 부족한 경제정책만 꺼내 놓으며 되레 경제난을 부추기고 있다. 마두로 정권의 반인도적 권위주의와 그에 따른 극심한 경제난으로 외교적 고립도 가속화하는 가운데 베네수엘라는 사실상 국가 기능을 상실해가고 있다.
20일(현지시간) 파이낸셜타임스(FT)와 가디언 등에 따르면 베네수엘라에서는 이날부터 볼리바르화 가치를 95~96% 평가절하한 새 통화인 ‘볼리바르 소베라노’를 도입했다. 기존 통화에서 ‘0’을 5개 떼어낸 새 통화는 베네수엘라가 자국산 석유에 토대를 두고 만든 암호화폐 ‘페트로’와도 연동된다. 현재 1페트로의 시세가 미화 60달러 수준임을 고려하면 1달러는 60볼리바르 소베르노가 된다. 베네수엘라 정부는 다음달 1일부터 최저임금 인상에도 나선다. 액면가 기준으로는 60배, 암시장 달러 환율로는 34배 인상이다. 이는 모두 지난 17일 마두로 대통령이 발표한 90일 경제회복 계획의 일환으로 올해 물가상승률 전망치가 100만%에 달할 정도의 하이퍼인플레이션으로 나라 경제가 붕괴된 가운데 나온 긴급대책이다.
실효성 부족 정책에 혼란만 가중
반인륜 행태까지…“최악 비극”
하지만 정부의 이 같은 정책은 시행 첫날부터 더 큰 위기에 대한 불안만 증폭시키고 있다. 당장 화폐개혁으로 은행들이 문을 닫으면서 거리에는 현금 부족으로 빵 한 덩이도 사지 못해 발을 구르는 시민들이 속출하고 있다. 경제 펀더멘털을 탄탄히 하는 구조개혁 등이 수반되지 않는 상황에서 통화가치를 절하하면 혼란만 가중시킬 것이라는 지적도 빗발친다. 베네수엘라는 지난해 11월 초고액권인 10만볼리바르를 발행한 후 올해 7월 볼리바르를 10만에서 1로 액면절하한 바 있으며 최저임금도 이미 네 차례나 올렸다. 스티브 한케 존스홉킨스대 경제학과 교수는 “새로운 볼리바르를 페트로와 연결하는 것은 사기”라며 “외관은 달라지지만 실제로는 아무것도 변하지 않을 것”이라고 비판했다.
일각에서는 최저임금 인상이 베네수엘라 이민자들을 더욱 늘릴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경제가 호전되지 않는 가운데 급격하게 임금이 오를 경우 당장 기업들이 고용을 줄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5월 발표된 유엔 자료에 따르면 2014년 이후 150만명이 넘는 난민들이 베네수엘라를 떠나 인접국인 브라질·페루·에콰도르 등에서 골칫거리가 되고 있다. 여기에 마두로 정부의 반인륜 행태가 이웃 국가들의 공분을 사며 중남미에서의 외교적 고립도 심화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날 아르헨티나 정부는 콜롬비아·칠레 등의 지지를 얻어 베네수엘라의 반인륜 범죄를 국제형사재판소(ICC)에 조만간 보고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야당 지도자인 엔리케 카프릴레스는 “마두로 대통령은 석유부국을 역사상 가장 큰 마지막 비극으로 몰아넣었다”고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