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동십자각]'에코 챔버'에서 탈출하는 법

유주희 디지털편집부 차장




지난 2019년 뉴질랜드 크라이스트처치의 이슬람 사원에서 총격 테러로 50명이 사망했을 때다. 저신다 아던 뉴질랜드 총리는 “테러범의 이름을 언급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테러범이 가장 원했던 것, ‘악명’을 안겨주지 않겠다는 의지였다. 반면 우리나라 대부분의 언론은 n번방 범인 같은 범죄자의 발언을 토씨 하나 놓칠새라 앞다퉈 보도한다. 한국 언론이 비판받는 지점은 이뿐만이 아니다. 낚시성이거나 선정적인 제목, 과도한 정파성, 그 와중에 오보까지 다양하다.


언론의 잘잘못을 해명하기 위한 글은 아니다. 다만 하루에도 6만 개 넘게 쏟아지는 뉴스 속에서 성실한 기사, 좀 더 의미 있는 기사를 택해 읽는 방법을 제시하려는 글이다. 제일 확실한 방법은 신문 한 부, 한 시간짜리 방송사 뉴스를 통째로 보는 것이다. 제안자가 업계 종사자라 의심스러우실 수 있겠으나, 이유는 다음과 같다.

포털에서 손 가는 대로 기사를 읽다 보면 조회수 높은 기사를 중심으로 접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조회수 높은 기사들은 각 매체의 단독 기사, 사회적 의미가 깊은 기사일 수 있지만 그저 자극적인 경우도 적지 않다. 또 손 가는 대로 읽는 기사는 해당 독자가 이미 관심이 있거나 그의 정치관·세계관에 부합하는 기사일 가능성이 높다. 심하면 ‘보고 싶은 것만 보는’ 뉴스 소비, 편향적이고 편파적인 뉴스 소비만 하게 된다. 관심사 밖의 뉴스, ‘많이 본 뉴스’ 바깥의 심층 보도는 눈에 들어오지 않을 수 있다. 결국 똑같은 목소리가 메아리치는 방 안에 갇히는 ‘에코 챔버’ 현상이 강화될 공산이 크다.


깊이 있는 뉴스를 통해 시야를 넓히는 경험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독자들이라면 스스로 괜찮다고 생각하는 매체를 택해 신문이든 방송 뉴스든 통째로 볼 필요가 있다. 매일 큐레이팅 된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인터넷의 무수한 조회수용 기사들 틈에서 헤매기보다 효율적일 것이다. 특히 정치적 성향이 다른 복수의 매체를 ‘통째 구독’ 한다면 최상의 효과가 기대된다. 시간이 많이 들겠지만 인터넷에서 조각난 뉴스, 내 안의 메아리를 키우는 뉴스만 보는 스스로가 싫다면 어떻게든 시간을 내 보시길 바란다. 뉴스 VOD는 언제 어디서든 클릭해 볼 수 있고, 굳이 각 언론사 홈페이지를 찾아가기 귀찮다면 포털에서 신문별로 1면부터 맨 뒷면까지 보여주는 ‘지면보기 서비스’를 언제 어디서든 무료로 이용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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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성 매체를 통째로 보라니, 이 무슨 구닥다리 같은 소린가 할 수도 있다. 이 글을 쓰면서 스스로도 비현실적인, 혹은 종사자로서의 오만한 제안 아닌가 거듭 의심했을 정도다. 종이신문을 읽는 뉴스 소비자의 비중이 10%대로 떨어진 마당에, 넷플릭스와 왓챠와 요즘 시대의 다양한 취미 생활을 뒤로 하고 신문을 보라니 가당키나 한 소리인가.

그러나 인터넷에서 눈에 띄는 대로 뉴스를 접하는 것은 마치 칸막이가 없는 커다란 서랍과도 같다. 무언가 가득 차 있기는 하지만 각각의 연관성이나 일목요연함은 없다. 원하는 물건들을 찾아 끄집어내는 데도 시간이 걸린다. 반면 여전히 스트레이트, 해설기사 등의 형식을 갖춰 순서대로 배치된 신문·방송 기사는 이슈의 경중과 관련된 정보·견해를 차례대로 한 묶음씩 꺼내 뉴스 소비자에게 쥐어준다.

그 기사들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 읽지 않아도 된다. 최소한 제목이라도 읽어 두면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 정도는 인식하게 된다. 인터넷에선 잘 눈에 띄지 않는, 각 매체별로 성심껏 준비한 심층 보도나 훌륭한 외부 필자의 칼럼도 종종 덤으로 얻을 수 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독자의 지식 수준·사고력·집중력뿐만 아니라 자기소개서·보고서 쓰는 능력, 심지어 소셜 미디어에 더 좋은 글을 올리는 능력에도 영향을 준다.

광활한 인터넷의 함정은 그 속에서 좋은 정보와 콘텐츠를 골라내는 데 노력과 안목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기존 매체들이 정 미덥지 않다면 요즘 훌륭한 뉴스 큐레이션 서비스도 있다. 이렇게 경쟁사의 서비스까지 권해가며 설득하려는 이유는, 질 좋은 정보와 심층 보도와 깊이 있는 칼럼을 통해 우리가 더 성장한다고 여전히 믿기 때문이다. /ginger@sedaily.com

유주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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