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연합(EU)과 영국이 25일(현지시간) EU 특별정상회의를 열어 영국의 EU 탈퇴 조건을 주로 다룬 ‘브렉시트(Brexit) 합의문’과 브렉시트 이후 양측의 무역·안보협력·환경 등 미래관계에 관한 윤곽을 담은 ‘미래관계 정치선언’에 서명했다. 브렉시트를 위한 가장 큰 고비를 넘은 가운데 이제 모두의 관심은 합의안에 대한 반대기류가 강한 영국 의회의 벽을 넘을 수 있을지에 쏠리고 있다.
외신에 따르면 EU 회원국 및 영국 정상들은 이날 도날트 투스크 EU 정상회의 상임의장 주재로 브뤼셀에서 회의를 열고 ‘브렉시트 합의문’과 ‘미래관계 정치선언’을 공식 승인했다. 지난 2016년 6월23일 영국이 국민투표로 브렉시트를 결정한 지 약 2년5개월, 양측이 브렉시트 협상을 시작한 지 약 1년5개월 만에 역사적인 협상을 마무리한 것이다.
이번 합의는 1993년 11월 출범한 스물다섯 살의 EU에 사상 첫 회원국 탈퇴라는 ‘아픈 역사’다. EU 회원국은 28개에서 이제 27개로 줄게 됐다. 영국 입장에서는 1973년 EU의 전신인 유럽경제공동체(EEC) 가입으로 유럽에 동참했던 45년의 역사가 마무리된 날이기도 하다.
장클로드 융커 EU 집행위원장은 “오늘은 슬픈 날”이라고 소감을 밝혔다. EU를 대신해 협상을 이끌어온 미셸 바르니에 EU 측 협상 수석대표도 “브렉시트 이후에도 우리(EU와 영국)는 동맹이자 파트너·친구로 남을 것”이라고 말했다. 융커 위원장은 “가능한 범위에서 최고의 합의였다”고 평가하며 양측 의회가 이의 없이 이번 합의문을 비준해줄 것을 촉구했다.
브렉시트 협상이 일단락됨에 따라 EU와 영국은 다음달 초 양측 의회에 동의를 구하는 비준 절차를 밟을 예정이다. 테리사 메이 영국 총리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영국 의회에서 이 합의문이 비준될 수 있도록 마음과 영혼을 다해 싸울 것”이라며 “의원들도 브렉시트를 위해 의무를 다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크리스마스(12월25일) 전에는 비준 동의 표결을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와 관련해 협상 기간에 스페인 정부의 문제 제기로 막판 골칫거리로 부상했던 지브롤터 이슈가 봉합되면서 양측이 예정된 시한에 서명할 수 있게 됐다. 그동안 스페인은 영국과 EU 간 ‘미래관계 정치선언’에 지브롤터 문제를 스페인과 영국이 직접 협의해야 한다는 내용을 넣을 것을 요구해왔으며 전날 영국과 EU는 지브롤터의 미래와 관련해 스페인에 발언권을 주기로 최종 합의했다.
이날 서명된 최종 합의문에 따르면 영국은 회원국 시절에 약속한 재정기여금 390억파운드(약 57조원)를 수년에 걸쳐 EU에 ‘이혼합의금’으로 내야 한다. 또 양측은 내년 3월30일부터 오는 2020년 12월31일까지의 21개월을 브렉시트 이행기간으로 정했다. 이 기간 영국은 현행대로 EU의 제도와 규정이 그대로 적용되지만 EU의 의사결정 과정에는 참여할 수 없다. 브렉시트 이후 EU 회원국인 아일랜드와 영국 영토인 북아일랜드 간 국경 문제는 ‘하드보더(통행과 통관 절차를 엄격히 적용하는 것)’를 피하기 위해 한시적으로 영국 전역을 EU 관세동맹에 잔류시키기로 했다.
브렉시트와 관련된 영국과 EU의 관계는 정리됐지만 여전히 영국 내 문제는 남아 있다. 합의문의 마지막 관문인 영국 의회의 비준을 받는 과정이 순탄하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 때문이다. 영국은 EU의 헌법 격인 리스본조약에 따라 내년 3월29일 EU를 자동 탈퇴하게 된다. 만일 계획대로 영국 의회와 EU 의회의 비준을 함께 받으면 브렉시트의 충격파를 최소화하며 질서 있는 EU 탈퇴가 가능하지만 브렉시트 합의문이 한쪽에서라도 비준되지 않으면 아무런 합의도 없이 EU를 탈퇴하는 ‘노딜 브렉시트’가 현실화된다.
이번 합의문과 관련해 영국 여당인 보수당 내 브렉시트 강경론자들은 여전히 EU에 묶여 있어 진정한 브렉시트가 아니라고 주장하고 있다. 앞서 합의문에 반발해 메이 내각에서 도미닉 라브 브렉시트장관과 에스터 맥베이 고용연금장관 등이 줄줄이 사퇴하기도 했다. 거꾸로 EU 잔류를 주장하는 노동당을 비롯한 야당 의원들 역시 반대기류가 강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