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직적으로 이뤄지는 신종금융사기가 노인, 장애인 등 금융취약계층을 파고들고 있다. 특히 암호화폐 등 최근에야 새롭게 떠오른 투자자산을 둘러싼 사기는 고전적인 ‘다단계 피라미드’ 사기 기법이 쓰임에도 불구하고 대규모 피해를 불러일으키는 모습이다.
28일 경찰 등에 따르면 서울경찰청 금융범죄수사대는 최근 전국 경찰서에 접수된 암호화폐 채굴업체 ‘에슬롯미’ 관련 고소 사건을 넘겨받고 수사에 나섰다. 사기 일당은 “카자흐스탄 등에서 채굴장을 차려 운영하고 있고 투자 시 매일 0.7~3%의 수익률을 보장한다”며 SNS, 지하철 광고 등을 통해 투자자를 유인했다. 하지만 에슬롯미는 지난 3일 돌연 잠적했다.
에슬롯미 사건 고소를 대리하는 포유 법률사무소에 따르면 피해자 중 100여 명은 청각장애인인 것으로 나타났다. 포유 관계자는 “피해자인 청각장애인 한 분이 회원 유치 시 커미션(중개료)을 받은 듯하다”며 “다단계와 유사한 형태로 이뤄졌다”고 설명했다.
그는 “청각장애인 뿐 아니라 노인 비중도 상당하다”며 “피해자는 최소 1000여 명, 피해 규모는 1000억 원대에 달할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수법으로만 보면 고전적인 문어발, 다단계 사기와 다를 바 없지만 ‘블록체인’, ‘채굴’, ‘디파이’ 등 어려운 용어를 이용해 손쉽게 피해자들을 모집한 셈이다.
실제로 경찰청 집계 결과 지난해 암호화폐 범죄 피해액은 3년 전인 2018년(1693억 원)보다 18배 이상 급증한 3조 1282억 원에 달했다. 관련해 지난해 총 862명이 검거된 가운데 유사수신?다단계 등 사기 피의자가 전체 검거 인원의 90%(772명)를 차지했다.
지난해 금융감독원이 총 61건의 유사수신 사기 건에 대해 수사를 의뢰한 가운데 암호화폐 관련 사기는 그중 절반 이상인 31건을 기록하기도 했다. 지난해(16건)와 비교하면 약 두 배 가까이 늘어난 수치다.
한편 채팅환전사기, 대리베팅사기 등처럼 암호화폐 업계에서 역시 한 계좌가 다수 사기 집단에 이용되는 정황도 포착됐다. 서울경제 취재를 종합하면 피해자 A씨는 지난 5월 암호화폐 투자 시 수익을 보장해준다는 문자를 받고 카카오톡 오픈채팅방에 참여했다. 두 차례에 걸쳐 총 2700만 원을 김모 대표에게 입금한 A씨는 이후 세금 환급, 계좌 개설 비용, 거래 수수료 등 명목으로 총 6090만 원을 추가로 입금했다. 대출까지 받아가며 돈을 넣었지만 A씨는 지난 24일 해당 채팅방에서 돌연 강제 퇴장당했다. 그런데 A씨가 돈을 입금한 계좌 5개 중 한 계좌는 또 다른 유사투자자문 업체와 주식리딩방 업체 사기에도 이용된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피해자들은 각 지역 경찰서에 신고를 접수하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