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스포츠 문화

[내달 3일 대고려전 특별전] 희랑대사, 천년만의 외출

왕건 스승 '희랑대사 좌상'

특별전 위해 서울로 '이운'

"北 왕건상도 내려오길 기원"

보물 제999호 합천 해인사 건칠 희랑대사 좌상이 가마를 타고 고려 태조 왕건의 초상화가 봉안된 경기도 연천 숭의전으로 향하고 있다. /사진제공=국립중앙박물관보물 제999호 합천 해인사 건칠 희랑대사 좌상이 가마를 타고 고려 태조 왕건의 초상화가 봉안된 경기도 연천 숭의전으로 향하고 있다. /사진제공=국립중앙박물관



자그마치 천 년 만의 외출이다.

경남 합천의 해인사가 소장한 보물 제 999호 건칠 희랑대사 좌상이 국보 제32호 팔만대장경과 함께 서울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으로 옮겨졌다. 고려 1,100주년을 기념해 오는 12월 3일 개막하는 특별전 ‘대고려 918~2018 그 찬란한 도전’(이하 ‘대고려전’)을 위한 이운(移運·종교 유물의 이동과 운반을 높여 부르는 말)행사가 9일과 10일에 걸쳐 열렸다.

합천 해인사가 소장한 고려 대장경판이 다음달 열리는 ‘대고려전’을 위해 서울 용산 국립중앙박물관으로 옮겨지는 중이다. /사진제공=국립중앙박물관합천 해인사가 소장한 고려 대장경판이 다음달 열리는 ‘대고려전’을 위해 서울 용산 국립중앙박물관으로 옮겨지는 중이다. /사진제공=국립중앙박물관


배기동 국립중앙박물관장과 해인사 주지 향적스님은 지난 9일 오전 합천 해인사 법보전에서 두 불교 유물의 이동을 알리는 고불식(告佛式)을 진행했다. 이어 희랑대사 좌상과 대장경판은 무진동 차량으로 서울까지 이동했다. 다음 날인 10일 오전 10시부터는 전통의장대와 문관 10여 명이 희랑대사 좌상을 호위해 고려 태조 왕건의 초상화가 봉안된 경기도 연천 숭의전으로 향했다.


희랑대사는 왕건의 정신적 스승이었으며, 고려 건국 과정에서는 왕건이 경북 고령의 미숭산에서 백제의 왕손 월광 왕자와의 싸움에서 수세에 몰리자 달려가 돕기도 한 인물이다. 고려 초인 930년 이전에 제작된 이 목조상에 대해 향적 해인사 주지스님은 “우리나라에서 인물을 소재로 한 가장 오래된 목조 조각상이자 희랑대사가 생전에 본인이 직접 제작했다는 점이 특이한 유물”이라고 밝혔다. 비록 나무조각상과 초상화의 만남이지만 1,100년 만인 희랑대사와 태조 왕건의 만남행사는 개성 왕씨 종친회장의 집전으로 박물관과 해인사 관계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연천 숭의전 사당에서 경건하게 진행됐다. 국태민안(國泰民安)을 기원하는 문화행사와 약식 고유제와 고려가무악 연주 등 축하행사도 함께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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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 제999호 합천 해인사 건칠 희랑대사 좌상은 태조 왕건의 정신적 스승인 희랑대사를 주인공으로 한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 인물상이다. /사진제공=국립중앙박물관보물 제999호 합천 해인사 건칠 희랑대사 좌상은 태조 왕건의 정신적 스승인 희랑대사를 주인공으로 한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 인물상이다. /사진제공=국립중앙박물관


합천 해인사에서 옮겨 온 고려 대장경판의 일부. /사진제공=국립중앙박물관합천 해인사에서 옮겨 온 고려 대장경판의 일부. /사진제공=국립중앙박물관


이날 오후에는 국립중앙박물관 정문에서부터 취타대 및 전통의장대가 대장경과 희랑대사좌상을 호위하고 ‘청자정’을 지나 거울못 둘레길을 따라 박물관 열린마당으로 들어가는 영접행사가 이어졌다. 이운행사는 고려 시대 강화도에서 해인사로 대장경을 옮겼던 행렬을 고증해 약식으로 재현한 것. 민족화합을 기원하는 신달자 시인의 헌시 낭독과 쌍승무 등 축하공연, 대장경을 이고 도는 탑돌이·길놀이 행사도 열렸다.

합천 해인사에서 가져온 대장경판과 희랑대사 목조 좌상의 이운행사가 10일 서울 용산 국립중앙박불관에서 진행됐다. /사진제공=국립중앙박물관합천 해인사에서 가져온 대장경판과 희랑대사 목조 좌상의 이운행사가 10일 서울 용산 국립중앙박불관에서 진행됐다. /사진제공=국립중앙박물관


합천 해인사에서 가져온 대장경판과 희랑대사 목조 좌상의 이운행사가 10일 서울 용산 국립중앙박불관에서 진행됐다. /사진제공=국립중앙박물관합천 해인사에서 가져온 대장경판과 희랑대사 목조 좌상의 이운행사가 10일 서울 용산 국립중앙박불관에서 진행됐다. /사진제공=국립중앙박물관


배기동 국립중앙박물관장은 “(희랑대사와 태조 왕건) 두 분의 만남은 천 년의 만남이지만 통일된 고려가 남북으로 다시 나뉜 현실을 안타까워했을지 모른다”면서 “다음 달 ‘대고려전’에는 북한의 ‘청동 신성황제 왕건상’이 내려와 같이 전시되기를 기원한다”고 말했다. 왕건상은 1992년 10월 고려 태조릉인 현릉(顯陵) 봉분 북쪽에서 출토된 청동 좌상이다. 처음에는 불상으로 알려졌으나, 세종실록에서 왕건 조각상을 태조릉 옆에 묻었다는 내용이 확인되면서 왕건상이라는 견해가 굳어졌다. 머리에는 황제가 쓰는 통천관으로 보이는 관을 썼다. 옷을 입지 않은 나신(裸身)으로 보이는 것은 금박과 얇은 비단 천으로 만든 옷이 벗겨지고 훼손됐기 때문이다. 양식상 10~11세기 것으로 추정된다. 박물관 측은 ‘대고려전’을 위해 북한에 있는 왕건상과 개성 만월대 출토 금속활자 다양한 고려 유물의 대여를 북측에 요청한 상태다. 왕건상은 지난 2006년에도 북한의 대여를 받아 국립중앙박물관에서 공개된 적 있지만, 이번에 다시 서울에 오면 처음으로 희랑대사좌상과 대면해 사제 간 만남을 이루게 된다.

배기동 국립중앙박물관장배기동 국립중앙박물관장


한편 박물관 측이 ‘대고려전’에서 선보이고자 했던 프랑스 국립도서관 소장 ‘직지심체요절’과 일본에 산재한 고려 문화재의 대여는 결국 불발됐다. 외국에 있는 우리 문화재가 전시 등의 목적으로 들어왔을 때 압류나 몰수 조치를 못 하도록 하는 법률이 없다는 이유로 프랑스와 일본에서 유물 대여를 거부했다는 게 이유다. 북측 고려 유물의 대여가 성사된다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답방할 경우 남북한 관계자들과 함께 전시를 관람할 가능성도 점쳐진다.

조상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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