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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인터뷰] ‘살아남은 아이’ 김여진 “ ‘유가족’이란 한 단어로 규정 짓지 말라”

“다른 사람의 슬픔에 대해 함부로 판단해선 안 돼”

‘살아남은 아이’ 타인의 감정에 섬세하게 공감하는 영화

인생은 그래도 계속된다...“다음 스텝이 있어요”

“아이가 죽었다”는 말을 입 밖으로 내뱉는 순간, 눈에 눈물이 고이는 배우 김여진, 그가 아들을 잃은 후 실의에 빠진 엄마 역으로 돌아왔다.

“아이를 잃었다...저 같으면 죽을 것 같아요. 이 슬픔이 사라지거나, 이 아픔이 극복이 되거나 추억이 될 수 없다는 걸 알아요. 떠 안고 가야하는 감정이죠. ‘괜찮아졌다’ 그게 불가능한 것 역시 알아요. 그래서 이렇게 감정이 차오르나 봐요.”


지난 30일 개봉한 ‘살아남은 아이’(신동석 감독, 아토ATO 제작)는 아들이 죽고 대신 살아남은 아이와 만나 점점 가까워지며 상실감을 견디던 부부가 어느 날, 아들의 죽음에 관한 비밀을 알게 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 영화다. 신동석 감독이 메가폰을 들었고 최무성, 김여진, 성유빈 등이 출연한다. 제 68회 베를린국제영화제 포럼 부문에서 공식 초청을 받은 데 이어 제20회 우디네극동영화제에서 화이트 멀베리상을 수상하며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배우 김여진, 사진제공 CGV아트하우스배우 김여진, 사진제공 CGV아트하우스



김여진은 처음 ‘살아남은 아이’라는 제목을 처음 봤을 때에는 고사 할 생각이었다고 했다. 너무 힘든 영화일 거라는 두려움이 덜컥 들었기 때문이다.

“처음 제목을 봤을 때 제일 힘들었어요. 제목 자체가 주는 무게감이 있잖아요. 산 아이가 있다면 못 살아남은 아이도 있을 것 같아 좀 꺼리는 마음이 있었어요. 우리 영화의 제목을 처음 접한 분들도 아마 느끼지 않을까 싶어요. 그런데 막상 읽으니 빠져들어 몰입됐어요. 슬플지언정 공감할 수 있는 감정선들이 느껴졌거든요. 다른 사람의 슬픔이나 불행에 대해 가졌던 제 태도도 돌아보게 한 작품이죠.”

미제로 남은 개구리소년들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 ‘아이들...’(2011) 이후 7년 만에 스크린에 복귀한 김여진은 다시 한번 아픔을 간직한 어머니 역을 맡았다. 하지만 그녀는 이번 영화를 ‘세월호 영화’라고 보는 선입견에 일침을 날리기도 했다. 그렇기에 ‘유가족을 대상화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라는 말을 전했다.

“유가족‘, ’피해가족‘ 이런 한 마디의 단어로 가둬버리지 않았으면 해요. 아이 잃은 부모라고 하면 그 사건만을 거론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주위를 둘러보면 정말 많은 사건과 재해들로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 가족들이 많거든요. 그저 평범한 부부가 아들을 잃고 그 감정의 변화의 길을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그들의 슬픔을 판단하기보다, 제대로 들여다볼 수 있었음 해요.”

‘살아남은 아이’는 타인의 슬픔을 대하는 법에 대해 잔잔히 이야기를 던진다. 영화는 슬픔의 상태에 빠진 이들이 ‘무엇으로 위로 받을 수 있을까’ ‘상대방을 어떻게 애도를 해야 하나’라는 감정의 이야기를 따라간다.

“극중 아이를 잃은 같은 슬픔을 겪고 있는 부부의 모습이 달라요. 남편 성철(최무성 분)과 미숙이 느끼는 감정, 반응하는 방법 역시 달라요. 그랬을 때 미숙이가 기현(성유빈 분)에게 큰 위로를 받는데 그 모습을 보고 ‘이게 뭘까’ ‘사람이 정말 슬플 때 그 무너진 마음을 일으켜주는 건 뭘까’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슬픈 마음이 움직이는 ‘길’ 같은 것을 느꼈어요. 그리고 마지막에 ‘어떻게 용서가 가능한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있어요. 거기에 대한 답은 관객들이 각자 다르게 가져가실 수 있을 듯 해요.”

김여진은 ‘살아남은 아이’ 작품을 함께 하며, 상대방의 슬픔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를 배웠다고 했다. 가장 큰 수확은 생각의 변화이다. 그녀는 “우리는 정말 그 사람의 마음 속에는 들어가지 못한다. 그럴 때, 입을 다물어야 한다”고 말했다. 누군가의 상처의 길을 함부로 헤집지 말아야 한다는 의미로도 읽혔다.


