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항을 나설 때 내 인생의 콩쿠르에서 우승한 것만 같았죠.”
서울시향 부지휘자 윌슨 응은 지난 1일 독일 프랑크푸르트 공항을 나오던 순간을 잊지 못한다. 입국 거부·노숙 등 공항 밖 땅을 밟기까지 겪은 드라마 같은 이틀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가자, 오직 한 생각이 그의 머릿속을 지배했다. ‘어떻게든 콩쿠르가 열리는 밤베르크에 제시간에 입성해야 한다.’ 대회까지 불과 한 시간을 앞두고 밤베르크에 도착한 그는 나흘 내내 지휘대에 올라 ‘3위 입상’이라는 쾌거를 이뤘다. 제6회 말러 지휘 콩쿠르에서 윌슨 응이 써내려간 치열했던 기록을 이메일 인터뷰로 들어봤다.
그에게 말러는 특별한 존재다. 6년 전 홍콩에서 창단한 오케스트라 이름을 ‘구스타프 말러 오케스트라’라고 지었을 정도다. “말러라는 이름만으로도 이번 콩쿠르는 제게 특별했어요. 정말 수상하길 바랐고요.” 코로나 사태 이후 처음 오프라인에서 펼쳐진 국제 대회는 출국 직전까지도 개최 여부를 비롯해 모든 게 불확실했다. 응은 “한국에서 여러 공연 일정을 소화하는 사이에도 콩쿠르 관련 상황은 수시로 바뀌었다”며 “모든 것이 정말 전쟁 같은 한 달이었다”고 회상했다. 그러나 진짜 전쟁은 독일 공항에 도착한 순간 시작됐다. 현지 공항 방침으로 입국을 거부당한 것이다. 공항 측은 ‘한국의 유럽연합(EU) 입국 제한이 풀렸으나 공식 문서를 받지 못했다’며 대기할 것을 요구했다. “콩쿠르에 함께 참가한 한국인 동료와 이틀 간 공항에 갇혀있었어요. 당시 압박과 피로, 스트레스 때문에 숨을 쉴 수 없을 지경이었죠.”
야속한 시간만 흘러가고 마침내 대회 당일인 7월 1일, 독일이 한국인 입국을 허용한다는 기사를 확인한 응은 입국심사대로 달려갔다. 그러나 무사히 입국 허가 스탬프를 받은 한국인 동료와 달리 홍콩 여권을 지닌 그는 허가를 받지 못했다. 공항 경찰서에서 ‘한국에 거주하며 그곳에서 일하고 있다’는 점을 누차 설명해야 했다. 그때 시간이 오후 2시. 2시간 거리의 대회장에는 늦어도 오후 5시까지 도착해야 했다. 당장 공항을 뛰쳐나가지 않으면 콩쿠르도 사라지는 상황에서 그는 필사적이었다. “공항직원에게 ‘지금 나를 보내주던가 아니면 한국으로 돌아가겠다’고 했죠. 마침내 공항 직원이 저를 보내줬고요. 아, 공항을 나오는 순간은 절대 잊지 못할 겁니다.”
가까스로 입성한 밤베르크에서 그는 온 힘을 다해 지휘했다. 응은 이 일련의 과정이 “내가 인간임을 증명해내는 과정이었다”고 한다. “4번의 라운드를 견뎌낸 저 자신이 자랑스럽습니다. 불확실하고 예상치 못한 상황들에 대처하면서 많이 발전했어요. 모든 것이 가치 있었습니다.”
응은 오는 28일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 홀에서 열리는 2020 교향악축제의 개막 무대에 올라 서울시향을 지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