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임수경 기밀' 법정다툼 속…정부, 결국 '외교문서 심사 강화' 공표

강경화, 문서 예비심사위원 7명→10명 증원

林문건 논란 감안 '심사절차 신뢰 제고' 분석도

외교부 늦장에 '임수경 문건' 재판은 차일피일

임종석 주도 평양방문 뒷얘기 공개여부 관건

임수경 전 의원이 1989년 9월 기자회견 중 전대협가(歌)를 부르고 있다. /연합뉴스임수경 전 의원이 1989년 9월 기자회견 중 전대협가(歌)를 부르고 있다. /연합뉴스



임수경 전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의 1989년도 밀입북 관련 기밀문서 비공개 사건이 최근 법정 다툼으로 번진 가운데 외교부가 30년이 지난 외교문서 공개와 관련한 심사 과정을 결국 강화하겠다고 공표했다. <관련기사> ▶[단독] '임수경 기밀 비공개' 논란 속... 정부 "외교문서 공개 심사강화"

강경화 외교부 장관. /연합뉴스강경화 외교부 장관. /연합뉴스


강경화 장관, 예비심사위원 7명→10명 증원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13일 외교부령인 ‘외교문서 공개에 관한 규칙’ 일부 개정령을 공포했다. 개정령에 따르면 외교부는 우선 30년이 경과한 외교기록물 공개 여부를 심사할 예비심사원 최대 인원을 기존 7명에서 10명으로 늘렸다. 내년부터 1990년대 이후 외교문서들이 심의 대상에 오르는 만큼 문서량 증가에 대비한다는 명목이다. 외교부는 또 외교문서공개심의회 위원 명칭 중 ‘재외동포영사대사’를 ‘재외동포영사실장’으로 변경하기로 했다. 외교부는 이 같은 개정령을 지난 5월4일 입법예고한 바 있다.

외교부는 “30년이 경과한 외교기록물에 대한 업무 증가에 대비하고 ‘외교부와 그 소속 기관 직제’ 개정 내용을 반영하기 위한 것”이라고 개정 이류를 설명했다.

외교부는 국민의 알권리를 위해 마련된 ‘연례 외교문서공개제도’에 따라 1994년부터 매년 30년이 지난 기밀문서를 공개하고 있다. 예비심사위원은 외교부 소속 공무원이나 관련 전문지식·경험이 풍부한 사람 중 5~10명을 외교부 장관이 임명한다. 외교문서공개심의회는 위원장인 외교부 1차관을 비롯해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차관보·대변인·공공외교대사·기획조정실장·의전장·다자외교조정관·경제외교조정관·재외동포영사대사(재외동포영사실장으로 변경 추진) 등으로 구성된다. 외부인으로는 예비심사위원 경력이 있는 전문가 1명이 포함된다.

1989년 평양으로 밀입북한 임수경 전 의원이 김정일의 생모인 김정숙 동상에 헌화를 한 뒤 참배하고 있다. /연합뉴스1989년 평양으로 밀입북한 임수경 전 의원이 김정일의 생모인 김정숙 동상에 헌화를 한 뒤 참배하고 있다. /연합뉴스


외교부 늦장 대응에 ‘임수경 기밀 정보공개’ 재판은 차일피일

이번 개정령에 무엇보다 관심이 쏠린 것은 외교부가 해당 제도와 관련해 최근 논란에 휩싸였기 때문이다. 외교부는 지난 3월31일 1989년도 문서를 중심으로 총 1,577권(24만여쪽)의 외교문서를 기밀에서 해제하면서 이른바 ‘임수경 밀입북 기밀문서’는 한 건도 포함하지 않아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당시 외교문서공개심의회와 관련된 당국자는 “문서가 존재하는지도 모르겠고, 거의 없을 것”이라고 해명했는데 임 전 의원과 관련된 외교문서는 160쪽가량에 달하는 것으로 추후 파악됐다. 이번 개정령을 통한 예비심사위원 수 증가가 ‘문서량 증가 대비’뿐 아니라 공개 심사 절차에 대한 ‘신뢰도 제고’ 목적도 있는 게 아니냐는 분석이 일각에서 나오는 이유다.


