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기업

파운드리 수율 저조에 부사장급 10여명 교체…리스크 콘트롤타워 신설

[급박하게 돌아가는 삼성시계]

■ 반도체 특단조치 나선 이재용

파운드리 초격차 위해 조직쇄신

연구소도 D램·플래시로 세분화

EUV등 장비 공급난 해소 위해

네덜란드서 M&A 논의 가능성

'슈퍼 을' ASML과 협력 모색도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지난달 20일 경기 평택시 삼성전자 반도체공장을 방문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윤석열 대통령의 공장 시찰을 안내한 뒤 인사말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지난달 20일 경기 평택시 삼성전자 반도체공장을 방문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윤석열 대통령의 공장 시찰을 안내한 뒤 인사말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삼성전자가 2일 부사장급 10여 명 등 대규모 반도체 부문 임원 인사를 단행한 것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공언한 ‘2030년 시스템반도체 세계 1위’ 목표에 비상이 걸렸음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조치로 풀이된다. 리스크 컨트롤타워 조직을 새로 만든 점도 같은 연장선상에 있다. 글로벌 반도체 소용돌이 속에서 미국·대만·중국 업체들과의 경쟁을 뚫고 미래 경쟁력을 담보하겠다는 결의가 담겼다는 평가다. 이 부회장이 돌연 유럽 출장에 나선 것도 반도체 사업 위기에 직접 돌파구를 마련하겠다는 강한 의지로 해석된다. 재계 안팎에서는 5년간 주춤했던 삼성전자의 대형 인수합병(M&A) 작업이 조만간 가시적 성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업계에서는 이날 삼성전자가 반도체 부문 부사장급 10여 명을 비롯해 주요 임원 20여 명을 교체한 조치를 두고 ‘반도체 위기론’의 일환으로 판단했다. 최첨단 4나노미터(㎚·10억 분의 1m) 공정 수율(결함이 없는 합격품의 비율) 확보가 예상보다 더뎌지면서 파운드리 사업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자 문책성 조직 쇄신으로 이를 일축했다는 해석이다. 삼성전자의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프로세서(AP) 엑시노스 생산 역시 수율 문제로 갤럭시S22 대량 공급에 고충을 겪은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로 삼성전자는 메모리반도체 시장에서는 글로벌 1위를 지키고 있지만 파운드리 분야에서는 고전을 면하지 못하고 있다. 세계 1위 업체인 대만 TSMC과의 격차를 좁히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메모리반도체 시장에서는 글로벌 1위를 지키고 있지만 업계가 초미세 공정으로 접어들면서 SK하이닉스, 미국 마이크론 등 경쟁사들과 기술 격차를 더 벌리지 못하고 있다. 차세대 제품 개발이 지체되는 게 아니냐는 소문도 돌았다.

삼성전자는 이에 반도체연구소장, 글로벌 제조·인프라총괄 인프라기술센터장 등 사람만 바꾼 게 아니라 반도체 조직 자체도 크게 개편했다. 기술 개발 역량을 전문화한다는 명목으로 메모리 기술 개발을 담당하는 메모리TD실을 D램TD실과 플래시TD실로 분리했다. 차세대 연수실도 신설해 분야별 선행 기술 개발을 강화하기로 했다.

지난달 사내에 사업위기관리(BRM)그룹을 신설한 이유도 마찬가지로 분석된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등 대외 돌발 이슈가 잇따라 터지면서 공급망 불안, 원자재 가격 폭등 등의 문제가 속출하자 컨트롤타워를 세워 이를 상시적으로 관리하기로 한 것이다. 이 조직은 위기 상황이 발생하면 유관 부서를 모집해 태스크포스(TF)팀을 구성하고 대책을 마련하는 역할을 한다. 부사장 이상이 조직장을 맡아 최고경영자(CEO)의 의사 결정을 지원할 방침이다.



