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스포츠 문화

[책꽂이] 역사상 가장 중요한 정상회담, 딸들의 '숨은 손길' 있었다

■얄타의 딸들

캐서린 그레이스 카츠 지음, 책과함께 펴냄


2차대전 마무리한 '얄타회담'

루스벨트·처칠·美대사 딸 함께



통역부터 의전·父건강관리 등

파트너이자 보호자 역할 수행

막후 영향력 통해 세계사 장식




1945년 구소련 흑해 휴양지 ‘얄타’에서 열린 얄타회담 기간 중 대화를 나누고 있는 윈스턴 처칠 영국 수상의 딸 사라(왼쪽부터), 프랭클린 루스벨트 미국 대통령의 딸 애나, 애버럴 해리먼 미국 대사의 딸 캐슬린/책과함께(FDR library)1945년 구소련 흑해 휴양지 ‘얄타’에서 열린 얄타회담 기간 중 대화를 나누고 있는 윈스턴 처칠 영국 수상의 딸 사라(왼쪽부터), 프랭클린 루스벨트 미국 대통령의 딸 애나, 애버럴 해리먼 미국 대사의 딸 캐슬린/책과함께(FDR library)





1945년 2월 8일, 구소련 흑해 연안 ‘얄타’에 위치한 코레이즈 궁. 만찬이 한창이던 가운데 주최자의 요청으로 한 여성이 자리에서 일어나 말했다. “이 자리에 있는 세 명의 여인을 대표해 답사합니다.” 만찬의 주최자는 요시프 스탈린 당시 소련 최고인민위원이었고, 이 자리에는 프랭클린 루스벨트 미국 대통령, 윈스턴 처칠 영국 수상도 배석해 있었다. 열강의 수뇌들이 함께 한 이 만찬은 ‘역사상 가장 중요한 정상회담’으로 꼽히는 얄타 회담 다섯째 날 열린 행사였다. 얄타회담은 제2차 세계대전이 끝을 향해 가던 1945년 2월 4~11일 미·영·소 수뇌들이 독일의 패전과 이후 관리에 대해 의견을 나누고 합의한 회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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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만찬에 함께 한 세 명의 여인은 루스벨트의 딸 애나, 미국 대사 애버럴 해리먼의 딸 캐슬린, 처칠의 딸 사라였다. 세 여인은 3국 사이에 벌어진 협상과 정책 결정에 직접 참여하지는 않았지만, 회담의 시작부터 끝까지 역사적 현장을 지켜보고 회담 당사자들을 보필하며 ‘직접 참여’보다 더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했다. 신간 ‘얄타의 딸들’은 역사의 주역들의 보이지 않는 조력자 역할을 한 세 딸을 이야기의 중심에 세운다. 회담장에서 일어난 모든 일을 편지나 개인 수기로 남긴 딸들의 기록을 바탕으로 숨 가쁘게 전개된 8일 간의 회담 과정을 생생하게 재현했다.

1945년 2월 9일 얄타회담의 주역인 윈스턴 처칠(왼쪽부터) 영국 수상, 프랭클린 루스벨트 미국 대통령, 요시프 스탈린 당시 소련 최고인민위원/책과함께(Library of Congress)1945년 2월 9일 얄타회담의 주역인 윈스턴 처칠(왼쪽부터) 영국 수상, 프랭클린 루스벨트 미국 대통령, 요시프 스탈린 당시 소련 최고인민위원/책과함께(Library of Congress)


책은 세 딸이 얄타로 향하는 순간을 차례로 소개하면서 세 여인의 성장 배경, 이들이 아버지와 소련 땅을 향하게 된 이유를 풀어낸다. 애버럴 해리먼의 딸 캐슬린은 종군 기자 출신으로 얄타에 모인 연합국 대표단의 모든 군사·민간 지도자들에게 이미 잘 알려진 존재였다. 애버럴이 ‘그녀가 해야 할 일이 있어 얄타에 데려가겠다’고 했을 때 루스벨트는 아무런 반대도 하지 않았다. 얄타회담의 만찬장에서 러시아어로 답사를 한 인물이기도 하다. 아버지를 돕기 위해 러시아어를 공부한 그는 회담장을 꾸미고 참석자의 배치, 의전을 진두지휘했다.