보수 성향의 변호사단체인 ‘한반도인권과통일을위한변호사모임’은 외교부의 이 같은 조치에 반발해 지난 4월24일 서울행정법원에 강 장관을 대상으로 정보공개 거부 처분 취소 소송을 냈다. 앞서 한변은 “언론 보도 등 이미 다양한 형태로 알려진 사실이 담긴 외교문서조차 국민에게 공개하지 않았다”며 정보공개를 청구했으나 외교부는 이를 거부했다. 외교부는 1989년 당시 정보당국의 개인정보 유출 문제, 공산국가에 대한 자유진영의 전략 노출 우려 등을 이유로 “외교문서공개심의회의 판단은 적절했다”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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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소송의 첫 재판 기일은 아직도 잡히지 않은 상태다. 외교부가 첫 답변서 제출부터 늦장을 부린 탓이다. 법원에 따르면 정부법무공단의 김재방 변호사는 지난 6월3일 임 전 의원 방북 관련 기밀문서 정보공개 거부처분 취소 소송과 관련해 외교부로부터 받은 소송위임장과 답변서 제출기한 연장신청서를 서울행정법원 제3부(유환우 부장판사)에 제출했다.

민사소송법은 소장 부본을 송달받은 피고가 그 날부터 30일 이내에 답변서를 작성, 재판부에 내도록 한다. 원칙적으로는 강 장관이 6월5일까지 해당 사안에 대한 입장을 정리해 법원에 제출해야 한다. 하지만 강 장관이 소송 대리인을 이례적으로 늦게 지정하면서 첫 재판 일정도 미뤄지게 됐다. <관련기사> ▶[단독] '임수경 밀입북' 기밀문서 공개 소송 미루기 나선 외교부

임수경 밀입북 사건으로 구속 기소된 임종석 당시 전대협 의장. /연합뉴스임수경 밀입북 사건으로 구속 기소된 임종석 당시 전대협 의장. /연합뉴스


임종석 주도 ‘평양 밀입북’에 남북 모두 ‘발칵’

‘임수경 밀입북 사건’은 한국외대 4학년에 재학 중이던 임 전 의원이 1989년 6월30일부터 8월15일까지 평양에서 열렸던 제13차 세계청년학생축전에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 대표로 참석한 사건이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임 전 의원은 서울에서 일본 도쿄까지 관광 목적으로 출국해 독일 서베를린·동베를린, 러시아 모스크바 등을 거쳐 평양으로 들어갔다. 이는 당시 전대협 3기 의장이었던 임종석 대통령 외교안보특별보좌관 등이 기획·주도했다.

임 전 의원은 1989년 8월15일 판문점을 통해 귀국한 직후 체포됐다. 임 전 의원의 밀입북을 주도한 임 특보는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체포돼 징역 5년을 선고받고 3년6개월 간 실형을 산 뒤 가석방됐다.

임 전 의원은 당돌한 옷차림과 행동으로 북한 사회에 큰 충격을 준 것으로 지금까지 회자된다. 이 때문에 북한에서는 한 동안 그를 ‘통일의 꽃’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임 전 의원의 행적은 당시부터 지금까지 줄곧 국민적 관심사였다.

임수경 전 의원은 이후 2012년 제1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통합당(현 더불어민주당) 비례대표로 출마해 국회에 입성했다. 임 특보는 2000년 새천년민주당(현 더불어민주당) 소속으로 서울 성동을에서 당선되며 정치권에 발을 들였다. 현 정부 들어서는 청와대 비서실장을 거쳐 이달 초 대통령 외교안보특보에 임명됐다.


윤경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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