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 스포츠 문화

우리네 역사도 이토록 화려했더라

민중미술가 최민화 개인전

갤러리현대 10월11일까지

현대의 처절함 그리다 고대로 눈 돌려

오방색 전통적 배치에 섬세한 선묘

겸재 정선의 ‘인왕제색도’와 단원 김홍도의 ‘군선도’ 등의 도상을 최민화 식으로 재해석한 ‘인왕이 아즐가’ /사진제공=갤러리현대겸재 정선의 ‘인왕제색도’와 단원 김홍도의 ‘군선도’ 등의 도상을 최민화 식으로 재해석한 ‘인왕이 아즐가’ /사진제공=갤러리현대



본명인 최철환 대신 백성 민(民)자에 꽃 화(花)자를 써 ‘민중은 꽃이다’라는 뜻의 최민화로 이름을 바꿨다. 세상 떠들썩하게 이목을 끈 그의 작품은 미술관 아닌 거리에 걸렸다. 지난 1987년 6월 민주항쟁 당시 이한열의 길거리 장례식에 선보인 대형 걸개그림 ‘그대 뜬 눈으로’가 최민화의 작품이었다. 이한열이 속했던 만화 동아리의 지도강사를 맡았던 인연으로, 화가는 밤을 꼬박 새 폭 7m 대작을 완성했다.

‘거리 그림’이던 최민화의 작품이 국내 정상급 대형 상업화랑에 걸렸으니 만감이 교차한다. 서울 종로구 삼청로 갤러리현대에서 한창인 개인전 ‘원스 어폰 어 타임(Once upon a Time)’은 2017년 ‘이인성미술상’을 수상하며 한국 구상미술의 맥을 잇는 대표작가로 입지를 확고히 한 그가 이듬해 대구미술관의 개인전 이후 공들여 준비한 전시다. 1990년대 말 처음 구상을 시작한 60여 점의 회화와 40여 점의 드로잉이 함께 선보여 20여 년 간 치열하게 고민하고 치밀하게 준비한 작가의 속내를 들춰 보인다.

최민화 ‘웅녀’ /사진제공=갤러리현대최민화 ‘웅녀’ /사진제공=갤러리현대


전시 제목처럼 작품들은 ‘옛날 옛적에’를 더듬는다. 역사의 현장을 누비며 생생한 오늘을 그리던 화가가 시간을 거슬러 상고사로 눈을 돌렸다. 사람이 되고 싶은 곰에게 쑥과 마늘을 건네는 환웅을 그린 단군신화 그림은 그 구도가 흡사 사과를 건네며 아담을 유혹하는 이브를 떠올리게 한다. 웅녀가 곧 들어가 버틸 그림 중앙의 동굴은 어둡기는커녕 샛노랗게 빛나고 신비한 영지버섯이 돋아난 바닥은 선홍색이다. 왼쪽 저 멀리 산세가 녹색에, 청색에, 흑색까지 드리웠으니 오방색을 전통적으로 배치해 한민족의 탄생을 그렸다. ‘호녀(虎女)’라 제목 붙인 작품에서는 이빨 드러낸 호랑이 가죽을 뒤집어쓴 호녀가 곰 가죽 쓰고 고개 푹 숙인 웅녀를 압도하는 주인공이다. 하늘에서 내려왔다는 환웅에게 순응한 웅녀보다 본성에 충실해 자연이기를 포기하지 않고 제 삶을 주체적으로 택한 호녀가 작가에게는 더 매력적이었나 보다.

최민화 ‘호녀’ /사진제공=갤러리현대최민화 ‘호녀’ /사진제공=갤러리현대


‘삼국유사’를 바탕으로 한반도의 고대를 되짚었다는 작가는 주몽, 해모수, 알영, 구지가 등의 신화와 설화를 그림으로 풀어냈다. 독특한 것은 오뚝한 콧날, 짙은 쌍꺼풀, 푸른 눈동자 등 이들의 얼굴이 서양인을 보여준다는 점이다. “역사학자는 나를 망상가라 하겠지만”이라고 단서를 단 작가는 “신(神)을 가장 많이 그리고 표현했던 르네상스인들은 그리스·로마 시대의 신들을 마치 근대인과 같은 정서와 움직임을 갖는 존재로 표현해 제단용이 아닌 살아있는 신으로 그렸다”고 말한다. 서구적 얼굴보다는 한국적 인물이었으면 어땠을까 가정할 수도 있겠으나 작가는 서양이 고대를 풍요롭게 그린 것과 달리 우리는 정작 우리 옛 모습에 대해 관심도 재해석도 부족했다고 꼬집는다. “다른 나라는 항상 과거의 전통을 현재화하려 애쓰는데, 우리는 도시에 수많은 환경미술품이 있지만 서낭당 하나 현대화해놓은 것 없는 기현상을 보입니다.”

최민화 ‘알영-혁거세’ /사진제공=갤러리현대최민화 ‘알영-혁거세’ /사진제공=갤러리현대


최민화 ‘신시’ /사진제공=갤러리현대최민화 ‘신시’ /사진제공=갤러리현대


그리하여 우리 고대사를 그린 작품 곳곳에서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 등 서양미술의 도상을 만날 수 있다. 우리 문명이 이뤘던 풍요를 강조했다. 화려하고 따뜻한 색감이 시선을 끌지만 제대로 봐야 할 것은 그의 선(線)이라. 선으로만 묘사한 표현력이 불화의 선묘 못지않게 섬세하고 기막히다. 작품이 곱다 하여 작가가 한평생 간직해 온 ‘비극적 존재에 대한 애정’을 버린 것은 아니다. ‘공무도하가’를 소재로 백수광부와 울부짖는 그의 처를 그린 작품 등은 민초에 대한 애정이 결코 식지 않음을 보여준다.


서울에서 나고 자란 작가는 홍익대를 졸업했다. 1980년 5·18민주화운동을 표현한 ‘시민’이 안기부 검열로 전시에서 강제 압수당한 후 미국과 멕시코에서 1년여 머무르다 귀국해 본격 민중미술가로 살아간다. 1987년을 기점으로 순수회화 작업으로 돌아서 자화상에 기반한 ‘부랑’, 핏빛을 연상시키는 ‘분홍’ 연작과 ‘회색 청춘’ 등을 발표했다. 이번 전시는 10월11일까지다.




최민화 ‘공무도하가-백수광부의 처’ /사진제공=갤러리현대최민화 ‘공무도하가-백수광부의 처’ /사진제공=갤러리현대


최민화 드로잉 전시 전경. /사진제공=갤러리현대최민화 드로잉 전시 전경. /사진제공=갤러리현대


조상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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