처칠의 딸 사라는 연극 배우로 활동하다 영국 공군에 입대해 항공사진 판독 소대장을 지냈다. 처칠은 자신의 정치 결정에 영감을 줘 온 사라의 동행을 요청했고, 군의 특별 휴가를 받은 사라는 수행 길에 올랐다. 처칠은 당시 유럽 내 영국의 위상 때문에 정치적 압박을 받고 있던 데다, 회담 전 외무성 관리들이 비행기 추락 사고를 당해 큰 충격을 받은 터였다. 그렇기에 그는 회담 기간 내내 사라에게 많은 부분을 의존한 것으로 전해진다.

루스벨트의 딸 애나는 세 아이의 엄마이자 신문 편집자였다. 그녀는 급성 울혈성 심부전 진단을 받은 아버지의 건강 상태가 외부에 드러나지 않도록 하기 위해 회담에 참석했다. 얄타로 이동하던 중 소련 외무장관들이 마련한 기름진 점심이 아버지의 건강에 미칠 영향을 우려한 애나는 이 자리를 거절한다. 처칠과 사라도 이 식사가 내키진 않았지만, 두 서방 지도자 모두 소련의 호의를 무시할 수는 없었다. 이 점심 에피소드는 이전까지 한 몸처럼 움직이던 미국과 영국 사이에 조금씩 생겨나는 균열을 상징한다. 소련은 회담 기간 중 이 균열을 기꺼이 활용하겠다고 다짐한다. 거침없이 자기 일을 해낸 캐슬린을 애나가 그리 달가워하지 않았다는 점, 얄타에서 벌어지는 일에 적극적으로 대화를 나눈 처칠·해리먼 부녀와 달리 딸에게 말을 아낀 루스벨트 때문에 애나가 힘들어했다는 점 등 회담 뒤 내밀한 이야기도 담겼다.



책은 회담 이후 세 여성과 그들의 아버지, 가족들의 이야기도 소개한다. 회담 후 건강이 급격히 악화된 루스벨트는 1945년 4월 숨졌고, 처칠은 총선에서 패배했다. 애버럴 역시 트루먼 정부에서 고립돼 그 존재감이 희미해져 갔다. 전쟁과 그로 인한 트라우마로 가족을, 연인을, 친구를 잃고 스스로도 후유증을 겪어야 했던 세 여인은 그러나 시련을 극복하고 자기 삶을 개척해 나갔다. 캐슬린은 다시 기자 일을 시작했고, 애나는 부모님의 유산을 기리는 일에 힘을 쏟았다. 한때 알코올 중독에 빠졌던 사라는 글 쓰고 그림 그리는 일에 몰두했다.

2차 세계대전과 냉전 사이의 전환점에 이 세 여인이 있었음을 기억하는 이는 많지 않다. 그저 역사에 남은 ‘위대한 남자들’과 이들이 남긴 거대한 영향력만 기억할 뿐이다. 저자는 “얄타는 많은 사람이 희망했던 대로 연합국 협력의 정점은 아니었지만, 세 여인에겐 인생의 하이라이트였다”며 “짧은 순간이기는 했지만, 아버지의 파트너, 보호자, 비밀을 털어놓을 친구가 되었던 기회”라고 평가한다. 드러나지 않았던 역사적 회담의 이야기와 ‘정치 거물의 가족’ 아닌 자기 능력과 역할로 세계사의 중요한 순간을 함께한 여성들의 성장 이야기가 흥미롭다. 2만 8000원.


송주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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