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기업

[단독] 해외법인 매출 증가율, 국내의 2배…고용감소 악순환 우려

[기업들 '脫한국' 러시]

■100대 기업 해외법인 매출 첫 50% 돌파

규제·법인세에 고급인력도 부족…해외법인 무게 쏠려

기계·운수는 글로벌 실적만 커지고 車·화학도 국내 압도

하위 80개곳 국내 매출은 정체…자본·일자리 유출 심화





산업계에서는 국내 기업들의 실적이 해외 현지 공장이나 영업 법인 쪽으로 쏠릴 경우 경제 낙수 효과는 점점 더 기대하기 힘들 것이라고 경고한다. 겉으로 보이는 수치만 화려할 뿐 일자리 창출, 세수 증가 효과는 미미할 수 있다는 얘기다. 무엇보다 성장세에 있고 규모가 비교적 작은 대기업일수록 각종 걸림돌을 피해 국내 투자를 빠르게 줄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가 적극 대처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실제로 25일 서울경제가 전국경제인연합회와 100대 기업의 국내외 매출액 비중 추이를 분석한 결과 2017~2021년 이들 기업의 연평균 해외 매출액 증가율(5.6%)은 국내 매출액 증가율(2.8%)의 두 배 수준에 달했다. 게다가 이 격차는 코로나19 사태를 기점으로 더 빠르게 벌어졌다.

코로나19 확산 직전인 2019년만 해도 전년도 49.3%까지 올랐던 해외 법인의 매출 비중이 48.9%로 떨어지며 다시 안정을 되찾는가 했다. 기업들의 매출액이 전반적으로 줄어드는 가운데 국내 법인의 매출 감소율(-0.3%)이 해외 법인의 매출 감소율(-1.7%)보다 낮았던 덕분이었다.

그러다 코로나19가 본격적으로 상륙한 2020년부터는 추세가 바뀌었다. 국내 법인의 매출액 감소율(-5.8%)이 해외 법인(-3.4%)보다 늘어나며 해외법인의 매출 비중이 49.5%로 재차 치솟았다. 급기야 지난해에는 51.2%로 100대 기업들의 해외 법인이 돈을 더 벌기 시작했다. 국내 법인의 매출액은 15.3% 반등했지만 해외 법인의 매출 증가율은 23.5%로 이보다 훨씬 더 높았다.
매출 규모별로 1~20위 기업과 21~100위 기업으로 나눠봐도 2017~2021년 가파른 연평균 해외 법인 매출액 증가율은 비슷했다. 상위 20개 기업의 해외 법인 매출액은 2017년 551조 5000억 원에서 지난해 684조 5000억 원으로 매년 5.5%씩 증가했고 나머지 80개 기업은 175조 원에서 218조 1000억 원으로 매년 5.7%씩 늘었다.

반면 국내 법인의 매출액 증가율 차이는 컸다. 상위 20개 기업의 4년간 국내 법인 매출액은 413조 원에서 487조 7000억 원으로 연평균 4.2% 증가했지만 80개 기업은 356조 8000억 원에서 372조 원으로 겨우 1.0%씩만 늘었다. 80개 기업의 해외 법인 매출 연평균 증가율(5.7%)은 국내 법인(1.0%)의 5배를 넘었다.



삼성전자(005930)·현대자동차·LG전자(066570) 등 이미 해외 생산 시설을 상당수 구축해 해외 법인의 매출 비중이 60~80%에 달하는 초대형 기업들과 달리 사업 확장기에 있는 후발 대기업들이 더 활발히 해외로 눈을 돌린 까닭이다. 매출 규모가 작은 회사일수록 ‘억지 국내 투자’를 강요하는 정부와 여론의 눈치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점도 이 같은 결과를 끌어낸 것으로 풀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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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전자의 전장 사업 합작사 ‘LG마그나 e파워트레인’이 19일(현지 시간) 멕시코 라모스 아리스페에 짓기 시작한 전기차 부품 생산 공장 조감도. 사진 제공=LG전자LG전자의 전장 사업 합작사 ‘LG마그나 e파워트레인’이 19일(현지 시간) 멕시코 라모스 아리스페에 짓기 시작한 전기차 부품 생산 공장 조감도. 사진 제공=LG전자


업종별로는 제조업과 서비스업 모두 해외 법인의 매출 증가율이 더 높았다. 제조업과 서비스업의 4년간 연평균 해외 법인 매출 증가율은 각각 5.5%, 8.0%였지만 같은 기간의 연평균 국내 법인 매출 증가율은 각각 4.0%, 0.7%에 불과했다.

전기·전자, 철강·금속, 조선업을 제외한 모든 업종이 국내보다 해외 법인에서 더 매출을 늘린 가운데 기계, 운수·창고, 유통업은 아예 국내 법인 매출이 4년 동안 뒷걸음질쳤다. 이들은 해외 현지에서만 연평균 2.2%, 11.6%, 7.4%씩 매출을 키웠다. 자동차, 석유·화학, 정보통신, 식음료·의류 분야도 해외 법인 매출을 5.7%, 9.2%, 15.5%, 15.2%씩 늘렸다. 연평균 내수와 수출을 합친 국내 법인 매출 증가율은 각각 4.5%, 3.1%, 1.8%, 5.0%에 그쳐 이에 한참 모자랐다.

이상호 전경련 경제정책팀장은 “내수 시장의 성장 속도가 더디니 국내 투자가 줄어들고 있다”며 “기업 규모별로 격차가 벌어지는 상황도 특징”이라고 말했다.

재계에서는 이 같은 현상이 각종 규제, 세금 부담, 고급 인재 부족, 미흡한 산업 생태계 등에 기인한다고 지적했다. 다른 나라들이 각종 세제 혜택, 투자 인센티브 등으로 앞다퉈 기업 유치에 열을 올리는 동안 한국 정부의 노력은 크게 눈에 띄지 않았다는 것이다.

2019년 2월 계획을 발표하고도 여태 첫 삽도 못 뜬 SK하이닉스(000660)의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사업은 한국에서 기업을 경영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자동차 업체들과 배터리 제조사들도 세액공제, 보조금 혜택은 얻고 각종 규제, 강성 노동조합은 피하기 위해 최근 해외로의 보폭을 넓히는 추세다. 전기차 등 미래 성장 동력 산업의 생태계가 국외에 더 잘 조성된 점도 해외 진출의 또다른 요인으로 지목된다.

경쟁 국가들보다 높은 우리 기업의 국내 조세부담률도 문제다. 전경련에 따르면 반도체, 가전, 디스플레이, 휴대폰, 자동차, 석유·화학, 조선 등 7개 업종을 대표하는 한국 기업들의 지난해 법인세 부담률은 평균 25.7%로 글로벌 경쟁사 평균(15.7%)보다 10.0%포인트 더 높았다. 더욱이 관세, 물류비, 원자재 값 급등 등의 부담까지 늘어난 올해에는 해외 투자 요인만 더 증가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윤경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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