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IT

[로터리]출연연과 대마불사론

박현민 한국표준과학연구원 원장

출연연, 생산성 낮고 역할 명확치 않다는 지적

자율성 부재 딛고 국가적 문제 해결 제시하고

PBS 개선·65세 정년환원 넘는 비전 갖춰야

박현민 한국표준과학연구원 원장





대마불사(大馬不死: 말들이 모여 무리를 이룬 대마는 살길이 생겨 쉽게 죽지 않음)는 바둑에서 나온 용어다. 크게 지어진 집은 여러 면에서 활로를 모색할 수 있고 대마가 잡히면 패배는 당연하므로 기사도 혼신의 힘을 기울여 쉽게 죽지 않는다는 의미다.

대마불사의 의미는 바둑을 넘어 사회 곳곳에서 사용되는데 최근에는 비효율적인 대형 조직을 빗대어 주로 회자된다. 우리나라의 지난 1997년 외환위기 때 나타났던 대기업 살리기,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시 규제 완화 정책으로 실시한 미 정부의 대규모 달러 방출액 중 95%가 정작 책임 당사자인 은행권으로 흘러가 은행권 살리기가 된 사례 등이 대표적이다. 우리나라는 대기업이 위기에 빠질 때마다 공적 자금과 특혜를 제공해서라도 무조건 회생시켜야 한다는 대마불사론도 있다.


이와 같은 대마불사론은 다가올 미래를 충분히 예견하고 이를 해결할 방법을 찾을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거대한 조직, 안정적 환경에 기대어 안주해오다 돌이킬 수 없는 문제에 봉착한 경우를 일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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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나타나는 대학의 정원 채우기 문제 역시 대마불사론에서 자유롭지 않다. 대학은 거의 10년 전부터 대학 학령인구 감소로 인한 인력 조정이 불가피한 상황이었고 많은 전문가가 이에 대한 문제를 지속적으로 제기해왔다. 그럼에도 안일한 대마불사론이 본질을 덮어버려 결국 신입생 미달이 본격화하는 어려운 상황에 처한 것이다.

정부 출연 연구기관(출연연)도 오래전부터 꼬리표처럼 따라다니는 문제들이 있다. 투입 대비 생산성이 낮고 대형 성과가 없으며 국가 과학기술 생태계 내에서 출연연이 가진 역할이 명확하지 않다 등과 같은 내용이다. 출연연이 국가 연구 개발 생태계에서 차지하는 역할은 지난 50년 동안 시기에 따라 변화해왔다. 현재 출연연이 감당해야 할 가장 중요한 역할은 새롭게 대두되는 국가적 문제에 해결 방안을 제시하는 것인데 그 같은 기대 수준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동안 출연연은 이런 상황이 돼버린 이유를 정부의 과도한 간섭, 자율성의 부재 등으로 생각하고 PBS(정부와 기업에서 연구 과제 수주시스템) 해결과 65세 정년 환원을 최우선의 협상 조건으로 삼아왔다. 급변하는 외부 생태계의 변화를 살피지 못하고 내부 문제에만 골몰한 것이다. 그 결과 출연연의 발전을 위한 돌파구를 찾지 못하고 한 발자국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코로나19는 비대면 교육 시스템의 도입, 재택근무를 통한 업무 효율화 등 수십 년 동안 바뀌지 않았던 일들을 1년 만에 바꿔놓았다. 이제 출연연도 지금까지 축적돼온 문제를 해결하고, 새롭게 변화하지 않고는 앞으로 나갈 수 없다. 국가 연구 개발 체계 내에서 당당히 한 축을 담당하고 있는 출연연 스스로 향후 30년을 내다보며 존재의 정당성을 확보할 수 있도록 독자적인 그림을 그려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대마불사론은 없다’고 생각하는 출연연 구성원들의 의식 변화가 필수적이다.

고광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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