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IT

정상조 국가지식재산위원장 "IP가 기술패권 시대 생존 키워드…국가 CIPO 두고 전권줘야"

[세계지식재산의 날 특별인터뷰]

지식재산 24개 부처·청서 '쪼개져 관리'

경제적 가치 큰 빅데이터 과도하게 보호

벤처·스타트업 활용 막아 4차산업 발목

모든 부처 총괄할 'IP 컨트롤타워' 절실

새정부 지재권 연계 R&D 지원 늘리고

기업 원천특허 챙겨 혁신경제 이끌어야

정상조 국가지식재산위원회 공동위원장이 서울경제과의 인터뷰에서 국내외 사례를 들며 국가 최고지식재산책임자(CIPO) 신설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오승현 기자정상조 국가지식재산위원회 공동위원장이 서울경제과의 인터뷰에서 국내외 사례를 들며 국가 최고지식재산책임자(CIPO) 신설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오승현 기자




“미중 패권 전쟁으로 촉발된 기술 패권 시대에 중요 쟁점은 지식재산(IP) 아닙니까. 현재 IP가 24개 부처와 청별로 쪼개져 있는데 국가 IP 전략을 짜고 집행할 ‘최고지식재산책임자(CIPO)’를 둬 통합 관리해야 합니다.”



정상조(63·사진) 국가지식재산위원회 공동위원장은 26일 ‘세계지식재산의 날’을 기념해 지난 22일 서울경제와 인터뷰를 갖고 “대통령실이나 정부에 IP 최고책임자를 두고 총괄 역할을 맡겨야 국가 생존을 도모하고 미래 성장 동력을 키울 수 있다”며 이같이 밝혔다. 최근 연임에 성공한 그는 서울대 법대를 졸업하고 영국 런던대 법학 석·박사 시절(1986~1991년)에 여느 법대생과 달리 평생 특허 등 IP를 공부한 IP 전문가다. 그는 국무총리와 공동위원장 체제(간사 부처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인 국가지식재산위를 윤종용 전 삼성전자 부회장(4년), 구자열 전 LS그룹 회장(4년)에 이어 2020년부터 이끌어왔다.

그는 “유학 당시 영국이 세계 최초로 특허나 저작권법 제도를 도입하는 등 앞선 IP 전략을 편 게 산업혁명의 엔진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며 “제임스 와트의 증기기관도 특허 보호를 받아 제1차 산업혁명을 촉발했다. 영국이 18~19세기 태양이 지지 않는 제국을 건설한 것도 이 때문”이라고 힘줘 말했다. 그는 1980년대 중반 한미 통상협상 당시 실상 막후에서 가장 협상이 어려웠던 것은 IP 문제였다며 그만큼 미국이 일찌감치 IP를 중시하며 ‘팍스 아메리카나(미국 주도 국제질서)’를 구축했다고 분석했다.

그는 “기업에도 최고경영자(CEO)와 최고기술책임자(CTO) 외에 CIPO가 있는 것처럼 국가도 대통령·과학기술책임자 외에 IP 책임자가 있어야 국가 경쟁력을 높일 수 있다”고 강조했다. 영국은 정부 차원에서 CIPO를 두고 있고 미국·일본·중국은 각각 백악관·총리실·주석실에 담당자를 두고 부처를 총괄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특히 미국의 경우 세계 지식의 날(4월 26일, 한국은 9월 4일)에 백악관에서 대통령이 주관하는 기념 행사를 열 정도라며 부러움을 표시했다. 버락 오바마,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에 이어 조 바이든 대통령도 과학기술인은 물론 초등학생, 흑인 여성 등 다양한 사람들을 초청해 IP의 중요성을 되새긴다는 것이다.