이 부회장이 7~18일 네덜란드 등 유럽 지역을 방문하는 배경에도 반도체 부문에 대한 위기 의식이 강하게 깔렸다는 진단이다. 이날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의혹 사건을 심리 중인 서울중앙지방법원 형사합의25-2부(박정제·박사랑·박정길 부장판사)는 이 부회장이 출석하지 않은 상태에서 10일과 16일 두 차례 재판을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검찰도 재판부의 허가 조치에 동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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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부회장은 이번 출장에서 극자외선(EUV) 노광장비 등 장비 공급난 해소에 나설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EUV 장비를 사실상 독점 생산한다는 이유로 ‘슈퍼 을(乙)’로 통하는 ASML을 만나 협력을 구할 가능성이 높다.
경기 평택에 반도체 사업장을 증설하고 미국 텍사스주 테일러시에도 공장을 신설하는 삼성전자 입장에서 초미세 공정 핵심 설비 확보는 시급한 과제다. 반도체 품귀 현상으로 ASML조차 생산에 어려움을 겪고 있어 이 부회장이 아닌 실무자 선에서는 실타래를 풀기 힘든 상황이라는 진단이다. 이 부회장은 2020년 10월에도 네덜란드 에인트호번에 있는 ASML 본사를 직접 찾아 경영진과 EUV 장비 공급 계획, 운영 기술 고도화 방안, 인공지능(AI)을 비롯한 차세대 반도체 제조 기술 개발 협력 등을 논의했다.

이 부회장이 현지에서 M&A 관련 논의를 진척할 수 있을지도 관심사다. 네덜란드는 그동안 삼성전자가 인수할 유력 후보로 거론된 차량용 반도체 업체 NXP가 있는 곳이다.

이 부회장은 나아가 마르크 귀터 네덜란드 총리를 만나는 등 유럽에서 한국을 대표하는 ‘민간 경제 외교관’ 역할도 수행할 것으로 전망된다. 앞서 윤석열 대통령은 당선인 시절 뤼터 총리와 통화하며 양국 간 반도체 협력 확대를 모색했다.

이 부회장의 이번 출장이 본격적인 대외 활동 확대의 기점이 될 수 있다는 시각도 있다. 올 들어 경영 활동을 자제하던 이 부회장은 지난달 윤 대통령 취임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삼성전자 평택 공장 방문을 계기로 활동량을 대폭 늘렸다. 지난달 21일 서울에서 열린 한미 비즈니스라운드 테이블에서 크리스티아누 아몬 퀄컴 최고경영자(CEO)와 마주한 데 이어 30일에는 서울 서초 사옥에서 팻 겔싱어 인텔 CEO와 만나 저녁 식사까지 함께했다. 이 부회장은 올 7월 미국 아이다호주 선밸리에서 열리는 글로벌 미디어·정보기술(IT) 업계 거물 모임 ‘앨런&코 콘퍼런스’ 참석도 준비 중이다. 업계에서는 이 부회장이 여기에서 시스템반도체 M&A를 추가로 모색할 것으로 예상한다.

0316A02 연간 파운드리 점유율0316A02 연간 파운드리 점유율


다만 이 부회장의 ‘사법 리스크’는 여전히 남은 문제다. 이번 출장 과정에서도 이 부회장은 국가적 차원의 핵심 사업 경쟁력 확보를 위한 일정을 재판부에 굳이 허락받아야 했다. 이 부회장은 매주 재판 출석 일정이 잡혀 있어 해외 출장이 쉽지 않다. 앞서 바이든 대통령의 반도체 공장 방문 동행 때도 재판 불출석을 요청했지만 허락이 미뤄지면서 ‘최종 리허설’을 전날이 아닌 이틀 전에 진행했다. 향후 중요한 사업 출장이 또 생기더라도 사법 족쇄가 풀어지지 않으면 최고 수뇌부 차원에서 해결할 문제가 지연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심할 경우 아예 사업 구상이 무산될 위험도 있다.

전자 업계 관계자는 “대규모 투자나 사업 관련 결정권을 갖고 있는 이 부회장이 경영 활동에 어려움을 겪으면 각종 사업에서 족쇄로 작용할 수 있다”며 “글로벌 첨단 기술 경쟁이 국가적 싸움으로 확대되는 상황에서 정부가 이를 해소하기 위한 결단을 내려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진동영 기자·강해령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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