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마련한 신(新)재정준칙의 핵심은 전년도 하반기에 예측한 국내총생산(GDP)을 기반으로 이듬해 나라 살림의 전체 씀씀이가 결정된다는 점이다. 물론 GDP 전망치는 과거에도 성장률이 1%포인트 낮아지면 세수가 2조~3조 원가량 줄어든다는 식으로 국가 재정에서 일종의 보조 지표 역할을 하기는 했다.
하지만 앞으로는 관리재정수지 적자가 경상(명목) GDP의 3%선 내에서 제한되기 때문에 GDP가 국가재정운용의 핵심 지표 역할을 하게 될 것으로 전망된다. 관리재정수지는 정부 총수입에서 총지출을 뺀 뒤 국민연금 등 사회보장기금의 흑자를 제외한 수치다. 사회보장성기금의 흑자 규모가 매년 40조 원을 넘기는 수준이라 이를 반영한 통합재정수지는 재정 부실 문제를 가린다는 지적을 반영한 것이다.
문제는 GDP 전망치에 대한 우리 경제주체들의 신뢰가 그다지 높지 않다는 점이다. 특히 정권 교체기 GDP 전망이 출렁이는 경우가 유독 많았다. 이명박 정부에서 박근혜 정부로 넘어가던 2012~2013년이 대표적인 사례다.
당시 정부는 대선 전인 2012년 6월 경제정책방향에서 이듬해인 2013년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4.3%로 제시했으나 대선 뒤인 2013년 3월 새정부 경제정책방향을 발표하면서 2.3%로 무려 2%포인트나 끌어내렸다. 물론 이때 남유럽 재정 위기와 같은 대외적 요인이 있기는 했지만 불과 한 달 뒤인 4월 국제통화기금(IMF)이 우리 경제성장률을 2.8%로 전망한 것과 비교하면 지나치게 비관적 예상이라고밖에 볼 수 없는 수치였다. 실제 정부는 2.3% 전망을 발표한 뒤 17조 3000억 원 규모의 추가경정예산안을 국회에 제출해 “추경 편성을 위해 지나치게 위기감을 조장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일기도 했다. 이런 비판에 직면한 정부는 석 달 뒤인 6월 하반기 경제정책방향에서는 당해 연도 성장률을 2.7%로 0.4%포인트 상향했고 이듬해인 2014년 성장률은 4.0%로 제시해 경제 전망의 불확실성을 키운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2013년과 2014년의 성장률이 각각 3.2%로 같았다는 점을 감안하면 결과적으로 정치적 원인 때문에 정부 전망만 롤러코스터를 탔던 셈이다.
최근 들어서는 ‘정치적 판단’에 더해 코로나19와 같은 예측하기 어려운 ‘블랙스완’ 위기가 GDP 전망의 안정성을 떨어뜨리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과거 경제위기가 비교적 단일한 원인에 따라 발생했다면 지금은 감염병, 지정학적 갈등, 기후위기, 통화정책 등이 복합적으로 우리 경제에 변수로 작용하고 있어 예측 가능성이 떨어지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강병구 인하대 교수(전 재정정책학회장)는 “중장기적 관점에서 재정 건전성을 확보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복합 위기 상황 속에서 경직적으로 재정지출을 관리하는 준칙이 작동 가능할지 고민해봐야 한다”며 “특히 현 정부는 구체적인 세원(稅源) 확보 전략이 보이지 않아 추후 문제가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현실적으로 GDP 성장률을 정확히 예측하기 어려운 만큼 보강 장치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당장 지난해만 해도 ‘2020년 하반기 경제정책방향’ 때 제시한 성장률은 3.6%였지만 실제로는 4.1%가 나와 60조 원에 이르는 세수 오차의 원인으로 작용한 바 있다. 홍기용 인천대 교수는 “61조 원에 이르는 초과 세수는 정부의 치명적 실수라고밖에 볼 수 없고 이런 재정과 세수 예측에서 오차가 거듭되면 정부 운영에 대한 신뢰도 떨어지게 된다”며 “경제지표 예측의 정확도를 높일 수 있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당시 기획재정부는 세수 초과 오류가 드러나자 외부 전문가가 참여하는 심의위원회 설치, 인사 교류를 통한 칸막이 제거 등을 대안으로 내세웠는데 GDP 예측에도 이와 같은 장치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기재부의 한 관계자는 “현재 정부의 GDP 전망은 경제정책국 사무관 1명이 사실상 전담하고 있을 정도로 아주 정교한 체계를 갖추고 있다고 평가하기 어렵다”며 “국가 재정에서 GDP 지표가 막중한 역할을 하게 되는 만큼 국제통화기금(IMF)이나 글로벌 투자은행(IB) 이상으로 예측의 정확성을 높이는 노력이 더 필요하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