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해외칼럼] 위선적 재정정책의 승리

폴 크루그먼 뉴욕시립대 교수

예산 적자에 반대했던 美 공화당

집권후 정부 지출 확대 이중성 보여

미래에 대한 우려 헌신짝처럼 버려

비난받기는커녕 정치적 상 받아

폴 크루그먼폴 크루그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자신이 미국 경제에 크게 이바지했다는 주장을 앞세워 재선 캠페인을 펼칠 것이다. 솔직히 요즘 미국 경제는 활황세를 보이고 있다. 국내총생산(GDP) 성장세와 고용은 대단치는 않더라도 양호한 편이다. 실업률 역시 사상 최저치 근처에 머물고 있다.

하지만 그늘진 곳도 있다. 무엇보다 성장에 따른 경제적 이익이 특정 집단에 편중돼 있다. 대기업들이 주로 세금감면을 통해 막대한 이익을 챙긴 반면 근로자들의 소득은 그들과 비교될 만큼 크게 늘지 않았다. 버락 오바마 행정부 시절에 대폭 확대된 건강보험 범위는 트럼프 때 현상유지 혹은 축소로 돌아섰고 막대한 의료비 탓에 치료를 미룰 수밖에 없다고 호소하는 미국인 환자들의 수는 크게 늘어났다.


그렇긴 해도 경제가 활기를 보이는 것만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미국 경제의 강력한 성장세는 지난해 1조달러 선을 돌파한 연방적자에 바탕을 두고 있다. 바로 이 때문에 트럼프의 경제 성공담은 미국 정치의 미래에 깊숙한 파장을 드리울 수밖에 없다.

여기서 잠깐 2009년도 초반으로 돌아가자. 당시 미국 경제는 적자지출 형태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했다. 오바마 대통령이 경기부양책을 제안하긴 했지만 사태의 심각성에 비해 지원 규모는 턱없이 부족했다. 당초 민주당은 공화당의 협조를 얻어 양당 합의하에 강력한 경기부양책을 추진하기를 원했으나 공화당이 재정적자 증가 우려를 앞세워 의사진행 등을 방해한 탓에 유화적 접근법을 포기했다.

정부 지출 축소는 경제에 상당한 부담으로 작용한다. 물론 이 같은 부담이 지속적인 경제회복 자체를 막기에는 충분하지 않으나 회복 속도를 둔화시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따지고 보면 2013년까지 우리가 완전고용으로 돌아서지 못할 경제적 이유는 전혀 없었다. 그러나 양적완화 대신 긴축재정에 힘이 실리면서 그해의 평균 실업률은 계속 7% 선을 웃돌았다.

공화당은 심각한 예산적자 우려 때문에 정부 지출삭감을 요구하는 것이라고 강변했다. 언론매체 역시 예산적자가 미국이 당면한 가장 중요한 문제라는 공화당의 주장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였다.


그런데 오바마 행정부 시절 목이 터져라 예산적자에 반대했던 유력 인사들에게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기에 요즈음은 아예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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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상황에 관심을 가진 사람이라면 재정문제에 대해 폴 라이언과 같은 견해를 보이는 사람들이야말로 위선자라는 사실을 꿰뚫어 본다. 그는 공화당이 백악관을 탈환하자마자 갑자기 예산적자에 대한 모든 흥미를 잃어버렸다. 물론 그와 뜻을 같이했던 다른 공화당 의원들도 마찬가지다.

오바마의 임기 마지막 해까지만 해도 6,000억달러를 밑돌았던 미국의 예산적자는 트럼프 정부에서 대폭발을 일으키며 1조달러 선을 훌쩍 넘어섰다. 늘어난 적자의 대부분은 트럼프의 정책, 그중에서도 고도의 당파적 전술을 통해 의회를 일사천리로 통과한 감세 탓이었다.

트럼프가 벌인 적자 잔치의 놀라운 점은 잘못된 정책 설계로 기대만큼의 경기 부양 효과를 내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무엇보다 적자를 부풀리는 데 가장 크게 손을 보탠 법인세 감면조치는 비즈니스 투자를 늘리는 데 전혀 기여하지 못했다. 실제로 지난 한 해 동안 기업투자는 오히려 감소했다.

오바마의 부양책이 청정에너지의 혁명적 진전에 동력을 제공하는 등 상당 규모의 ‘미래 투자’를 포함하고 있었던 반면 트럼프는 미국의 기반시설을 재건하겠다는 자신의 공약에 단 1센트도 투입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트럼프의 적자는 경제와 그의 정치생명에 단기적인 도움을 주었다.

백악관이 민주당 수중에 들어 있는 동안 공화당은 늘 재정적 책임을 핑계로 경제 보이콧을 단행했다. 그러나 공화당이 집권하기 무섭게 이런 핑계는 내동댕이쳐지고 닫혔던 지출의 물꼬가 터진다. 게다가 공화당은 이런 이중성을 비난받기는커녕 오히려 정치적으로 상까지 받고 있다.

공화당 전략은 살벌하기 그지없다. 그들에겐 최고의 냉소주의가 최선의 정책이다. 상대 정당이 대통령직을 차지하고 있을 때는 무엇이 됐건 언론이 덥석 받아들일 만한 위선적인 변명거리를 동원해 경제 성장을 최대한 방해하고 교란하며 해친다. 그러나 백악관이 다시 그들의 수중에 떨어지면 미래에 대한 모든 우려를 헌신짝처럼 내던지고 유권자들의 표심을 매수한다.

민주당은 그처럼 냉소적으로 행동할 능력과 의향을 갖고 있지 않다. 하지만 공화당은 완전히 딴판이었다. 만약 올해 대선에서 트럼프가 재선된다면 바로 이 같은 비대칭적 냉소주의가 그가 당선된 주된 이유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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