그는 “주요국 리더들이 국가의 흥망성쇠와 미래 경제·안보 경쟁력이 IP 전략에 좌우된다고 보기 때문 아니겠느냐”며 “인공지능(AI)·바이오·양자기술 등 전략 기술 관리와 IP의 효율적인 사업화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동안 청와대에 여러 차례 ‘우리도 지식재산의 날에 IP 기념 행사를 열고 대통령이 유공자들과 식사도 좀 하면 좋지 않겠느냐’고 건의했는데 ‘씨알도 안 먹혔다’는 게 그의 고백이다.

정 위원장은 “디지털 전환 시대에 AI·대체불가토큰(NFT)·메타버스 등 새로운 IP 분야의 법·제도 혁신도 중점 추진해야 한다”며 “하지만 AI처럼 특허 기술과 디자인·데이터·저작권이 융합된 산업 분야가 많아지는데 관할 부처는 나뉘어 법안을 효율적으로 만들기 어렵고 불필요한 갈등이 많다”고 털어놓았다. 현재 특허청(특허), 문화체육관광부(저작권), 농림축산식품부(신품종 보호), 국가정보원·경찰청(산업스파이) 등 IP 권한과 집행 체계가 분산돼 있어 유기적 협조가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는 얘기다.

특히 국가 CIPO가 없다 보니 경제적 가치가 큰 데이터에 대해 과하게 보호하는 법을 부처별로 경쟁적으로 만들고 있다고 우려했다. 경제 자산으로서 데이터를 보호할 수 있는 제도가 IP인데, 데이터 자체를 과하게 보호하면 벤처·스타트업의 데이터 활용을 막아 4차 산업혁명에 장애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과학기술정보통신부·산업통상자원부·특허청이 각각 주도한 데이터기본법·디지털전환촉진법·부정경쟁방지법이 국회에서 통과된 데 이어 문화부(저작권법 개정안)와 중소벤처기업부(중기데이터법)도 데이터 관련 법을 추진하고 있다. 그는 “도로에 서로 다른 체계의 신호등이 5개나 생겨 운전자가 혼란을 겪는 형국이 될 것”이라며 “데이터 관련법의 비정상적 난립이 초래됐는데 보호와 활용 사이 균형이 필요하다”고 호소했다.





문재인 정부에서 데이터 활용을 활성화하기 위한 빅데이터 3법(개인정보호보호법·정보통신망법·신용정보법 개정안)을 2019년 말 국회에서 통과시킨 것은 큰 업적이지만 이후 부처마다 데이터이용제한법을 경쟁적으로 내 기가 막히다는 게 그의 심정이다. 그는 “기업들도 데이터를 이용하기 힘들다고 곤혹스러워한다”며 “빅데이터는 개인정보 외에도 스마트폰, 노트북, 공장 기계, 공공기관 등에서 많이 나오는데 종합적인 활용과 관리가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디지털공화국법이 있는 프랑스를 예로 들며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경제산업부 장관이었던 시절(2016년)에 만들어진 이 법은 데이터 공급을 늘려 벤처·스타트업 생태계 활성화 등 여러 효과를 노린 것”이라고 부연했다. 디지털공화국법은 데이터 유통 촉진, 개인 권리 보호, 디지털서비스의 평등한 접근을 다루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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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위원장은 “차기 정부에서는 AI·바이오·양자 등 전략 기술의 연구개발(R&D) 과정에서부터 IP 역량을 강화하고 기술 탈취·유출 방지에 역점을 둬야 한다”고 조언했다. 산학연이 IP 정보를 활용해 기술과 시장 동향을 분석한 후 R&D를 기획하고 연구 전략을 수립하는 지식재산권연계연구개발(IP-R&D) 전략을 펴 IP 수익화에 나서야 한다는 것이다.

