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희 삼성 회장의 별세로 국내 1·2세 경영인 시대가 저물고 3·4세 경영인으로의 세대교체가 속도를 내고 있다.
4050세대인 3·4세 경영인들은 산업화의 기틀을 닦으며 사업 확장에 치중했던 선대 경영인들과 달리 ‘선택과 집중’에 주력하며 차별화의 길을 걷고 있다. 일찌감치 글로벌 감각으로 무장해 수평적 조직문화를 중시하고 디지털 전환에 적극적인 점도 3·4세 경영인들의 특징으로 꼽힌다.
26일 업계에 따르면 지난 25일 별세한 이 회장을 비롯해 지난해와 올해 유독 많은 1·2세 경영인들이 세상을 떠났다.
지난해 4월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이 지병 악화로 세상을 떠나 장남인 조원태 회장이 한진그룹 총수에 올랐다. 지난해 12월에는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과 구자경 LG그룹 명예회장이 며칠 차이를 두고 별세했다. 앞서 2018년 6월에는 구자경 명예회장의 장남이자 LG그룹 3대 회장인 구본무 회장이 갑자기 세상을 떠나 당시 40세였던 장남 구광모 상무가 LG그룹 총수에 올랐다. 올해 1월에는 롯데그룹 창업주인 신격호 명예회장이 별세했고 이건희 회장마저 이달 25일 세상을 떠났다. 현대차그룹은 최근 정몽구 명예회장이 경영일선에서 물러나고 아들인 정의선 회장이 새롭게 현대차 총수에 올랐다.
정의선 회장이 선임되며 삼성·현대차·SK·LG 4대 그룹은 모두 4050 총수 시대를 맞았다. 1960년생인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59세로 맏형이고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1968년생)과 정의선 회장(1970년생)이 50대로 뒤를 잇는다. 구광모 회장은 42세로 최연소다. 최태원 회장은 2세 경영인이고 정의선 회장과 이재용 부회장은 3세 경영인, 구광모 회장은 4세 경영인이라는 차이가 있다. 4대 그룹 총수 가운데 이재용 부회장만 아직 회장 직함을 달지 않았다. 재계에서는 내년 이 부회장의 국정농단 파기환송심 결과가 나온 뒤에야 회장 직함을 다는 방안이 논의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이들 2~4세 경영인은 서로 왕래가 드물었던 선대 경영인들과 달리 종종 만날 정도로 친분이 두터운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달 초에는 서울 모처에서 만나 경영계 현안을 논의하고 친목을 도모한 것으로 전해졌다.
4대 그룹 총수들은 최근 배터리 사업 협력을 위해 서로 얼굴을 맞대기도 했다. 정의선 회장이 5월 이재용 부회장을 만난 데 이어 6월 구광모 회장, 7월 최태원 회장을 잇달아 만나 차세대 전기차 배터리 사업 협력을 논의했다. 한화그룹과 GS그룹도 현재 2세대 체제이지만 동시에 3·4세대 시대로의 변화도 진행 중이다.
한화는 김승연 회장의 장남인 김동관 한화솔루션 전략부문장이 지난달 사장으로 승진하면서 3세 경영에 속도를 내고 있다. 재계에서는 김동관 사장이 화학·방산 계열사를, 차남인 김동원 한화생명 상무가 금융 계열사를 맡을 것이라는 시나리오가 거론된다. GS그룹은 허창수 회장의 외아들인 허윤홍 GS건설 부사장이 사장으로 승진하며 4세 경영이 본격화했다.
롯데그룹은 신동빈 회장의 아들 신유열씨가 올해 일본 ㈜롯데에 입사하며 3세 경영 체제를 준비하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