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백상논단] ‘불안정 노동계층’과 새로운 사회안전망 구축

서상목 한국사회복지협의회 회장

코로나 사태로 사회 양극화 심화

기존 사회보장제도 문제점 드러나

복잡다단 복지·재정제도 재정비 등

실정 맞는 사회안전망 재설계 필요

서상목 한국사회복지협의회 회장서상목 한국사회복지협의회 회장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기술혁신에 따른 많은 이점에도 불구하고 빈부격차가 확대되고 고용이 불안정해지는 것은 우리뿐 아니라 모든 선진국이 공통으로 겪고 있는 사회문제다. 영어로 불안정을 의미하는 ‘프리커리어스(precarious)’와 노동계층을 뜻하는 ‘프롤레타리아트(proletariat)’를 합성해 ‘불안정 노동계층(precariat·프레카리아트)’이라고 한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는 불안정 노동자의 삶을 더 궁핍하게 함은 물론 양극화의 골을 더욱 깊게 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평생직장과 완전고용을 전제로 설계된 기존 사회보장제도의 문제점이 발생하고 있어 사회안전망을 새로 짜야 한다는 여론이 힘을 받고 있다.

더욱 촘촘한 사회안전망을 구축하기 위해서는 막대한 재정투입이 불가피하고 활기찬 경제가 이를 뒷받침해줘야 한다. 그러나 많은 전문가는 우리 국가경쟁력의 가장 큰 취약점으로 경직된 노동시장을 꼽고 있다. 따라서 새로운 사회안전망을 구축하려면 노동시장 경직성 해소를 위한 근본대책이 선행돼야 한다. 덴마크 등 북유럽 국가들이 경제발전과 빈부격차를 동시에 해결한 비법은 유연한 노동시장과 튼튼한 사회안전망으로 특징지어지는 ‘유연안정성(flexicurity)’ 정책이었다. 이를 진보정권에서 시행하기 어렵다고 생각할 수 있으나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다. 정리해고를 용이하게 하는 노동개혁 정책이 보수정권인 김영삼 정부에서는 노동계 반발로 무산되었으나 진보정권인 김대중 정부에서는 성공적으로 추진된 전례도 있다.


최근 국제무대에서 ‘불안정 노동계층’ 문제를 적극적으로 제기한 사람은 ‘기본소득제글로벌연대(BIEN·Basic Income Earth Network)’ 설립에 앞장섰던 영국 경제학자 가이 스탠딩이다. 그는 영국과 유럽 국가의 최근 사례를 지적하면서 불안정 노동계층이 정치·사회적으로 매우 위험한 존재가 될 수 있음을 경고한다. 그리고 이에 대한 대안으로 국민 개개인의 기본생계를 보장하는 ‘기본소득제’ 도입을 건의하고 있다. 최근 우리도 정치권을 중심으로 기본소득제 논의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문제는 이에 필요한 막대한 재원의 조달 방안이다. 월 30만원 정도의 기본소득제 추진에 필요한 연 180조원 규모의 재원을 기존 복지제도와 재정제도의 재정비를 통해 마련할 수 있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그러나 이 경우에도 기존 제도의 개혁이 정치적으로 가능할 것인가에 대한 논란은 남는다. 기본소득제는 비교적 간단하고 운영상 부작용이 적음은 물론 복잡다단한 복지·재정제도를 대대적으로 재정비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된다. 기본소득제를 중심으로 새로운 사회안전망을 재설계해야 한다. 기본소득제는 결국 오는 2022년 대선 과정에서 재원조달 방안과 함께 공약으로 제시되고 선거에서 승리하면 이를 추진하는 형태로 진행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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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 사회복지 전문가들은 기존 사회보험제도의 사각지대를 해소해 불안정 노동계층 문제를 해결하자는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이는 현 정부가 선호하는 정책노선이다. 지난 5월10일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 3주년 국정연설을 통해 직접 ‘전 국민 고용보험’을 거론했다. 코로나19로 실업자가 급증하는 현실에서 근로자의 40%에 달하는 고용보험 사각지대를 해결하기 위해 보험 적용 기준을 임금이 아닌 소득으로 전환하자는 것이 이 정책의 핵심이다. 고용보험뿐 아니라 공적연금 역시 상당한 사각지대가 존재하기 때문에 이 논의는 임금이 아니라 소득 중심으로 사회보험 체제 전체를 개혁하자는 주장으로 발전하고 있다. 이를 위해 기존 사회보험료를 ‘국민보험세’로 전환하고 징수 업무를 소득정보를 갖고 있는 국세청이 주체가 돼 추진할 것을 제안하고 있다.

새로운 사회안전망에 대한 논의가 학계와 정치권을 중심으로 활발히 이뤄져 시대 상황과 우리 실정에 적합한 시스템이 개발되고 조기에 추진·정착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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