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타 차 불안한 선두를 지키던 13번홀(파4). 김한별(24·골프존)은 티샷이 왼쪽 페어웨이 벙커에 빠져 고비를 맞았다. 볼이 턱 아래에 놓여 곧장 그린을 노릴 각도가 나오지 않았다. 짧은 클럽을 이용해 페어웨이로 빼낸 그는 세 번째 샷을 그린에 올렸으나 홀까지 15m가 남아 보기를 기록할 가능성이 커 보였다. 하지만 오르막 경사를 타고 구른 볼은 깃대와 홀 사이 공간으로 빨려 들어갔다. 혼전에 빠질 위기를 피할 수 있었기에, 우승의 발판이 된 값진 파 세이브 장면이었다.
한국프로골프(KPGA) 투어의 새 별로 떠오른 2년 차 김한별이 불과 2주 만에 큰 별이 돼 빛났다. 김한별은 13일 인천 베어즈베스트 청라 골프장(파71)에서 열린 제36회 신한동해 오픈(총상금 14억원) 4라운드에서 보기 없이 버디 4개를 잡아 4타를 줄였다. 최종합계 14언더파 270타를 기록한 그는 교포선수 이태훈(30·캐나다·12언더파)을 2타 차로 제치고 정상에 올랐다.
지난달 30일 끝난 헤지스골프 KPGA오픈을 제패한 김한별은 이로써 생애 우승의 흥분이 채 가라앉기도 전에 두 번째 트로피를 들어 올렸다. 시즌 7번째 대회 만에 가장 먼저 2승 고지에 오른 그는 특히 2014년의 박상현(37) 이후 5년10개월 만에 KPGA 투어 2개 대회 연속 우승을 달성하며 이번 시즌을 ‘접수’할 채비를 갖췄다. 대상(MVP)에 해당하는 제네시스 대상 포인트 1위를 굳게 지켰고, 다승과 상금 부문에서도 1위에 올랐다. 2억6,030만원의 우승상금을 받은 그는 최근 두 대회에서만 3억6,030만원을 거머쥐며 약 4억1,774만원을 쌓았다. 향후 5년간 시드권이라는 마음 든든한 특전도 수확했다.
우승을 경험한 김한별은 자신감이 넘쳤다. 첫날을 2언더파 공동 21위로 시작한 그는 2라운드에서 3타를 줄인데 이어 3라운드에서 5언더파를 몰아쳐 공동 2위까지 치고 나왔다. 이날 1번홀(파4)에서 1m 버디를 잡아 문경준(38)과 공동 선두를 이뤘고 문경준의 2번홀(파5) 보기 덕에 단독 선두로 나섰다.
이후 승부는 대혼전 양상으로 흘렀다. 6번홀(파5)에서 두 번째 버디를 보탠 이후 파 행진을 이어간 김한별은 경쟁자들의 거센 추격을 받았다. 12번홀을 마쳤을 때는 문경준, 이태훈, 왕정훈(25), 권성열(34), 서요섭(24) 등 5명이 1타 차 공동 2위 그룹을 이뤘다. 13번홀 ‘천금의 파’로 1타 차 리드를 지킨 김한별은 막판 이태훈의 공세에 시달려야 했다. 전반에 제자리걸음으로 잠잠했던 이태훈은 후반 들어 7개 홀에서 버디 6개를 쓸어담으며 잠시 1위에 나서기도 했다. 압박감 속에 14번(파5)과 15번홀(파4) 연속 버디로 단독 선두를 되찾은 김한별은 이태훈이 마지막 18번홀(파4)에서 보기를 적어내며 경기를 마치자 2타 차 여유를 안고 나머지 홀을 파로 막았다. 첫 우승 때 심호흡을 하며 긴장했던 모습과 달리 가볍게 챔피언 퍼트를 집어넣은 김한별은 어퍼컷 세리머니를 펼친 뒤 “두 번 우승했다”를 외쳤다.
2017년 이 대회 우승자인 이태훈은 3년 만의 정상 탈환과 KPGA 투어 통산 3승 달성을 노렸으나 준우승에 만족해야 했다. 2, 3라운드에서 선두를 달리며 5년 만의 통산 2승에 도전한 문경준은 2타를 잃고 공동 7위(9언더파)로 밀렸다. 이번 시즌 두 차례의 준우승을 기록한 신예 김민규(19)는 8언더파 공동 11위, 국내 첫 우승을 벼른 미국프로골프(PGA) 투어 1승의 노승열(28)은 5언더파 공동 22위로 마감했다.
김한별은 우승 뒤 “자만하지 않고 열심히 하는 더 좋은 선수가 되겠다”고 소감을 밝히고 “1승이 이번 시즌 목표였는데 2승까지 이뤘으니 누구나 꿈꾸는 대상 수상을 위해 달려가겠다”고 각오를 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