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이슈 리포트]5년간 무너진 민간외교…'워싱턴의 숨은 조력자' 다시 키워라

박재적 한국외대 국제지역대학원 교수

■한미동맹 위한 '정책 공공 외교'의 중요성

박재적 한국외대 국제지역대학원 교수박재적 한국외대 국제지역대학원 교수




낸시 펠로시 미국 하원 의장 한국 도착 시 공항 의전과 대통령과의 대면 면담 불발을 두고 다양한 해석과 평가가 나왔다. 물론 펠로시 의장이 중국의 거센 반발을 불러왔던 대만 방문 직후 방한한 것이어서 협의 과정에서 양국 당국자가 서로의 속내를 터놓고 협의하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이 같은 경우 윤활유 역할을 할 수 있는 것이 비공식 외교 라인을 통한 사전 교감 및 비공식적 조율일 것이다. 하지만 전 정부에서 우리의 대미 정책 공공 외교가 악화한 측면이 있어 이 같은 비공식 채널이 작동했는지는 의문이다.




미국의 외교·안보·통상분야 정책 연구원

소속 인사 행정부 입각·정책조언 등 관여

한반도 정책에 영향 주는 주요 민간 집단

워싱턴 연구원 대상 공공 외교 힘쓰지만

한국국제교류재단 취약한 재정에 한계점

컨트롤타워 역할할 공식 협의체도 없어

토론회 패널 정부 반대 견해 내비치기도

한미동맹 진정한 '포괄적 동반자' 되려면

양국 美 인태전략 이해 높일 토론회 열고



미국의 여론 주도층에 北 억제·中 견제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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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이 처한 특수한 입장 충분히 설득해야



‘한국 피로증’ 퍼트리는 日…지켜만 보는 韓



2018년 2월 평창 동계 올림픽 개최를 전후로 시작된 국제사회의 북한 비핵화 협상 국면에서 북미 협상이 남북 협상과 함께 한 축을 구성하게 됨에 따라 미국을 대상으로 하는 정책 공공 외교의 중요성이 배가됐다. 그런데 대미 정책 공공 외교의 가치가 부각되는 상황에서 2018년 6월 국책 연구원인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이 실적 부족과 회계 불투명성을 이유로 미국 존스홉킨스대 국제대학원 산하 한미연구소(USKI)에 대한 지원금을 중단했다. 이에 USKI 측에서는 미 국무부 북핵특사를 지낸 로버트 갈루치 USKI 이사장이 언론을 통해 강력히 비난하는 등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갈루치 이사장은 문재인 정부의 대북 정책을 지지해온 미국 내 유력 인사여서 당시 남북 및 북미 정상회담을 앞둔 상황에서 파장이 컸다. USKI 지원금 중단으로 북한 문제를 연구하는 USKI 산하 ‘38노스’가 우리 정부 지원금과 무관한 ‘스팀슨연구소’로 옮겨갔다.

지난 정부 동안 다수의 워싱턴 정책 연구원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와 문재인 정부 간의 정책 불협화음을 지적하는 보고서를 내놓았다. 일각에서는 한일 관계의 지속적 경색 원인이 한국의 역사 문제에 대한 지나친 원칙 고수에 있다는 비판도 나왔다. 또 지리적 근접성, 경제 의존, 문화적 연대 등으로 인해 한국이 궁극적으로 미중 사이에서 중국을 선택할 것이라는 우려도 제기했다. 일본은 공공 외교를 통해 워싱턴 정책 커뮤니티에 한국의 중국 경도 가능성과 한일 관계 경색에 대한 ‘한국 피로증(Korea Fatigue)’을 꾸준히 확산시켰다. 그러나 USKI 지원금 중단 등으로 인한 비우호적 분위기로 문재인 정부가 당시 한국 정부의 입장을 미국 정책 커뮤니티에 체계적으로 설명하고 이해시키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尹 정부 5년 공공 외교 밑그림 제대로 그려야



정책 공공 외교는 주요 외교 사안에 대한 우리의 입장을 상대국 여론 주도층에 지속적·체계적으로 설명하고 이해시키는 공공 외교이다. 따라서 대상은 상대국의 학계, 정책 연구원, 언론계 인사 등 여론 주도층이다. 공공 외교의 다른 분야인 문화 공공 외교, 지식 공공 외교, 국민외교와 비교하면 정책 지향성 정도가 가장 높지만 대상과 범위는 가장 좁다. 정책 공공 외교의 관점에서 미국의 한반도 정책에 영향을 미치는 가장 중요한 민간 집단은 외교·안보·통상 분야 정책 연구원이다. 미국의 정책 연구원 대다수가 보수적 이념과 진보적 이념 사이에서 분명한 정치적 지향을 가지며 소속 인사는 행정부에 입각하거나 정책 조언을 통해 행정부의 정책 결정에 깊이 관여한다.

정책 공공 외교의 주체라 할 수 있는 외교부와 통일부, 외교부 산하 한국국제교류재단,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등이 워싱턴 정책 연구원 대상 정책 공공 외교에 힘써오고 있다. 외교부와 통일부는 국내 정책 연구원과 협력해 미국 정책 연구원 및 대학과 대화형 공공 외교를 전개하고 있다. 한국국제교류재단은 미국 정책 연구원 내 ‘한국석좌(Korea Chair)’직 설치, 미국 차세대 전문가 육성, 포럼 개최, 미국 유력 인사 초청 등 다양한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또한 국내 국책 연구원과 민간 연구원은 공동 연구와 전략 대화 개최를 통해 미국 정책 커뮤니티의 한국 정책에 대한 이해와 공감도를 높이고 있다. 이외에 기업도 미국 정책 연구원의 한국 관련 프로그램을 후원하고 있다.

