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 퀘벡시 인근 마을에서 입으로 불을 뿜는 묘기를 선보이던 청년 기 랄리베르테는 22세 때인 1982년 동료 곡예사들과 함께 ‘하이힐클럽’이라는 모임을 만들었다. 다양한 캐릭터로 분장한 곡예사들은 저글링이나 마술을 하면서 거리를 돌아다녔고 이들의 화려한 묘기는 시선을 사로잡았다. 1984년 랄리베르테는 캐나다 발견 450주년을 기념할 공연이 필요했던 퀘벡시 정부를 설득해 정식 무대에 서게 된다. 기존 서커스의 단골소재였던 동물 조련 대신 발레·연극·뮤지컬과 같은 예술적 요소들을 대거 도입했다. 음악·연극·무용이 절묘하게 섞인 새로운 개념의 서커스는 대성공을 거뒀고 정부는 캐나다를 대표하는 문화상품으로 키우겠다며 지원에 나섰다. 세계적 공연기업 ‘태양의 서커스(Cirque du Soleil)’가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태양의 서커스가 도약한 계기는 랄리베르테와 스티브 윈 미라지리조트그룹 회장의 만남이다. 윈은 도박의 대명사였던 라스베이거스를 컨벤션과 엔터테인먼트가 1년 내내 펼쳐지는 가족형 관광지로 바꾼 주역이다. 태양의 서커스는 그의 구미에 딱 맞는 무대를 마련했다. 랄리베르테는 1993년 ‘미스테르’를 시작으로 ‘주매니티’ ‘O’ ‘KA’ ‘LOVE’ 등 상설무대를 성공시키며 라스베이거스에 안착했다. ‘퀴담’ ‘알레그리아’ ‘드랄리온’ ‘바레카이’ 등 투어 공연도 선보였다. 누적 관객 수는 9,000만명을 넘었고 연 매출액은 10억달러(약 1조2,300억원)에 달했다.
세계 최고의 아트서커스로 명성이 자자한 태양의 서커스 공연을 내 집 거실에서 무료로 볼 수 있게 됐다. 베를린필하모닉을 비롯해 각 분야의 유명한 예술단체나 공연기업들이 코로나19의 여파로 중단된 공연 대신 온라인 스트리밍 서비스를 제공한 데 따른 것이다. 태양의 서커스도 공연 취소로 전 직원의 95%에 달하는 4,600여명을 일시 해고한 상태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무디스와 S&P가 이 공연기업의 신용등급까지 낮췄다. 태양의 서커스가 전매특허인 화려한 곡예처럼 코로나19로 인한 위기를 무사히 넘겼으면 하는 바람이다.
/정민정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