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외풍에 시달려온 윤석헌 금융감독원장이 다시 어깨를 펴고 ‘강윤(强尹)’ 본색을 드러내고 있다. 최근 은행에 ‘지점 폐쇄 속도조절을 하라’며 공개경고장을 날린 데 이어 사모펀드 사태와 관련해 금융사가 소액 분쟁조정 결과는 무조건 받아들여야 하는 ‘편면적 구속력’까지 꺼내 들었다.
윤 원장은 11일 임원회의에서 사모펀드 사태를 언급하며 “관련 부서에서 편면적 구속력 등 분쟁조정 제도의 실효성을 확보하기 위한 방안 마련을 위해 적극 노력하라”고 주문했다. 또 “금융사가 고객의 이익을 우선시하는 문화를 정착시킬 수 있게 관련 제도 개선에 힘써달라”고 당부했다. 관련 제도로 ‘금융상품 판매·운용 관련 불건전 영업행위에 대한 감독·검사 강화’를 예로 들어 깐깐한 검사를 예고했다.
편면적 구속력은 금융분쟁이 생겨 금감원 내 분쟁조정위원회가 권고안을 내리면 이에 만족하지 못한 소비자는 법원에 소송을 제기할 수 있지만 금융사는 수용해야 하는 제도다. 내년 3월부터 시행되는 ‘금융소비자보호법’을 만드는 과정에서 일부 논의가 있었지만 들어가지 않았다. 도입을 주장하는 쪽에서는 금감원이 분쟁조정 권고안을 내놓아봤자 구속력이 없어 금융사는 계속 연장 신청을 한 후 결국 불수용해 소비자만 ‘희망고문’에 시달린다고 한다. 금융사는 강력 반발한다. 금융권의 한 관계자는 “헌법에 모든 국민은 재판을 받을 권리가 있다는 ‘재판청구권’이 있는데, 분쟁조정 결과를 금융사는 무조건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은 위헌 소지가 있다”고 말했다. 다른 관계자도 “정부기관도 행정처분에 대해 당사자가 소송을 할 권리를 준다”며 “하물며 완전한 의미의 정부기관도 아닌 금감원의 결정을 소송할 권리도 없이 받아들이라는 것은 과도하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금감원의 한 관계자는 “외국의 경우도 분쟁 금액이 소액인 경우는 편면적 구속력을 실행한다”며 “우리도 소액 분쟁조정에 도입하는 것을 금융위원회·국회 등과 적극 협의하라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윤 원장의 발언은 라임, 외환 파생상품 키코(KIKO) 분조위 결과를 판매사들이 받아들이지 않은 데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지난달 7일 분조위는 라임 무역금융펀드에 대해 ‘착오에 의한 계약취소’를 결정하고 판매사가 투자자에게 돈을 전액 반환하라고 권고했지만 은행·증권사 등 판매사가 연기를 요청한 상태다.
한동안 조용했던 윤 원장이 다시 소비자보호 드라이브를 거는 것은 윤 원장을 제약했던 사안들이 해소된 영향도 있다는 관측이다. 껄끄러운 관계였던 김조원 전 청와대 민정수석의 퇴진이 대표적이다. 김 수석의 민정수석실은 2월부터 넉 달간 금감원을 이례적으로 감찰했고 일부 금감원 간부에 대한 징계까지 요구한 바 있다. 사모펀드 사태도 금감원의 감독 부실보다는 금융위의 과도한 규제 완화로 비판의 화살이 돌아가는 모양새다. 한편 윤 원장은 부동산 시장과 관련, “지속적으로 강화해 온 대출규제가 금융사 영업현장에서 철저히 준수되게 감독에 만전을 기하라”며 “금융사에 대한 점검을 강화하고, 위반사례가 적발될 경우 엄중 조치하라”고 주문했다. 또 “개인사업자·법인대출, 사모펀드 등을 활용해 규제를 우회하는 편법대출에 대해서도 대응을 강화하라”고 지시했다. 이태규기자 classic@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