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0월, 그룹 방탄소년단(BTS)이 미국의 비영리단체 코리아소사이어티로부터 ‘밴 플리트상’을 받았다. 미8군 사령관으로서 한국전쟁에 참여했던 제임스 벤 플리트를 기리기 위해 지난 1995년 제정된 이 상은 매년 한미 양국 우호 관계에 기여한 개인이나 단체에 수여된다. 상의 성격상 당연히 수상자는 한미 관계를 언급하는 소감을 내놓기 마련이다. 게다가 지난 해는 한국전쟁 발발 70주년이었다. BTS는 “(한미) 양국이 함께 겪었던 고난의 역사와 많은 남성과 여성의 희생을 영원히 기억해야 한다”고 수상 소감을 전했다.
그런데 BTS 수상 소감을 난데 없이 중국 언론과 누리꾼이 물고 늘어졌다. 왜 한국 전쟁 당시 중국군의 고귀한 희생은 언급하지 않았느냐는 것이다. 중국의 개입으로 1·4후퇴 등을 겪었던 한국인의 입장에선 황당함을 넘어 되레 분노해야 할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그럼에도 중국에서는 BTS 퇴출을 요구하는 불매 목소리까지 터져 나왔다. 국제 여론이 중국에 불리하게 돌아가면서 사태는 이내 잠잠해졌지만, 이것이 끝은 아니었다.
극단의 중국 중심 사고관에 억울한 조리 돌림을 당하는 한국 연예인과 기업이 부지기수다. 최근 들어서는 김치, 한복, 판소리 등을 두고 한국이 중국 것을 훔쳤다는 기 막힌 주장까지 중국에서 나오고 있다. 한국 만이 아니다. 대만, 미국, 일본, 프랑스 등 다른 나라도 걸핏하면 십자포화 대상이 되곤 한다. 심지어 폭력을 수반한 공격에 짐을 싸서 중국에서 도망쳐 나오는 사례도 있다.
일부 누리꾼의 행태로 치부하기엔 심상치 않은 중국 특유의 애국주의가 최근 득세하고 있다. 이에 대해 인류학자 김인희는 “21세기 홍위병이라 할 수 있는 ‘분노청년’이 자리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중국이 최고라는 중화 민족주의와 외국에 대한 배타성을 동시에 갖고 있는 젊은 층이 늘면서 이런 현상이 심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오랫동안 중국에서 공부한 그는 현지에서 직접 보고 겪고 연구한 ‘분노청년’의 뿌리와 행태, 특성 등을 정리해 ‘중국 애국주의 홍위병, 분노청년(푸른역사 펴냄)’이라는 제목의 책을 냈다.
책에 따르면 분노청년은 1990년대 중반에 등장한 인터넷 중심 친정부 활동 청년집단이다. 줄여서 ‘분청(憤靑)’이라 부르는데, 중국 내에서도 이들의 행태를 못마땅하게 여기는 사람들은 ‘성낼 분(憤)’자 대신 발음이 같은 ‘똥 분(糞)’자를 써서 ‘분청’(糞靑)이라 부르기도 한다.
이들의 뿌리는 문화대혁명 당시 마오쩌둥을 지지하며 중국의 격변에 앞장섰던 홍위병에서 찾을 수 있다. 당시 홍위병은 중·고등학생 중심이었으나 오늘날 분노청년은 대학생 또는 그 이상의 학력 소지자들이 많다. 또한 홍위병은 거리로 뛰쳐나가 자신들의 주장을 소리 높여 외쳤지만 분노청년의 주된 활동 무대는 인터넷이다. 하지만 자신들이 중국을 지켜야 한다는 사고 방식은 같다고 할 수 있다. 홍위병이 자신들을 이상적 사회주의 국가를 건설하는 혁명 전사라고 생각했던 것처럼 분노청년은 중국에 불이익을 주는 모든 나라를 타도하는 데 앞장서고, 중국 중심의 세계 질서를 만드는 역사적 사명을 띠고 있는 애국자라고 스스로 믿는다. 이들에게는 국가야말로 최고의 아이돌이다. 오죽하면 중국 내에서도 “머리에 애국을 붓자 이성이 짐을 싸서 나가버렸다”는 식의 비판과 조롱이 나올 정도다.
분노청년은 최근 들어 여러 형태로 분화됐다. 그 중에서도 특히 주목 받는 ‘소분홍(小粉紅)’은 정부가 조직했으며 고학력 비중이 더 높고, 대만이나 홍콩의 독립 세력 뿐만 아니라 중국을 욕 보이는 모든 자를 적대 세력으로 간주하고 중국의 위력을 보여주려 한다. 방화벽을 뚫고 상대방의 홈페이지를 도배하는 등의 행위도 주저하지 않는다. 국내 엔터테인먼트 기업인 JYP는 소속 걸그룹인 트와이스의 쯔위가 대만 국기를 흔들었다는 이유로 SNS 공격을 받기도 했다.
분노청년이 늘고 있는 이유는 태어나는 순간부터 세뇌 수준으로 받는 애국 교육 때문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이들은 어릴 때부터 중국을 철저하게 미화한 ‘그 토끼’ 등의 애니메이션을 보면서 제국주의 침략, 공산당의 분투, 자본주의와 미국·일본에 대한 증오심을 주입받는다. 한국에 대해서는 과거엔 중국과 일본, 현재는 미국의 속국이라는 폄훼 된 인식을 갖는다.
물론 이들이 중국인 전체의 생각을 대변하지는 않는다. 중국 내에서도 이들의 위험성을 걱정하는 목소리가 크다. 하지만 중국이 세계 최고가 된다는 ‘중국몽’을 내세우는 시진핑 정권 입장에서 이들의 애국 활동은 든든한 도움이 될 테니, 앞으로도 분노청년의 목소리는 더욱 커질 것으로 보인다.
중국 분노청년의 흥망성쇠에 한국을 비롯해 다른 나라가 직접적 영향을 주기는 어렵다. 하지만 광신에 가까운 애국주의로 무장한 그들에게 한국의 문화와 역사가 언제든지 표적이 될 수 있기에 경계감을 확실하게 가져야 한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1만7,900원.
/정영현 기자 yhchung@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