정 위원장은 “IP 총괄 컨트롤타워가 제대로 서지 못해 산학연의 IP 경쟁력이 미국·유럽 등에 크게 뒤처진다”며 “대학과 출연연은 특허를 위한 특허를 양산하는 구습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특히 대학 산학협력단 단장을 교수가 맡아서는 기술 사업화가 어렵고, IP와 비즈니스를 잘하는 전문가가 기업처럼 운영하도록 해 전문화를 꾀해야 한다고 힘줘 말했다. 그래야 기업에 대한 기술 이전과 기술 기반 벤처 창업, 청년 일자리 증가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현재 국내 320여개 대학은 연간 정부로부터 7조 원가량의 R&D 지원금을 받는데 기업에 대한 연간 기술 이전 수입이 총 1100억 원 정도에 불과하다. 이는 미국대학기술관리자협회(AUTM)의 통계를 볼 때 하버드대 의대 메사추세츠종합병원(MGH), 노스웨스턴대 등 미국 대학 기술 이전 수입 8위 이내 대학 하나만도 못한 실적이다. 미국은 나스닥에 상장된 특허관리전문회사(NPE)만 20여 개나 될 정도로 IP 전략에 능하다. 반면 국내 대학과 출연연의 상황이 대동소이해 특허 등 IP 경쟁력의 질적 향상과 종합적인 관리가 절실하다는 게 그의 의견이다.

기업도 고도의 IP 전략을 펴야 한다는 게 그의 주문이다. 현재 삼성전자의 경우 연 3조 5000억~4조 원, LG전자는 연 2조 원가량을 로열티로 해외에 지급하고 있다. 국가적으로는 특허·상표·디자인·실용신안·저작권 등 지식재산권 무역수지 적자가 18억 7000만 달러(2020년)에 달했다. 미국 퀄컴은 코드분할다중접속(CDMA) 원천 특허로 우리나라에서 지난 10년간 10조 원 가까운 로열티 수입을 올렸고 프랑스 GTT사는 우리 업체가 장악한 액화천연가스(LNG)선에서 선가의 5~7%를 로열티로 받고 있다.



정 위원장은 IP 전략과 관련해 “미국 CIA는 소련이 무너지고 멘붕에 빠졌다가 지난 30여 년간 산업스파이를 잡는 역할을 잘해왔다”며 “국정원의 경우도 산업스파이 첩보와 방첩 활동이 중요해 경제 안보에서 전문성을 대폭 높여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러면서 산업스파이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고 기술 개발 연구원에게 충분한 보상이 이뤄지게 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부끄러운 얘기지만 지재위가 예산·조직 부족으로 일하기 어렵다”며 “어떻게 해서든지 국가 IP 전략을 반석에 올려놓기 위해 현재의 답답한 상황을 타파해야 하는데 역부족”이라고 호소했다. 그러면서 5개 부처가 서로 다른 데이터 법안을 추진할 때 부처와 국회 등 여러 경로를 통해 의견을 냈지만 지재위 간사 부처인 과기정통부를 제외하고는 무시하고 넘어가더라고 토로했다. 이는 역대 대부분 대통령과 총리의 IP에 대한 인식이 미흡한 현실과도 일맥상통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그는 “4차 산업혁명에 성공하려면 모든 부처를 총괄 조정할 수 있는 IP 컨트롤타워가 필요하다”며 “해외 주요국, 세계지식재산기구(WIPO)와 긴밀한 협력 체계도 구축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미중 과학기술 패권 전쟁과 관련해 “미국뿐 아니라 중국과도 경제 협력을 해야 하는 것은 맞지만 나중에 우리가 중국의 하청 국가가 되지 않으려면 IP 전략을 잘 취해야 한다”며 “그래야 청년 일자리도 만들고 혁신 경제 활성화도 꾀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he is...

△1959년 서울 △서울 보성고 △서울대 법학 학·석사 △영국 런던대 정치경제대학원 법학 석·박사 △1994년∼ 서울대 법대 교수 △2012∼2014년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학장·원장 겸임 △2014∼2018년 한국게임법과정책학회 회장 △2016년∼ 한국과학기술한림원 정회원(정책학부) △2020년∼ 제5·6기 국가지식재산위원회 위원장

고광본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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