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오늘의 경제소사] 1620년 메이플라워 맹약

'정당하고 평등한 사회' 추구

메이플라워 맹약/위키미디어메이플라워 맹약/위키미디어



1620년 북미 대륙 서안 북위 41도 지점 케이프 코드, 메이플라워호 선상. 아메리카 대륙 최초의 성문헌법으로도 불리는 ‘메이플라워 맹약(Mayflower Compact)’이 맺어졌다. 내용은 ‘정당하고 평등한 법률’에 의거한 자치기구(정부) 설립과 구성원들의 복종. 영국 플리머스를 떠나 57일간 항해 끝에 다다른 신대륙에 상륙하기 앞서 맹약을 맺은 배경에는 두려움과 우려가 깔려 있다.

가장 큰 걱정거리는 분열. 상륙 지역 선정부터 청교도(37명)와 비청교도(64명)의 입장이 엇갈렸다. 대구가 지천인 풍부한 어장이었으나 비청교도들은 1607년 개척된 식민지 제임스타운과 거리가 멀다는 이유로 상륙을 꺼렸다. 정착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분쟁에 대비해 공동체 구성원 다수의 뜻을 문서로 만들었으나 모두가 서약에 동의하지는 않았다. 항해 도중에 사망한 선원 1명을 빼고 남자 74명, 여자 28명 가운데 남자 41명의 동의만 얻었다.


맹약을 맺고도 겨우내 선상에서 지낸 이유도 땅이 얼어붙어 농사가 불가능한데다 의견 대립이 여전히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유난히 추웠던 그해 겨울 탓에 분란 요인은 얼려버렸다. 상륙하기 전까지 남자 28명, 여자 13명, 아이 7명이 질병과 영양실조로 사망하자 위기감이 퍼지고 너나없이 서약을 지켰다. 제임스 1세의 박해를 피해 1609년 네덜란드 레이덴에 피신했다가 최종적으로 북미행을 택한 청교도와 한 몫을 노리고 배에 오른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하나로 뭉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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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듬해 봄부터 새로운 정착촌 플리머스 식민지에는 희망이 피어났다. 땅은 기름지고 인근 바다는 ‘케이프 코드(대구 곶)’라는 지명답게 어족자원이 넘쳤다. 결정적으로 원주민들의 도움이 컸다. 왐포노아그족은 굶주린 정착민들에게 사슴과 칠면조 고기를 주고 집 짓는 법과 고기잡이를 가르쳐줬다. 미국의 추수감사절도 정착민들이 원주민들에게 보답하기 위해 현지 풍속에 따라 사흘간 먹고 마시는 축제를 벌인 것에서 기인한다. 비록 얼마 안 지나 은혜를 원수로 갚았지만.

미국인들은 1585년 개척했으나 사람들이 사라져버린 로아노크나 제임스타운을 제치고 13~35년 늦게 도착한 플리머스의 정착민들을 ‘순례 시조( Pilgrim Fathers)’라고 떠받든다. 도전정신이 강하고 검약하며 부지런했던 플리머스 정착민을 직계 조상으로 여기는 것 같다. 메이플라워 서약을 구약의 ‘언약’에서 따왔다는 주장에도 미국식 선민의식이 배어 있다. 바라노니 미국 사회가 400년 전 메이플라워 서약에 명시된 대로 정당하고 평등하기를.
/권홍우선임기자 hongw@sedaily.com

권홍우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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