“한 줄짜리 기사를 보더라도 우리는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아주 쉽게 판단하는 게 있어요. 이 작품을 찍은 후엔 그들의 상처를 얘기할 때 더 조심스러워지더라고요. 각기 다른 크기의 슬픔을 당사자가 아닌 이상 누가 다 들여다 볼 수 있을까요. 누군가 정말 슬퍼한다면, 이젠 쉽게 입을 떼지 않을 것 같아요. ‘내 의견을 꼭 말하지 않아도 된다’라는 생각이 많이 들더라고요. 그냥 옆에 있어주는 게 최선이지 않을까요.그가 슬픔에서 나올 수 있을 때까지 세심하게 대하고 기다리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김여진 역시 이번 영화를찍으면서, ‘나는 자식을 잃은 부모’라는 슬픔의 감정에 짓눌리지 않으려고 노력했다고 한다. ‘슬픔’이라는 명제에 빠지면서 캐릭터가 손상되거나 감정의 폭이 좁아질 우려를 했던 것. 오히려 시나리오 속 미숙은 ‘눈물도 나지 않는 미숙’으로 표현이 돼 있었다고 한다.







“슬픔에 빠진 인물이라도 24시간 내내 슬픔에 빠져 있지 않아요. 삶은 계속 되는 거잖아요. 가끔씩 ‘그만 좀 하라’ ‘아이 잃은 사람이 왜 저렇게 멀쩡해?’ 등의 말들도 하잖아요. 표정, 말투 등에서 미숙이 어떤 사람이고 어떤 슬픔을 겪고 어떤 방식으로 살고 있는지 그 개인 자체에 집중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정말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아픔과 불행의 감정 상태를 잘 들여다 보려고 했어요.”

영화 ‘처녀들의 저녁식사’로 데뷔한 이후 데뷔 20년을 맞이했다. KBS2 ‘구르미 그린 달빛’, KBS2 ‘마녀의 법정’ 등 다양한 장르의 드라마를 통해 연기력을 인정받은 배우. 그는 이창동 감독의 ‘박하사탕’(2000)을 18년 뒤에 다시 보며 여러 감정이 들었다고 고백했다. 18년 전 홍자였던 김여진은 이제 훌쩍 큰 엄마 ‘미숙’으로 돌아와 있었다. 20대 마지막에 찍은 영화 ‘박하사탕’은 배우 개인에게도 너무나 큰 비극으로 다가와 큰 상실감을 남겼다고 했다.

“남편에게 버림받은 만삭의 홍자가 너무 안쓰러워서 울었어요. 그 소녀가 결국 제대로 사랑받지 못하고, 남편도 잃는다는 게 너무 슬펐거든요. 당시 그 캐릭터에서 빠져 나오기가 많이 힘들었어요. 얼마 전 ‘박하사탕’이 재개봉하면서 영화를 다시 봤는데 다른 느낌이 들었어요. 40대가 되고, 한 아이의 엄마가 된 뒤 보니, 홍자는 왠지 그 슬픔에서 걸어 나와서 자신의 삶을 살아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는 두 영화를 통해 배운 인생 메시지로 “인생은 그래도 계속된다. 다음 스텝이 있다”는 말을 했다.

“슬픔이 다가오면 ‘이게 끝이다’는 말을 하기도 하는 데 그런 건 없어요. 20대 땐 홍자의 그 이후의 삶을 잘 그리지 못했어요. 그때의 상처에만 빠져 있었거든요.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홍자는 교회도 잘 다니고, 연애도 다시 할 것 같아요. 이후의 삶을 살아갈 수 있을 것 같아요. ‘살면서 죽을 만큼 힘든 순간이 올 때가 있는데 그래도 살아야 한다’고. 마치 모든 게 끝난 것 같지만 그게 다가 아니다‘는 생각이 계속 들어요. 미숙도 비극을 겪었지만 살아내거든요. ”

‘살아남은 아이’의 마지막 장면은 그에게 ‘인생은 계속된다’는 화두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게 만들었다. 그는 그 장면을 두고 “살아남은 아이(기현이)이기도 하지만 살아남은 미숙을 보여주는 장면”이다고 말했다.

“다른 표현 없이 ‘살아남았다’는 말이 맞겠죠. 절대 벗어날 수 없을 것 같은 곳에서 벗어나 숨을 고르고 있는 미숙을 볼 수 있어요. 그 전엔 미숙은 반쯤 죽은 상태였어요. 다른 사람 눈엔 살아있는 것처럼 보였겠지만요. 기현과 모든 일을 겪고, 저 역시 구원 받았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촬영하면서도 ‘이제 살 것 같아’ ’살았다‘ 는 느낌을 받았어요. 그 순간 살았으니까 숨을 셔야죠. 그 순간 숨이 특별했어요. 내가 세상에 태어나 처음 쉬는 숨처럼요. 내가 호흡하고 있구나. 살아있구나. 이 사람들과 함께 살아남았구나란 생각을 하게 한 장면입니다.”

‘살아남은 아이’는 김여진에게 “타인의 감정에 섬세하게 공감할 수 있는 힘을 준 영화”로 남을 듯 했다.

“어떤 슬픔과 아픔을 겪을 수 있겠지만 늘 그 이후가 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은유나 비유가 없는 영화입니다. 슬픈 사람의 마음 상태가 저렇고, 저렇게 변할 수 있구나라고 담담하게 보여주고 있어요. 마음을 열고 영화를 지켜봐주신다면, 타인의 감정에 공감할 수 있는 힘이 생기지 않을까 생각해요. 타인의 아픔을 온전히 이해할 순 없지만 더 섬세한 공감이 생겼으면 해요.”

정다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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