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경제동향

"더 미뤘다간 통화정책 失機"…파월 발언 하루만에 서둘러 발표

■한은 총재 이창용 내정…전격 지명 배경은

유가 등 물가 치솟고 美도 5월 '빅스텝' 가능성 커져

가계부채도 심각…수장 장기 공백 땐 책임론 불가피

이창용, MB인수위·금융위 이력…尹의중 반영 분석도





문재인 대통령이 23일 이창용 국제통화기금(IMF) 아시아태평양 담당 국장을 신임 한국은행 총재 후보로 지명한 것은 그야말로 전격적이었다. 당초 지난 16일 문 대통령과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 간의 회동이 예정돼 있었지만 무산됐고 이후 청와대 이전 등을 두고 현재 권력과 미래 권력이 연일 파열음을 내면서 이달 한은 총재 후보 지명은 결국 물 건너가는 게 아니냐는 관측이 많았다.



하지만 우리 경제가 이미 스태그플레이션(고물가 속 경기 침체) 초입에 진입했다는 진단이 나올 만큼 위기 상황에서 사상 초유의 통화정책 수장 공백 사태가 장기화될 경우 후폭풍이 만만치 않다는 위기감이 변화의 단초가 됐다.

기준금리를 결정하는 금융통화위원회 의장직을 겸하는 한은 총재는 통화정책의 최고 수장으로, 그 자리가 지니는 상징성과 무게감은 남다를 수밖에 없다. 총재 부재가 길어지면 주요 국가들이 긴축으로 통화정책을 전환하고 있는 마당에 우리 경제가 좌표를 잃을 수 있다는 우려가 시장 안팎에서 제기될 수밖에 없다.



실제 우리 경제를 둘러싼 대내외 환경은 악화 일로다. 소비자물가는 지난해 10월부터 지난달까지 5개월 연속 3%대 상승률을 이어가고 있고 유가도 배럴당 110달러대까지 치솟은 상태다. 기업들의 채산성 악화는 물론 수출 경쟁력 하락도 예상되고 있다. 가계부채 문제도 심각하다. 여기에 차기 정부는 자영업자 손실보상에 50조 원을 투입하기로 공언했고 오는 6월 지방선거까지 있다. 국내만 봐도 통화정책의 변수가 하나둘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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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가운데 최근 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은 5월 기준금리를 한꺼번에 0.5%포인트 올리는 ‘빅스텝’ 가능성마저 강력 시사했다. 이 때문에 한은의 금리 인상 시계가 빨라질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오는 상황이었다. 이에 청와대도 더는 총재 지명을 미룰 수 없다는 판단을 한 것으로 보인다. 한 전직 금통위원은 “총재 공석이 장기화되면 급변하는 경제 상황에 대한 대응이 늦어질 수 있는 만큼 시장에 좋지 않은 신호를 줄 수 있다”며 “문 대통령으로서는 계속 차기 총재 인선을 미룰 경우 당장 4월 14일로 예정된 금통위가 총재 없이 열리는 최악의 사태가 불가피한 만큼 눈에 보이는 경제 위기를 방치했다는 덤터기를 피하고 싶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후보자가 이명박(MB) 정부 당시 인수위원회와 금융위원회에서 잇따라 근무했던 점도 눈여겨봐야 할 부분이다. 문 대통령으로서는 윤 당선인 측이 선호할 만한 인물을 지명했음을 유추할 수 있다. 인수위 측과의 물밑 접촉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인수위 일각에서 “청와대와 사전 협의가 없었다”고 하지만 윤 당선인 입장에서도 이 후보자는 최적의 카드로 볼 수 있다. 윤 당선인이 MB 정부 당시 관료들을 대거 중용하고 있는 만큼 이 후보자 카드는 코드가 맞다는 분석이 나온다.

특히 이 후보자가 지난 2008년 스태그플레이션 위기를 무난히 넘겼다는 평가를 받는 점도 차기 정부 입장에서는 반길 만하다. 현재 우리 경제 상황이 고유가에 원화 가치 추락이 겹쳐 2008년과 유사하다는 진단이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공동락 대신증권 연구원은 “한은 총재 지명이 늦게나마 이뤄져 다행”이라며 “시장의 불안감을 누그러뜨리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대학교수는 “이주열 총재의 임기 종료가 8일 앞으로 다가오면서 문재인 정부의 마음도 급해졌을 것”이라며 “지방선거 등 중요한 정치적 일정이 있는 상황에서 신구 권력 갈등을 무진장 끌고 가기도 부담스러웠을 수 있다”고 전했다.

이 후보자의 국제 인맥이 지금과 같은 위기 극복에 힘이 될 것이라는 의견도 나온다. 이 후보자는 미국 하버드대에서 경제학 석·박사 과정을 밟는 동안 로런스 서머스 전 미국 재무장관과 스승과 제자 인연을 맺었다. 2013년 당시 서머스 교수는 박근혜 대통령을 만난 자리에서 이 후보자를 IMF 국장직에 추천한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하버드대 총장까지 지낸 서머스 교수는 코로나19 이후 인플레이션을 경고하면서 조 바이든 정부의 대규모 부양책을 비판하기도 했다. 이 후보자는 IMF 수석이코노미스트를 지낸 올리비에 블랑샤르와도 친분이 있다.

한은 내부 반응도 우호적이다. 앞서 한은 노조는 차기 총재로 외부 출신 인사를 선호한다는 직원 설문 조사 결과를 공개한 바 있다. 한은 내부에서는 이 국장이 총재로 온다면 국제사회에서 한은의 위상이 한층 높아질 것이라는 기대감도 흘러나온다.


김현상 기자·조지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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