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통일·외교·안보

'조선총독 논란' 해리스 美대사 사임의사...韓 반감에 부담느꼈나

로이터 "해리스, 11월 韓 체류계획없다 말해"

주한美대사관 "대사,동맹강화 의지 변함없어"

해리 해리스 주한 미국대사가 지난 2018년 8월 2일 서울 중구 정동 대사관저에서 부임 후 처음으로 기자간담회를 갖고 있다. /연합뉴스해리 해리스 주한 미국대사가 지난 2018년 8월 2일 서울 중구 정동 대사관저에서 부임 후 처음으로 기자간담회를 갖고 있다. /연합뉴스



해리 해리스 주한 미국대사가 올해 11월에 사임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다는 외신보도가 9일 나와 주목된다.

로이터통신은 이날 복수의 소식통을 인용해 “해리스 대사가 개인적으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재선 여부와 관계 없이 11월 미국 대통령 선거 이후로는 한국에 체류할 계획이 없다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해리스 대사의 갑작스러운 사임 계획에 대한 이유는 구체적으로 알려지지 않았다. 다만 로이터 통신은 그의 임기 동안 한미가 방위비분담금 협상과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IMA·지소미아) 등 정치 현안을 놓고 곳곳에서 충돌하면서 양국관계의 긴장감이 장기화한 데 따른 부담이 작용했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로이터통신은 지난해 10월 한국 학생들이 주한 미국대사관에 기습 진입해 방위비 인상 반발 시위를 벌인 데 대해 미 국무부가 불만을 표한 것과 함께 해리스 대사가 일본계 혈통이라는 이유로 한국인에게 반감을 산 점 등을 근거로 들었다.

실제 해리스 대사는 북미 비핵화 협상과 지소미아 문제 등 한미 간의 주요정치 이슈가 불거질 때마다 주재국 대사로서는 이례적으로 정치적 발언을 해 논란의 중심에 선 바 있다. 이에 따라 한국 내에서 해리스 대사의 콧수염이 일제강점기 일본인 총독과 비슷하다는 조롱까지 나오는 등 그는 한국 부임 후 고위층 인사들에게까지 비판을 받았다고 로이터 통신은 전했다. 이런 모습은 전임이었던 마크 리퍼트 전 대사가 한국인들에게 친근한 이미지를 준 것과 대비됐다.

지난해 12월 국민주권연대와 청년당이 주최한 ‘해리스 대사 참수경연대회’에서 참가자들이 해리스 대사의 코털을 뽑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손구민 기자지난해 12월 국민주권연대와 청년당이 주최한 ‘해리스 대사 참수경연대회’에서 참가자들이 해리스 대사의 코털을 뽑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손구민 기자


다만 외교 전문가들은 개인적인 고충보다는 ‘아메리카 퍼스트(미국 우선주의)’를 강조하는 트럼프 대통령과의 동맹관에 대한 근본적인 시각차 등이 작용했을 것으로 진단했다. 우정엽 세종연구소 미국연구센터장은 “비공식적으로 본인이 생각하는 동맹관과 트럼프 대통령의 생각이 많이 다른 데 따른 결정으로 보인다”고 조심스럽게 해석했다. 주한 미국 대사관 측은 해당 언론보도에 대해 직접 부정하지 않으면서 해리스 대사가 한미동맹 강화에 일조하겠다는 점을 강조했다.

해리 해리스 주한 미국대사가 9일 오후 대사관저에서 로버트 에이브럼스 주한미군 사령관과 사회적 거리두기를 실천하는 점심을 했다며 트위터에 사진을 공개했다. 해리스 대사와 에이브럼스 사령관은 긴 식탁을 두고 대각선으로 앉아 기념촬영을 했다. /해리 해리스 대사 트위터해리 해리스 주한 미국대사가 9일 오후 대사관저에서 로버트 에이브럼스 주한미군 사령관과 사회적 거리두기를 실천하는 점심을 했다며 트위터에 사진을 공개했다. 해리스 대사와 에이브럼스 사령관은 긴 식탁을 두고 대각선으로 앉아 기념촬영을 했다. /해리 해리스 대사 트위터


주한미국 대사관 대변인실은 “해리스 대사는 대통령의 뜻에 따라 직무를 수행하고 있으며 미국을 위해 지속적으로 적극 봉사하고자 한다”며 “대사께서 평소 즐겨 말씀하시는 것처럼 ‘한국은 미국 대사로서 최고의 근무지이자 미국에게는 최고의 동반자이며 동맹’”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대한민국 정부 당국자는 물론 훌륭한 한국민 및 독립성을 보장받는 언론과 적극 소통함으로써 한미동맹 강화에 일조하겠다’는 대사의 의지에는 변함이 없음을 알려드린다”고 밝혔다.


일각에서는 해리스 대사의 11월 사임이 현실화할 경우 인준이 까다롭기로 유명한 미 상원 외교위원회 청문회를 거쳐야 하는 주한 미국대사의 공백 장기화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제기됐다.



박원곤 한동대 교수는 “해리스 대사의 국내 여론이 워낙 나쁘기 때문에 대사 교체도 한미관계를 강화하는 한 방법이라고 생각된다”면서도 “미국 대선 기간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 19) 정국으로 주한 미국대사의 임명이 늦어질 가능성 높다”고 예상했다.

전문가들은 주한 미국대사가 그간 한국 정부의 입장을 미국 정부에 전달하는 가교역할을 해온 만큼 대사의 공석이 길어지면 한미동맹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것이라고 평가했다. 차두현 아산정책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주한 미국대사는 한국의 고위관료를 만나 고급정보를 수집하는 게 주요 임무”라며 “대사대리가 만날 수 있는 한국 고위급에는 한계가 있어 한미 간의 소통에 차질이 생길 수 있다”고 내다봤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이 지난 2017년 8월 22일 서울 도렴동 외교부 청사에서 해리 해리스 미 태평양사령관과 악수하고 있다./연합뉴스강경화 외교부 장관이 지난 2017년 8월 22일 서울 도렴동 외교부 청사에서 해리 해리스 미 태평양사령관과 악수하고 있다./연합뉴스


한편 해리스 대사는 일본계 모친과 일본 요코스카 미군기지에서 해군 중사로 복무했던 부친을 둔 보수 성향의 인사로 2015년 주한미군사령부를 휘하에 둔 태평양사령관을 역임한 뒤 2018년 7월 주한 미국대사로 부임했다.


박우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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