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경골프 골프일반

‘학교서도 골프복’ 그 소년, 33억짜리 그린재킷 입다

■세계 1위 셰플러, 마스터스 제패…첫 메이저 왕관

타고난 성실함·가족愛로 승승장구

57일간 6개 대회 4승 109억 벌어

마스터스 등 개막 4승 62년만 기록

매킬로이, 최종R 최소 64타로 2위

임성재는 1언더파 공동 8위 마감

스코티 셰플러(왼쪽)가 11일 마스터스 시상식에서 전년도 우승자 마쓰야마 히데키가 입혀주는 그린 재킷을 걸치고 있다. EPA연합뉴스스코티 셰플러(왼쪽)가 11일 마스터스 시상식에서 전년도 우승자 마쓰야마 히데키가 입혀주는 그린 재킷을 걸치고 있다. EPA연합뉴스







아이는 골프장에서 입는 폴로 셔츠와 카키색 바지를 학교에 갈 때도 늘 입고 다녔다. 친구들의 놀림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미국프로골프(PGA) 투어 선수가 되려면 어딜 가든 투어 선수처럼 입어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아이의 부모는 아들에게 골프를 가르치려 뉴저지주에서 일부러 텍사스주 댈러스로 이사해 이름난 골프장에서 레슨을 받게 했다. 아이의 나이 여섯 살 때였다. 부모가 빚까지 내가며 레슨비를 댔다는 사실은 나중에야 알았다.

11일(한국 시간) 댈러스의 로열 오크스CC. 한데 모여 TV 중계로 마스터스를 지켜보던 이 골프장의 오랜 회원들은 골프밖에 몰랐던 비범한 아이의 이름을 연호하며 제일처럼 기뻐했다. 그 이름은 스코티 셰플러(26·미국)였다.

이날 미국 조지아주 오거스타 내셔널 골프클럽(파72)에서 끝난 PGA 투어 시즌 첫 메이저 대회 제86회 마스터스에서 최종 합계 10언더파 278타로 3타 차 우승을 일군 셰플러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도무지 감당이 안 된다”며 아내 메러디스를 얼싸안았다. 아내는 “우승하든 10타 차로 지든 남편을 사랑하는 마음은 변함없을 것”이라고 했다. 셰플러는 로열 오크스CC의 자랑으로 이름을 떨치던 고등학생 때 메러디스를 처음 만나 2020년 결혼했다.



최근 5개 출전 대회에서 3승을 몰아치며 골프계의 슈퍼 히어로로 떠올랐던 셰플러가 ‘메이저 중의 메이저’ 마스터스마저 거머쥐었다. PGA 투어 데뷔 후 첫 70개 대회에서 우승이 없던 그는 이후 이번까지 6개 대회에서 네 번 우승했다. 올 2월부터 단 57일 동안 벌어진 일이다. 플래시맨처럼 첫 승부터 4승까지 PGA 투어 역사상 가장 빠른 속도를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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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플러는 또 세계 랭킹 1위 신분으로 마스터스 우승까지 달린 역대 다섯 번째 선수가 됐다. 1991년 이언 우스남(웨일스), 1992년 프레드 커플스(미국), 2001년과 2002년 타이거 우즈(미국), 2020년 더스틴 존슨(미국) 다음이다. 시즌 개막 뒤 마스터스 포함 4승은 1960년 아널드 파머(미국)에 이어 역대 두 번째다.

1997년 우즈의 충격적인 12타 차 마스터스 제패를 유튜브로 돌려보며 꿈을 키운 셰플러는 나이키의 타이거 우즈 골프화·셔츠, 테일러메이드의 타이거 우즈 아이언을 들고 그린 재킷의 주인공이 됐다. 생애 첫 메이저 트로피를 오거스타 내셔널에서 들어 올린 셰플러는 마스터스 사상 최고 우승 상금인 270만 달러(약 33억 2000만 원)를 받았다. 57일간 벌어들인 상금이 887만 2200달러(약 109억 원)다. 올 시즌 다승, 상금, 페덱스컵(시즌 누적) 포인트 모두 1위다.

3타 차 선두로 4라운드를 출발한 셰플러는 버디 4개와 보기 1개, 더블 보기 1개로 1언더파를 적었다. 나흘 내리 언더파를 작성한 것은 셰플러가 유일하다. 첫 두 홀에서 연속 버디를 잡은 캐머런 스미스(호주)에게 1타 차로 쫓긴 셰플러는 3번 홀(파4)에서 이번 대회 최고의 샷을 선보였다. 홀에 꽂힌 깃발이 절반밖에 보이지 않는 까다로운 오르막 경사였는데 셰플러의 웨지를 떠난 볼은 그린 입구에서 튄 뒤 예쁘게 굴러가 홀 속으로 숨어버렸다. 이 칩인 버디와 스미스의 이 홀 보기로 셰플러는 한숨을 돌렸고 12번 홀(파3)에서 나온 스미스의 트리플 보기에 승기를 잡았다.

커리어 그랜드슬램(4대 메이저 제패)에 마스터스만 남긴 로리 매킬로이(북아일랜드)가 이날 마스터스 사상 최종 라운드 최소타(8언더파 64타)로 무섭게 치고 올라갔지만 셰플러는 14번(파4)과 15번 홀(파5)에서 버디를 잡아 먼저 경기를 마친 매킬로이를 5타 차로 따돌리며 승기를 잡았다. 18번 홀(파4)에서 4퍼트 더블 보기를 했지만 주인공이 바뀔 리 없었다.

캐디인 테드 스콧(오른쪽)과 포옹하는 스코티 셰플러. 셰플러는 성경 연구 모임에서 만난 스콧과 지난해 11월부터 호흡을 맞춰 5개월 동안 메이저 1승 포함 4승을 합작했다. UPI연합뉴스캐디인 테드 스콧(오른쪽)과 포옹하는 스코티 셰플러. 셰플러는 성경 연구 모임에서 만난 스콧과 지난해 11월부터 호흡을 맞춰 5개월 동안 메이저 1승 포함 4승을 합작했다. UPI연합뉴스


18번 홀 칩 샷 뒤 아쉬워하는 임성재. 로이터연합뉴스18번 홀 칩 샷 뒤 아쉬워하는 임성재. 로이터연합뉴스


한국 간판 임성재(24)는 1언더파 공동 8위로 마감했다. 선두와 5타 차의 3위로 출발한 그는 버디 3개와 보기 6개로 3타를 잃었다. 나흘 합계 언더파 스코어는 임성재까지 9명뿐이다. 2020년 준우승에 이어 이 대회 두 번째로 톱 10에 오른 임성재는 12위 이내 선수에게 주는 내년 마스터스 출전권도 얻었다. 공동 8위 상금은 45만 달러다.

첫날 1타 차 단독 선두에 올라 한국인 최초의 마스터스 단일 라운드 선두 기록을 썼던 임성재는 “마스터스라는 큰 대회에서 톱10은 좋은 마무리라고 할 수도 있지만 아쉽게 끝났다. 만족할 경기는 아니었다”며 “내년에 또 나올 수 있다는 게 감사하고 기쁘다. 또 상위권 경쟁을 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매킬로이가 7언더파 2위, 셰인 라우리(아일랜드)와 스미스가 5언더파 공동 3위에 올랐다. 디펜딩 챔피언 마쓰야마 히데키(일본)는 2오버파 공동 14위, 김시우(27)는 7오버파 공동 39위로 마쳤다. 목숨을 잃을 뻔한 교통사고 뒤 14개월 만에 복귀전을 치른 우즈는 13오버파 47위의 성적을 남겼다.


양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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