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상원이 중국을 겨냥해 미국의 규제 및 감사기준을 지키지 않는 외국 기업의 상장을 폐지하는 법안을 통과시킨 가운데 이번에는 도널드 트럼프 정부가 미국증시에 상장된 중국 기업의 회계 관련 합의를 파기하기로 했다. 알리바바 같은 기존 상장업체에는 큰 영향이 없지만 중국 기업의 신규 상장은 한층 어려워질 것으로 보인다.
13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미 행정부는 지난 2013년 상장기업회계감독위원회(PCAOB)가 중국 증권감독관리위원회(CSRC)와 맺은 양해각서(MOU)를 폐기하는 방안을 추진할 계획이다. 정확한 종료시점은 알려지지 않았지만 한쪽이 파기를 통보하면 30일 내에 중단된다. 키스 크라크 미 국무부 차관은 “우리는 더 이상 미국 주주들을 위험에 빠뜨리고 미국 기업들을 불리하게 만들 수 없다”며 “(파기) 조치가 임박했다”고 밝혔다.
PCAOB는 MOU를 통해 조사해야 할 중국 상장기업이 생기면 이를 CSRC로부터 건네받기로 했다. 당초 미국 정부는 중국 기업에 대한 정보 접근성이 높아질 것으로 보고 MOU를 체결했지만 중국 당국은 자국법이나 국가안보를 이유로 자료제출을 거부해왔다. 이에 PCAOB는 중국 당국이 정보제공 요청을 받아들이지 않아 중국 상장사를 투명하게 감사할 수 없다는 불만을 제기해왔다. 윌리엄 던키 PCAOB 회장은 지난주 “중국 내 공시를 감독하고 분식회계를 막을 가망이 없다”고 토로하기도 했다.
미국 정부의 이번 조치는 ‘중국판 스타벅스’를 표방하며 사업을 확장하던 루이싱커피가 회계부정 스캔들로 나스닥에서 상장 폐지된 후 미국이 중국에 투명성 강화를 압박하는 가운데 나왔다. 루이싱커피는 지난해 5월 나스닥에 상장해 한때 시가총액이 100억달러에 이르렀다. 하지만 지난해 2·4~4·4분기 매출액 규모가 22억위안(약 3,700억원)이나 부풀려졌다는 부정회계 사실이 올해 3월 공개되면서 6월 나스닥에서 거래가 중단됐다.
이후 미국 당국은 중국 기업의 경영 투명성을 높이기 위해 대중 압박 수위를 높여왔다. 트럼프 대통령은 5월 “중국에 매우 실망했다”며 “뉴욕증권거래소(NYSE)와 나스닥에 상장된 중국 기업 중 미국 회계기준을 따르지 않는 회사들을 지켜보고 있다”고 밝혔다. 6월 초에는 PCAOB를 감독하는 증권거래위원회(SEC)의 제이 클레이턴 위원장 등 관리들에게 중국 기업의 회계규정 위반으로 피해를 본 미국 투자자들을 보호할 조치를 마련하라고 지시하기도 했다. 5월 말 미 상원은 외국 기업이 공기업 회계감독위원회의 기준을 의무적으로 준수하도록 하는 내용의 ‘외국지주회사책임법’을 통과시켰다.
루이싱커피의 회계조작 사건을 계기로 잇따르는 미국의 공세에 중국은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중국 외교부는 최근 “미국증시에 상장된 일부 기업이 회계를 조작한 것은 사실이지만 이는 모든 중국 기업을 대표하지 않는다”면서 “미국은 (상장기업) 관리감독 문제를 정치적으로 조작하고 있다”고 반박하기도 했다.
회계 합의가 폐지되더라도 알리바바와 바이두처럼 이미 미증시에 상장된 중국 기업은 직접 타격을 받지 않을 것이라고 로이터는 내다봤다. 하지만 중국 기업의 불투명한 공시로 미국 당국의 불만이 높아지면서 더 직접적인 규제가 뒤따를 수 있는 신호라고 로이터는 분석했다.
한편 이날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은 “중국이 일방적으로 영해 및 해양 자원에 대한 권리를 주장하는 것은 불법”이라며 중국을 정면으로 공격했다. 폼페이오 장관은 성명을 내고 “남중국해 대부분의 해양자원들에 대한 베이징의 주장은 그것들을 통제하기 위한 괴롭힘과 마찬가지로 완전히 불법이라는 점을 분명히 한다”고 강조했다.
/뉴욕=김영필특파원 베이징=최수문특파원 전희윤기자 susopa@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