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에 걸리면 우리 같은 노인들이야 죽는 거 아니겠니.”
수화기 너머 어머니의 목소리를 듣는 순간 나의 감수성이 얼마나 부족한지 깨달았다. 매일 얼굴을 맞대고 사는 아이들 걱정은 되면서도 정작 마스크 사러 나가기도 힘든 병든 부모님이 느낄 공포감에는 무감각했다.
비단 우리 부모님뿐일까. 마스크 대책이 발표되기 전 대형마트 앞에 늘어서 발을 동동 구르던 사람들의 심정은 참담했을 것이다. 그 절박함을 정부는 피부로 느끼지 못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3일 정부의 ‘마스크 감수성’을 질타한 것도 같은 심정으로 보인다. 문 대통령은 “정부가 감수성 있게 느꼈는지 의심스럽다. 과연 절실한 문제로 인식했는가”라고 물었다. 장관들을 향한 대통령의 이례적인 표현인 ‘의심스럽다’에 이 사태에 대한 절망감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
하지만 감수성이 부족했던 것은 대통령을 보좌하는 청와대 참모들도 마찬가지다. 김상조 청와대 정책실장은 문 대통령이 마스크 대리수령 범위를 넓히라고 지시하기 바로 전날까지도 “자녀의 마스크를 부모가 대리 수령할 경우 모든 가족이 가족 수만큼 2장씩 구매할 것”이라며 불가론을 고수했다.
수요와 공급의 한계를 거스르기 힘든 현실적 판단이라고는 하나, 어린아이를 들쳐 업고 마스크를 사러 가야 하는 부모의 심정을 헤아리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청와대 내부에서조차 “국민 불편을 유발해 수요를 조절하겠다는 것이냐”는 비판이 나왔다.
마스크 문제뿐이 아니다. 이 사태가 터지고 난 후 집권 여당 대변인의 입에서 나온 ‘대구 봉쇄’ 발언은 감염 위협을 무릅쓰고 대구로 내려간 대통령의 행보마저 퇴색시켰다. 지난달 25일 고위당정청회의 직후 나온 이 발언이 대구·경북지역을 ‘중국 우한’처럼 물리적으로 봉쇄하려 한다는 해석으로 이어졌고 가뜩이나 아픈 대구의 상처에 소금을 뿌렸다.
오죽하면 정치권에서 “대통령이 여당의 실수를 수습하기 위해 급히 대구 일정을 만들었다”는 억측까지 제기됐을까. 문 대통령은 그날 대구 곳곳을 누비고 다녔으나 대구를 지배한 것은 ‘대구 봉쇄’ 논란이었다.
상처를 보듬지 못하는 국정운영 주체들의 경솔함은 대구 방역현장에서 사투를 벌이는 공무원들의 허탈감마저 자아낸다. “대구는 미통당(미래통합당) 지역이니 손절” “자치단체장 미통당 출신 대구·경북에서만 어떤 사달이 나고 있는지 보라”는 철모르는 여권 정치신인들의 발언에 이낙연 선대위원장이 사과하고 나선 것도 비극에 가깝다. 전임 정부의 무딘 ‘세월호 감수성’을 그렇게도 비판했던 여권이 아니었나.
총선을 코앞에 두고 정치권의 관심은 온통 공천에 쏠린 듯하다. 하지만 결국 국민의 선택은 국정에 임하는 태도에 좌우된다는 것이 선거 전략가들의 공통된 목소리다. 정부와 여권이 지금 이 예민한 시기를 어떤 태도로 극복하고 있는지 돌아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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