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승진자 연수를 했다. ‘신한DS 대표가 몇 번째 승진인지?’ ‘그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승진은 언제인지?’ 등의 질문을 받았다. 손가락을 꼽아보니 열 번째인 것 같다. 누구나 그러하듯이 지금까지 오면서 어디 한번 쉬운 적이 없었다.
지난 1990년대 초반에 몇 안 되는 여성 책임자가 되면서 잘해야 한다는 부담보다 남성 중심의 문화 속에서 정체성을 갖는 것이 더 고단했다. 기존의 남성 리더에 익숙한 직원들과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나만의 소통 방식을 찾고 성과를 만들어내고 보여줘야 했다. 되돌아보면 나의 강점과 스타일을 살리며 팀을 리드해갈 때 가장 돋보였다.
흔히 유리 천장을 깼다는 표현을 쓰는데 나는 유리 천장을 깨는 것을 목표로 하지 않았다. 목표가 임원이 되는 것이었다면 숱하게 넘어지고 좌절했던 날들 속에서 회복하지 못하고 주저앉았을 것이다. 맡은 일을 열심히 했고 좀 더 나은 방법을 찾고 완성해가는 과정이 즐거웠다. 좋은 퍼포먼스를 내 조직에 기여하고 일을 통해 나 자신도 성장하는 재미에 푹 빠져 살았다. 타인의 관계나 상대적인 문제에 빠지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임원이 되고 나서는 비즈니스에 대한 전략적·재무적 통찰력이라는 또 다른 성장통을 겪어야 했다.
여성 리더십 전문가 수잔 콜란투오노 박사는 “유능한 인재, 유능한 리더가 되기 위한 세 가지 요소로 첫째, 자신의 능력을 단련하고 잠재력을 동원해야 한다. 둘째, 타인의 능력을 이끌어내야 한다. 셋째, 비즈니스에 대한 전략적이고 재무적인 통찰력을 갖춰야 한다”고 했다. 콜란투오노 박사의 연구에 따르면 대부분의 조직들이 여성 리더들에게 40여 년 동안 코칭과 조언을 해왔으나 개인적인 면모에만 치중했다. 더 적극적으로 활동해라, 자신감을 가져라, 자신을 브랜드화시켜라, 협업, 동기부여, 인맥 형성과 같은 코칭은 있었지만 전략과 재무적 통찰력에 대한 중요성은 거의 언급하지 않았다. 어쩌면 당연한 것이어서 강조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여성·남성을 떠나 경영 리더라면 ‘왜 리더십이 필요할까’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늘 지니고 살아야 한다. 리더십의 도구·수단에 지나치게 얽매이지 말고 전략적 파트너가 됐으면 한다.
‘세계 여성의 날’을 맞이해 신한금융그룹에서는 여성 리더 육성 프로그램 ‘쉬어로즈’ 5기를 출범시켰다. 지난해부터 금융권에 여성 리더 육성 프로그램이 하나둘 생겨나고 있고 최근 여성 최고경영자(CEO)의 잇단 발탁은 큰 전환점이 될 것이다. 그에 맞춰 ‘나는 씨앗이 땅속에 들어가 무거운 흙을 들치고 올라올 때 제힘으로 들치지 남의 힘으로 올라오는 것을 본 일이 없다’는 독립운동가 남강 이승훈 선생의 말처럼 스스로 역량을 키우고 훈련을 해야 다양성이 확대되고 더 많은 기회가 주어질 것이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