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경제·마켓

충격요법 대신 시장 달랜 파월…"경기 침체만큼은 피하겠다는 메시지"

■美 기준금리 0.5%P 인상

"높은 인플레로 인한 어려움 잘 알아" 이례적 대국민 사과

양적긴축 내달 시작…475억→950억弗로 단계적 확대

연준 '인플레 정점' 판단…떨어질때까지 강약 조절할 듯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이 4일(현지 시간)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이후 열린 기자회견에서 질문에 답하고 있다. EPA연합뉴스제롬 파월 연준 의장이 4일(현지 시간)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이후 열린 기자회견에서 질문에 답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4일(현지 시간)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를 마치고 기자회견장에 들어선 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은 작심한 듯 “세부 내용을 알리기 전에 미 국민들에게 이 자리를 빌려 전하고 싶은 게 있다”며 “인플레이션이 너무 높다. 우리는 이 때문에 초래되는 어려움을 잘 알고 있으며 이를 내리기 위해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고 말했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열린 첫 대면 기자회견에서 이례적으로 대국민 사과부터 한 셈이다.



월가의 사정에 정통한 금융권의 한 관계자는 “인플레이션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이를 잡겠다는 의지를 밝힘으로써 인플레이션 기대가 상승하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이라고 해석했다.

이날 연준과 파월 의장은 “노동시장이 극도로 타이트하다” “급여 인상 속도가 수년 만에 가장 빠르다” “총수요가 강하다” 같은 우려를 쏟아냈다. 특히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국제 유가 상승 압력으로 작용하고 있으며 중국의 코로나19 록다운(폐쇄)도 물가 상방 위험 요인이라고 짚었다. 이날 연준이 22년 만에 기준금리를 0.5%포인트 인상하고 양적긴축(QT)을 475억 달러로 시작해 950억 달러까지 단계적으로 늘리기로 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인플레이션 파이터’였던 폴 볼커 전 연준 의장 이후 가장 매파적인 연준이라는 얘기가 나오는 이유다.





하지만 속내를 들여다보면 예상보다 비둘기파적인 요소가 짙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이날 파월 의장은 0.75%포인트의 과격한 금리 인상 가능성을 배제한 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인상 폭이 0.25%포인트로 돌아갈 수 있다는 식의 발언을 했다. 높은 임금 인상 속도에도 인플레이션과의 상호 상승 작용은 없다고 선을 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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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티는 “시장의 기대에 비해 비둘기파적인 FOMC였다”며 “인플레이션이 매우 높은 데다 추가 상승 위험이 있는 상황에서 0.75%포인트 가능성을 배제한 것은 놀랍다”고 지적했다.

이는 연준의 인플레이션 전망이 시장보다 좀 더 낙관적이기 때문이다. 파월 의장은 “근원 개인소비지출(PCE) 물가지수 상승률이 둔화되는 것 같은 몇 가지 근거를 보면 아마도 인플레이션이 정점에 달했을 수 있다”며 “인플레이션이 하락하지는 않더라도 상승세는 멈출 것(flattening out)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3월 근원 PCE는 전년 대비 5.2% 상승하며 2월(5.3%)보다 낮아졌다.

실제 연준은 낮아지는 물가 상승률과 탄탄한 경제를 바탕으로 연착륙이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다. 파월 의장은 “경제는 강하고 더 긴축적인 통화정책을 감당할 준비가 잘 돼 있다”며 “경기 하강에 가까워진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고 수차례 강조했다.

이날 연준은 1분기 마이너스 경제성장률에 대해서도 “전반적인 경제활동 감소에도 가계지출과 기업 투자는 강한 상태”라고 분석했다. 이를 고려하면 연준은 인플레이션이 어느 정도 떨어질 수 있는 연말까지 금리 인상 폭을 조정하면서 최대한 버티려고 하는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찰스슈와브의 채권담당 전략가인 콜린 마틴은 “6월에 0.5%포인트의 금리 인상이 있을 것이며 우리는 인플레이션이 피크에 가까워졌다고 본다”며 “이는 연준의 공격적인 긴축 움직임을 누그러뜨릴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월가의 또 다른 관계자도 “파월 의장의 발언을 뒤집어보면 결국 정책 목표(2%)를 꽤 웃도는 인플레이션이 이어지더라도 경기 침체만큼은 피하겠다는 의미”라며 “인플레이션이 어느 정도 떨어질 때까지 충격요법을 쓰지 않고 시장을 달래가면서 시간을 벌어보겠다는 의도”라고 말했다.

다만 시장에서는 파월 의장의 뜻대로 경제가 굴러갈 것인지에 대한 의구심이 적지 않다. 월가 안팎에서는 실업률을 높이지 않으면서 5%가 넘는 인플레이션을 낮춘 사례가 거의 없다는 얘기가 흘러나온다. 올여름에 여행과 레저 수요가 폭증하면서 다시 한 번 물가가 치솟을 수 있다는 예상도 여전하다.

이미 연준은 지난해 인플레이션 추이를 오판해 사태를 악화시킨 바 있다. 미 경제 방송 CNBC가 월가 전문가 30명을 상대로 한 설문조사를 보면 응답자의 57%가 연준의 인플레이션 둔화 노력이 경기 침체를 불러올 것이라고 예측했다. 페드릭 미슈킨 전 연준 이사는 “인플레이션 대응 과정에서 연준의 신뢰도에 문제가 생겼다”며 “지금 상황에서 소프트랜딩은 도전적인 일이 될 것”이라고 전했다.


로스앤젤레스=김영필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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