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 개발 정보를 빼돌린 중국인 2명을 기소한 데 이어 텍사스주 휴스턴에 있는 중국 총영사관 폐쇄까지 요구했다. 최근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책임론과 홍콩 국가보안법을 놓고 신경전을 벌이고 있는 미중 간 갈등 수위가 한층 고조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지식재산권 보호를 명분으로 내세운 미국의 이번 대중 압박은 양국 외교관계에서 전례를 찾기 힘든 초강경 조치인 만큼 2차 미중 무역협상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왕원빈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22일 정례 브리핑에서 전날 미국 측이 휴스턴 중국 총영사관을 사흘 안에 폐쇄하겠다고 일방적으로 통보한 사실을 언급하며 “이는 중국에 대한 일방적인 정치적 도발”이라고 비난했다. 그러면서 “국제법과 국제관계 기본준칙을 위반한 터무니없이 부당한 조치를 중국은 강력히 규탄한다”고 말했다. 왕 대변인은 “미국이 잘못된 길로 간다면 우리는 단호하게 대응할 것”이라며 이번 조치에 맞대응해 보복할 것임을 분명히 했다.
미국 측이 무슨 이유로 총영사관 폐쇄를 통보했는지는 구체적으로 알려지지 않았다. 다만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의 덴마크 방문을 수행 중인 모건 오테이거스 국무부 대변인은 이날 기자들에게 이번 조치가 지재권과 관련돼 있다며 미국인들의 개인정보 보호를 위한 것이라고 밝혔다. 오테이거스 대변인은 “미국은 중국이 우리의 자주권을 침해하고 우리 국민을 위협하는 것을 용인하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이와 관련해 AP통신 등 외신들은 휴스턴 총영사관 폐쇄는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행해온 대중 압박 조치의 연장선이라고 해석했다. 블룸버그통신은 전날 미 법무부가 백신 개발 정보를 해킹한 혐의로 중국인 2명을 기소한 사실을 거론하며 “미국이 중국과의 무역전쟁부터 코로나19 팬데믹 책임론, 5세대(5G) 네트워크 사업에서의 화웨이 제품 배제 등 충돌을 이어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미국은 앞서 지난 2017년 러시아의 미국 대선 개입 의혹과 관련해 샌프란시스코의 러시아 총영사관 등에 폐쇄 명령을 내린 바 있다. 첨예한 갈등을 겪고 있는 중국에 대한 이번 휴스턴 총영사관 폐쇄 통보는 미중 관계에서 찾기 힘든 조치다. 코로나19 확산 책임론과 홍콩보안법 강행 등을 놓고 전운이 고조되고 있는 양국 관계가 이번 조치로 걷잡을 수 없는 전면전 양상으로 치달을 수 있다는 우려가 크다.
이번 폐쇄 통보에 앞서 전날 오후8시 20분께 휴스턴 중국 총영사관 안뜰에서 화재가 발생했는데 휴스턴 경찰은 영사관 직원들이 퇴거 전 기밀문서를 소각하다 불이 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당시 출동한 소방대원들은 허가를 받지 않아 총영사관 내부로 진입할 수 없었다고 블룸버그통신은 전했다. 다만 NBC 계열 휴스턴 지역 방송인 KPRC2는 인근 주민들이 이날 총영사관 앞마당에 쓰레기통으로 보이는 물체 안에서 종이가 소각되고 있었다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방송이 입수한 영상에는 총영사관 창문 밖으로 종이를 던지는 사람들과 불타고 있는 통들의 모습이 담겼다.
미국의 잇따른 압박에 중국도 연일 미국 고위관료를 실명 비판하며 반격했다. 인민일보는 22일 피터 나바로 백악관 무역·제조업정책국장이 코로나19와 관련해 중국 책임론을 주장하며 유언비어를 퍼뜨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신문은 “나바로 국장은 코로나19가 우한의 바이러스연구소 실험실에서 나왔다고 주장했지만 코로나19는 자연 발생한 것이라는 점이 드러났다”면서 “나바로 국장의 주장은 아무런 근거도 없다”고 비판했다. 인민일보는 이 외에도 중국 당국이 우한 농수산물시장을 폐쇄해 증거를 인멸했고 중국인의 해외출국을 의도적으로 방치했다는 나바로 국장의 주장은 모두 유언비어라고 강조했다. /베이징=최수문특파원 전희윤기자 heeyoun@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