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 국내증시

[기고] 정부 지정 회계 감사인제도 폐지 검토해야

[정우용 상장협 정책부회장]

전체 상장회사 50% 넘는 기업이

정부가 지정한 감사인에 감사 받아

기업현장 감사품질 등 불만 고조

회계부정 처벌 강화가 본질 해법





본질적으로 회계감사는 비즈니스에 대한 깊은 이해가 요구된다. 따라서 기업을 잘 이해하고 역량을 갖춘 감사인을 선임할 재량권을 기업이 갖도록 하는 것이 기본이다. 다만 감사인의 독립성을 확보하기 위해 다양한 보조적 장치(감사위원회의 감사인선임권, 감사인선임위원회 등)를 마련해 전문성과 감사 품질 모두가 충족될 수 있도록 대부분의 국가가 균형 잡힌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그런데 지난 정부는 대우조선해양 회계 부정 사건을 계기로 6년이 지날 때마다 정부가 3년간 감사인을 지정하도록 하는 ‘주기적지정제’라는 초유의 제도를 많은 반대 의견을 무시하면서 도입했다. 그 결과 2019년 220개사를 시작으로 2020년 462개사, 2021년 674개사가 지정됐고 매년 직권 지정된 경우까지 포함하면 2021년 기준 전체 상장회사의 50%를 초과하는 기업이 정부에서 정해준 감사인의 감사를 받는 초유의 상황이 지금 대한민국 자본시장에서 펼쳐지고 있다는 사실에 놀라움과 충격을 금할 수 없다.



회계 업계에서는 주기적지정제 도입 이후 다방면에 걸쳐 효과가 있음을 주장하며 제도가 지속적으로 유지돼야 한다고 역설한다. 우선 회계 업계는 지난해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원(IMD)의 회계투명성 순위가 63위에서 37위로 상승한 것을 두고 새로운 외부감사법의 효과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얼마 전 회계투명성 순위가 다시 53위로 급락하자 이를 몇몇 기업의 횡령 사건에 기인한 것으로 해석하며 이 같은 결과의 확산을 꺼리는 듯하다. 어디에서도 회계 업계의 역할 부족에 대한 반성과 성찰은 보이지 않는다.

관련기사



안타깝게도 지정 감사인의 전문성에 대한 의구심과 감사 품질에 대한 기업 현장의 불만은 쉽게 사그라들고 있지 않다. 기업 현장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감사로 기업과 감사인 간 분쟁 사례가 줄어들지 않고 있으며 감사인의 독점적 지위로 인해 지정 감사인의 독립성 확보를 넘은 권한 남용 내지 과도하고 불합리한 요청이 늘었다는 불만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또한 ‘역전된 갑을 관계’ 문제도 발생하고 있다. 전?당기 감사인 간 다툼 내지 의견 차이가 대폭 증가하면서 감사보고서 정정에 따른 재무제표 신뢰성 하락 등의 부작용도 발생하고 있다.

다행히 정부가 이러한 주기적 지정 제도의 실무상 문제점을 파악하고 이를 해소하기 위해 다양한 감독 지침, 유권해석 등을 수시로 마련하고 있어 기업들에는 적지 않은 도움이 된다. 이번에도 업계와 회계 전문가 등으로 태스크포스(TF)를 꾸려 개선에 나선다고 한다. 그러나 찔끔찔끔 고치는 이 같은 접근 방식으로는 주기적 지정 제도의 문제점을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없음이 명확하다.

지금이라도 주기적 감사인 지정 제도 자체에 대한 재검토가 필요하다. 대신 회계 부정에 대한 형사처벌 및 감리를 강화하고 내부고발 제도를 보다 활성화해 회계 부정을 적발해서 그 비용이 효익을 초과한다는 강력한 신호를 시장에 전달하는 것이 회계 부정에 대한 보다 근본적이고 본질적인 해결책이 될 것이다. ‘불필요한 규제를 덜어내는 것이 회계 개혁의 후퇴가 아니라 전진’이라는 인식을 가지고 기업 현장의 목소리에 조금 더 귀 기울이며 회계 제도에 관한 모래주머니를 벗기는 데 힘써줄 것을 새 정부에 당부한다.

그간 현장에서의 불편과 부당함을 감내한 기업들의 “우리 기업을 잘 이해하는 감사인이 감사하게 해달라”는 목소리에 새 정부가 답할 때다.


한동희 기자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