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가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법안 중재안을 합의 처리하겠다는 소식이 전해진 직후 검찰 내부에서는 ‘릴레이 철야 회의’도 의미 없게 됐다며 허탈해 하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간부·평검사·수사관 등 검찰 구성원 전체가 철야 회의까지 열고 검수완박 법안 처리를 막아보려 했지만 오히려 여야가 검찰 수사·기소 분리에 합의하며 검수완박 방침에 대못을 박았기 때문이다. 국회뿐만 아니라 대통령직인수위원회까지 여야 합의를 존중한다며 동조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검찰 구성원들은 “정치적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 야합”이라며 격앙된 반응을 보였다.
대검찰청은 22일 입장문을 통해 “중재안은 사실상 기존 검수완박 법안의 시행 시기만 잠시 유예하는 것에 불과하다”며 “대검은 금일 공개된 국회의장 중재안에 단호히 반대한다”고 밝혔다.
대검은 “중재안 역시 형사 사법 체계에 중대한 변화를 가져오는 것임에도 국회 특위 등에서 유관 기관이 모여 제대로 논의 한 번 하지 못한 채 목표 시한을 정해 놓고 추진되는 심각한 절차상 문제가 있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법안이 최종적으로 통과되는 마지막까지 법안의 부당성과 문제점을 알리고 국회와 국민을 설득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덧붙였다.
대검을 비롯한 검찰 구성원들이 합의안에 반대하는 것은 검찰이 반대하는 수사·기소 분리 방침이 재확인됐기 때문이다. 검찰에 보완 수사 기능을 남겨뒀지만 ‘단일성’과 ‘동일성’을 해치지 않아야 한다는 단서가 달린 것은 의미가 없다는 불만이 나온다. 대검 관계자는 “중재안은 기존 검수완박법 시행 시기만 유예한 것”이라며 “여야가 함께 검수완박을 강행할지 몰랐다”고 말했다.
검수완박 중재안 합의 소식이 전해지자 검찰 내부에서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법안”이라는 비판이 터져 나왔다. 김후곤 대구지검장은 검찰 내부망에 “중대범죄수사청이나 특별수사청을 만들기 위해 미국의 FBI(연방수사국) 등과 같은 특별수사기구 도입 여부에 대한 진지한 검토는 있었나”라며 “인력과 예산, 노하우를 합치는 작업이 5년 내내 해도 겨우 완성될지 모르겠다”고 비판했다. 또 검찰 직접 수사 대상에서 선거 등 4가지 범죄를 제외한 것에 대해 “선거 범죄는 시효 문제, 선거운동의 복잡한 법리 문제 등 어렵고 실수도 많은 범죄인데 (지방) 선거를 코앞에 두고 수사를 못하게 하면 그 혼란은 어떻게 할 것인가”라고 지적했다. 최창민 서울중앙지검 부장검사도 “6대 범죄에서 4대 범죄만 삭제하는 게 이해가 안 된다”며 “특히 선거 사건은 검찰의 직접 수사가 필요한 영역”이라고 주장했다.
이번 합의가 정치적 야합이라는 비판도 거세다. 박영진 의정부지검 부장검사는 내부망에 “검수완박 추진이 현 여권의 비리를 막기 위한 의도로 시작됐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다”며 “중재안에 의하더라도 각종 공직자 범죄, 선거 범죄 등 권력형 비리에 대한 수사 공백이 예상되는데 현 야권도 올라탄 셈이다. 정치권 야합의 산물”이라고 비판했다. 재경지검의 한 부장검사도 “중재안이 동일성, 단일성을 지키는 선에서 보완 수사가 가능하다고 하는데 수사가 칼로 두부 자르듯이 할 수 있는가. 실무를 안 해본 탁상공론의 전형”이라며 “직접 수사 대상에서 공직자 범죄를 뺀 것만 봐도 여야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 결과”라고 직격했다.
부장검사·평검사·수사관 등 검찰 구성원들이 ‘릴레이 철야 회의’까지 벌였는데도 검찰 의견이 묵살됐다는 불만도 쏟아져 나왔다. 박재훈 서울중앙지검 검사는 “필사즉생의 각오로 모두가 한마음이 되어 노력한다면 일말의 기적이 발생하진 않을까 하는 희망이 있기도 했다. 그래서 평검사를 비롯해 부장검사님, 수사관님들까지 모두가 한마음이 되어 노력했다”며 “범죄방치법안 통과가 예상되는 상황에서도 책임 있는 분들은 저희에게 충분한 해명과 대답도 없이 그냥 사직서만 하나 제출하고 도망가려 한다”고 지적했다.
초유의 검찰 지휘부 총사퇴가 벌어진 상황에서 다음 주 4월 임시국회에서 합의안이 통과될 경우 검찰이 헌법 소원 심판 등 최후의 카드를 꺼내 들 가능성이 커졌다. 대검 관계자는 헌법 소원 심판, 대통령거부권 행사 요청 가능성에 대해 “위헌성 여부에 대해서는 가능한 절차를 밟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