하지만 정부 기관과 민간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워싱턴 정책 커뮤니티 대상 정책 공공 외교는 재정적 제약에 직면해왔다. 중국이나 일본보다 한국의 공공 외교 예산이 매우 적다. 일본은 국제교류기금에 기반을 둔 일본재단(JF)의 예산에 더해 사사카와재단(Nippon Foundation)과 같은 민간 기관의 재원이 시너지 효과를 창출하고 있다. 한국국제교류재단의 예산은 일본 국제교류기금의 5분의 1 수준이다. 한미 동맹 강화를 정책 우선순위로 삼고 있는 윤석열 정부는 한미 동맹의 기저를 다지기 위해 정부의 정책 공공 외교 예산을 확충하고 기업의 재정 지원도 유도해야 한다.

아울러 윤석열 정부는 대미 정책 공공 외교를 효과적으로 전개하기 위해 외교부·통일부·민주평통·국회 등 관계 기관 간 공식적 협의체를 만들어 담당 부서 간 협업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다양한 주체가 정책 공공 외교를 산발적으로 전개하다 보면 내용 중첩, 예산 낭비, 대상 중복 등 부작용이 일어날 수 있다. 다수의 정책 공공 외교 주체가 미국 정책 커뮤니티를 대상으로 국제회의, 포럼, 세미나, 전략 대화 등의 행사를 동시다발적으로 개최하고 있어 미국을 대상으로 한 정책 공공 외교가 그러할 가능성이 가장 크다. 정책 공공 외교 개별 주체가 워싱턴에서 개최하는 회의의 시기·프로그램·참석자 등이 사전에 조율되지 않고 있다. 특정 미국 인사가 지나치게 겹치기로 참석하거나 과도한 사례금을 받기도 한다. 일부 우리 측 인사는 정부의 시각과 배치되는 견해를 정부의 입장인 것처럼 전달하기도 한다. 따라서 개별 주체들의 정책 공공 외교 활동을 사전에 조율할 수 있는 ‘컨트롤타워’가 있어야 한다. 현재 정부 부처 간 협의체인 공공외교위원회가 가동 중이고 외교부는 외교부 내 관계 기관 협의체인 ‘대미정책소통작업반(TF)’을 발족시켰다. 이에 더해 정책 공공 외교를 펼치고 있는 정부, 국책 및 민간 연구원, 기업 등이 함께 정책 공공 외교의 형식과 내용을 사전에 조율하고 결과를 공유할 수 있는 협업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정책 공공 외교는 한미동맹의 안전핀



현시점에서 윤석열 정부가 대미 정책 공공 외교에서 중점을 둬야 할 사항은 다음과 같다. 먼저 한미 동맹이 진정한 포괄적 전략 동맹으로 발전하기 위해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에 대한 양국의 이해와 기대 수준을 정책 커뮤니티 차원에서 토론하고 차이가 있다면 틈을 좁혀나가야 한다. 미국이 인도태평양 전략을 본격적으로 추진하는 가운데 한국이 미국이 기대하는 협력의 수준을 충족시키지 못한다면 미국 주도의 인도태평양 안보 네트워크에서 한미 동맹의 위상은 하락하게 될 것이다. 이를 미리 방지하기 위해 정책 공공 외교를 통해 미국의 여론 주도층에 우리가 인도태평양 지역 안보 이슈에 대한 관여를 점증적으로 늘려가겠지만 대북 억제에 집중하지 않을 수 없는 특수성 때문에 속도 조절이 필요하고, 일정한 한계도 있다는 것을 설득해야 한다. 또 미국이 주도하는 안보 네트워크의 일원으로 중국의 잠재적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한미 동맹이 감당하고 있는 직간접적 역할과 비용을 미국 여론 주도층에 적극적으로 알려야 한다.

한편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북한의 핵실험 재개 여부,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운용에 대한 중국의 반발, 정보·감시·정찰(ISR) 능력을 갖추기 위한 한국의 미국 최첨단 무기 구매, 한국의 사용후핵연료 재처리를 위한 파이로프로세싱 기술 개발 등 한미 동맹 현안이 산적해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북한의 핵 및 미사일 능력 평가, 미국 첨단 무기 배치나 구매의 필요성, 한국 핵연료 재처리 기술의 비확산성에 대한 전문가의 판단은 한미 동맹과 관련된 양국의 정책 결정과 상대국을 설득할 논리 개발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 따라서 윤석열 정부는 미국 정책 커뮤니티 내 재래식 첨단 무기, 핵, 미사일, 원자력 분야의 기능 전문가에 대한 정책 공공 외교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 각종 포럼, 전략 대화, 공동 연구 등에 관련 직능 전문가들이 참여할 수 있도록 선제적으로 제안하는 등 워싱턴 정책 연구원을 매개로 관련 직능 전문가들과의 접촉면을 넓혀가야 한다.

박재적 교수는…미국 군사동맹 정책과 인도태평양 지역 국제 관계를 연구하고 있다. 미국 노스웨스턴대에서 석사 학위, 호주국립대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외교안보연구원(현 국립외교원) 객원교수, 통일연구원 부연구위원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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