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기업

20년만에..가스기자재 中企 납품 '숨통'

가스공사, 이르면 2020년부터

납품실적·등록제 규제 허물고

성능·안전도 평가로 납품사 선정

年 56억 수입대체 효과도 기대

강원도 강릉시에 자리한 강릉GS에 설치예정인 정압설비. KOGAS 규격표준에 맞게 테스트를 마친 국제공인기관 성능인증 제품으로, 장비 실험은 강릉GS가 총괄할 예정이다. /사진제공=한국가스공사강원도 강릉시에 자리한 강릉GS에 설치예정인 정압설비. KOGAS 규격표준에 맞게 테스트를 마친 국제공인기관 성능인증 제품으로, 장비 실험은 강릉GS가 총괄할 예정이다. /사진제공=한국가스공사



주요 가스 기자재인 볼밸브를 만드는 화성밸브와 S.V.T밸브, 계량설비를 생산하는 와이즈산전은 기술과 양산능력은 있지만, 한국가스공사에 납품할 수 없었다. 가스공사의 ‘제작업체 등록제도’ 때문이다. 가스공사는 지난 1995년 서울 아현동 가스 사고를 계기로 이듬해 밸브 등 안전성이 요구되는 7개 기자재에 대해 사전평가를 통과해 동록된 업체에게만 입찰 참가자격을 부여하는 제도를 시행해 왔다. 그런데 문제는 사전 평가를 받기 위해서는 3년간 가스공사에 납품한 실적이 있어야 한다는 데 있다. 신규업체가 진입할 수 있는 문턱이 너무 높았던 것이다. 이로 인해 납품 이력 있는 외국계 회사가 기자재를 독점 납품했던 반면 국내 중소기업은 도전할 기회조차 얻을 수 없었다. 안전을 위한 제도라고는 하지만 중소기업에게는 20년 넘게 넘을 수 없는 장벽으로 작용한 셈이어서 불합리한 제도라는 지적이 이어졌다. 이런 가운데 중소벤처기업부와 한국가스공사의 동반성장 의지에 힘입어 이르면 2020년부터 국내 중소기업들이 가스공사에 기자재를 납품할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됐다.

가스 관련 기자재 시장에 새로운 돌파구를 마련한 것은 지난 5월 열렸던 중소벤처무역협회 회장단의 홍종학 장관 면담이 계기가 됐다. 당시 불합리한 납품실적 요구에 따른 입찰참가 제한에 대한 규제를 개선해야 한다는 건의가 나왔고 이를 귀담아 들은 홍 장관은 개선 방안을 주문했다. 그로부터 한 달 후인 지난 6월 중기부 실무진은 가스공사를 직접 방문해 “등록제 도입 시점에 이미 등록된 수입 업체만 납품할 수 있는 제도가 20년 넘게 아무런 변화 없이 유지되고 있다”며 문제점을 지적하고 “국내 중소기업들이 개발한 제품이 오히려 수입 제품에 비해 가격과 품질이 우수함에도 불구하고 등록업체 진입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한 만큼 주요기자재 납품실적 제도를 폐지해 달라”고 요청했다.


20년간 제도를 운영했던 가스공사는 처음에 완강하게 반대했다. 주요 기자재는 안전과 직결된 것이어서 제도 변경이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정승일 당시 사장(현 산업통상자원부 차관)이 기술 국산화와 혁신 성장, 동반·상생 성장 의지를 분명히 하면서 터닝 포인트를 마련할 수 있었다. 정 사장이 “구체적인 방안을 수립하되 객관성과 공정성을 확보하기 위한 방안도 추가적으로 강구하라”고 지시하자 7월부터 석 달 간 납품사 선정 방식 개선안이 만들어졌고 드디어 10월 ‘기술개발 및 납품 관련 규정’ 개정이 이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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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스공사는 국내 중소기업들에게 납품 기회는 열어줬지만 안전 문제 만큼은 한치의 양보가 없었다. 가스공사 내의 유휴설비를 테스트 베드(test bed)로 운영해 신규 제품의 성능과 안전도를 1년 6개월 동안 철저히 평가하기로 했다. 기존 납품실적 제도를 장기 신뢰성 평가 제도로 대체해 신규 업체에게 문호를 개방하면서도 안전도와 신뢰도 측면에서 소홀함이 없도록 한다는 것이다. 이런 과정을 통과한 중소기업에는 총 물량의 30% 이내에서 수의계약으로 납품 기회를 주기로 했다.

제도 개선이 이뤄지자 현장에서도 곧바로 반응이 왔다. 와이즈산전은 고압용 가스 계량설비를 개발했지만 실적이 없어 가스공사 납품이 좌절되자 팀원 4명이 퇴사하며 해당 팀이 없어지는 아픔도 겪었다. 하지만 최근 공사의 테스트베드 정책을 보고 해당 팀을 재구성해 내년에 응모하기로 했다. 가스공사 관계자는 “이번 규제 합리화 덕택에 연간 56억 원의 수입 기자재 대체 효과를 기대하고 있다”면서 “더 나아가 한국 가스기술이 세계화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중기부 관계자는 “유럽과 미국에 수출하고 있는 업체도 납품 실적이 없어 가스공사에 납품하지 못하고 있는 경우도 있었다”면서 “많은 수의 중소기업이 테스트베드를 통과해 가스공사 납품에 성공하고 이를 발판으로 해외에서도 더 큰 실적을 올리길 기대한다”고 강조했다.


맹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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