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한 해 불법 촬영 범죄자 절반이 집행유예를 선고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이들 중 일부는 범행 기간이 길고 피해자가 수십 명에 달하는데도 ‘촬영물을 유포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감경돼 실형을 피한 것으로 나타나 ‘솜방망이 처벌’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12일 서울경제가 대법원에서 받은 ‘2021년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카메라 등을 이용한 촬영) 위반 1심 판결 통계’에 따르면 전체 2096건 중 1023건은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전체의 49%에 해당하는 수치다. 자유형과 재산형이 각각 22%와 20%를 차지하며 뒤를 이었다.
범죄자 대부분이 집행유예를 받은 이유는 촬영물을 유포하지 않고 단순 소지만 했다는 것이다. 불법 촬영과 촬영물 유포 행위는 별개의 범죄 행위로 봐야 함에도 범죄자가 촬영물을 유포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감형해줬다. 하지만 이는 실제 법령과는 괴리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형법에 명시된 성폭력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카메라 등을 이용한 촬영)에 따르면 의사에 반하는 촬영과 유포 조항은 별개로 존재한다. 불법 촬영과 불법 촬영물 유포 행위는 각각 형량을 매겨야 한다. 양형위원회도 촬영과 반포, 영리 목적 반포, 촬영물 소지 등을 각각 구분해 형량을 매기도록 기준을 제시하고 있다.
이은의 이은의법률사무소 대표변호사는 “별개의 범죄이므로 촬영은 촬영대로, 유포는 유포대로 처벌받아야 하는데 촬영물을 유포하는 또 다른 범죄로 나아가지 않은 것에 대해 촬영죄를 유리하게 정상 참작하는 게 온당한지 생각해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재련 법무법인 온세상 대표변호사도 “피해자들은 가해자가 동의 없이 촬영한 후 촬영물을 소지하고 있는 것만으로도 언제 유포가 될지 모른단 불안감에 시달린다”며 “촬영물이 유포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촬영 및 소지에 대한 형량까지 깎아주는 건 신중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법원의 솜방망이 처벌이 이뤄지고 있는 동안 불법 촬영 범죄는 늘고 대상도 확대되고 있어 우려가 커진다. 대검찰청의 범죄 분석 자료에 따르면 성폭력 범죄 중 불법 촬영 범죄가 차지하는 비율은 2011년 7.1%에서 2020년 16.6%로 증가했다. 특히 지난 2020년 13~20세 청소년층을 대상으로 발생한 성폭력 범죄 중 불법 촬영 범죄는 약 15%에 달했다.
이런 상황을 반영해 법무 당국도 형량을 점점 강화하는 추세다. 대법원에 따르면 최근 불법 촬영으로 실형을 선고받은 사례는 2018년까지만 하더라도 약 13% 정도에 그쳤으나 지난해에는 22%까지 늘었다. 기소율도 2018년 67%에서 올해 82%로 대폭 상승했다. 김혜정 한국성폭력상담소장은 “가해자 중심의 감경 요소를 다 끌어 모아 형량을 깎을 게 아니라 법정 형량을 제대로 부여해야 불법 촬영을 근절할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