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스포츠 문화

"인생 닮은 '사각 공간'…한국무용으로 채웠죠"

국립무용단 '더 룸' 안무가 김설진

방을 나설 때 늘 놓고온 물건있듯

삶 떠날때도 방문 닫을때와 비슷

몸의 표정이 선명한 한국무용

호흡법에서 작품의 깊이 더해져

국립무용단과 함께 신작 ‘더 룸’을 선보이는 현대무용수 겸 안무가 김설진 /사진제공=국립무용단국립무용단과 함께 신작 ‘더 룸’을 선보이는 현대무용수 겸 안무가 김설진 /사진제공=국립무용단



현대무용수이자 안무가 김설진(37)은 대중에겐 ‘갓설진’이라는 별명으로 통용될 만큼, 그 이름 자체로 현대무용을 상징하는 안무가다. 그런 그에게 방은 늘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공간이었다. 무용수가 되고 싶어 일찌감치 고향을 떠났던 제주 소년, 이제는 해외에서 더욱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그에게 ‘집’보다는 ‘방’이라는 단어가 늘 머리 속을 부유했던 것은 당연할지도 모른다. 스스로 ‘도시 유목민’이라 할 만큼 이 방 저 방을 떠도는 생활이 그에겐 오히려 일상인 탓이다. 작품을 만들 시간이 턱없이 부족해 늘 호텔 방에서 안무를 짰다는 그의 눈에 방은 기억이자 기록이며, 삶의 중첩이자 죽음이다.

유럽에서 선보였던 솔로 작품에 이어 그가 창단한 크리에이티브 그룹 무버에서 선보였던 ‘룸’까지 여러 차례 방을 주제로 작품을 만들었지만 그의 이야기는 아직 끝나지 않은 모양이다. 이번에는 그의 방 안에 한국무용을 담아보기로 했다. 오는 8~10일 국립극장 달오름에서 공연하는 국립무용단 신작 ‘더 룸’을 통해서다.

막바지 공연 준비 도중 짬을 내 서울경제신문을 만난 김설진은 “방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하다 보니 방안에 머물다 간 인간을 떠올리게 됐고 방이라는 공간이 사람의 인생과 닮았다는 생각에 이르렀다”고 자신의 ‘더 룸’ 안무를 소개했다. “아침에 방문을 닫고 나오면 꼭 두고 나온 게 있어요. 삶을 떠날 때도 꼭 그럴 것 같아요. ‘아참 미처 못 한 게 있네’ 하고 말이죠.”


드넓은 스펙트럼을 자랑하는 춤꾼이지만 김설진과 한국무용의 조합이 관객들로선 낯선 게 사실이다. 하지만 그는 이미 한국무용의 진수를 간파했다. “한국무용수들은 몸의 표정이 정말 진해요. 한국무용의 에센스는 발달에 깔려 있는 호흡이죠. 외국무용수들은 절대 흉내 낼 수 없는 한국무용의 호흡법에서 작품의 깊이가 더해져요.”

관련기사



국립무용단 신작 ‘더 룸’ /사진제공=국립무용단국립무용단 신작 ‘더 룸’ /사진제공=국립무용단


현대무용에선 무용수들의 삶과 생각을 작품에 녹여내는 창작 방식이 일반화했지만 한국무용에선 드문 게 사실. 김설진은 마치 무용수들의 테라피스트가 된 듯 무용수들의 삶을 들여다보고 욕망을 끄집어내고 고민을 녹여냈다.

눈길을 끄는 것은 캐스팅된 무용수들의 면면이다. 젊은 무용수들 위주로 작업할 것이라는 편견을 깨고 훈련장 김미애와 최고참 단원인 김현숙부터 최연소 단원인 최호종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무용수들이 그의 무대에 오른다. “어떤 무용수와 작업을 할지 결정하기 위해 단원들이 쉬는 시간에 무얼 하는지, 어떤 습관을 가지고 있는지 유심히 살폈어요. 더 알아보고 싶은 사람들, 나와 대화할 수 있을 것 같은 사람들이 눈에 띄더군요. 다들 ‘어떻게 그런 조합을 만들었냐’고 물으시는데 제가 보기엔 이보다 더 좋은 조합을 만들 수 있을지 의문이에요. 모두의 살아온 흔적이 한 편의 소설이고 영화더군요. 그들의 이야기를 모두 담을 수는 없지만 저와 만나는 지점들을 놓치지 않고 작품에 녹였어요.”



김설진 스스로 뽑아낸 ‘더 룸’의 키워드는 초현실주의다. 무용수의 몸과 이야기는 현실에 존재하지만 살짝 비틀고 다듬어 현실을 벗어나게 하는 그만의 기법이 이번 작품에서도 돋보인다. 이를 위해 김설진은 낮에는 영화감독 밤에는 편집자가 돼야 했다. 각각의 동작 덩어리를 만들고 매일 밤 그만의 방식으로 장면들을 배합했다. 현실이 초현실로 전환되는 과정은 이렇게 단순한 듯 복잡했다.

국립무용단과 함께 신작 ‘더 룸’을 선보이는 현대무용수 겸 안무가 김설진 /사진제공=국립무용단국립무용단과 함께 신작 ‘더 룸’을 선보이는 현대무용수 겸 안무가 김설진 /사진제공=국립무용단


최근 김설진은 드라마 배우로도 활동하고 있다. 그에게 감정과 생각을 실어 몸을 움직이는 것은 모두 춤이다. 연기도 마찬가지다. 연기와 춤을 가르는 것 자체가 그에겐 무의미하다. “연기와 춤의 공통점은 사람 공부하기 가장 좋은 수단이라는 거예요. 하고 싶은 말이 있고 알고 싶은 게 있으면 안무로 풀어낼 수도 있고 춤이 안 되면 글로 적을 수도 있고 그림을 그리거나 말로 할 수도 있죠. 누군가는 제가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고 한다고 말하겠지만 저에겐 모든 게 춤이에요.”


서은영 기자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