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공기업

[시그널] 보잉·록히드 마틴이 투자해선 안될 기업일까

KIC, 무기 관련 기업 투자로 국감서 호된 질책

우주·항공 등 미래 사업 매출 큰 건 아예 외면

단순 투자 배제시 수익률 변동성 키울 우려도

다양한 주주 활동, ESG·수익률 강화 발판 기대

미국 록히드 마틴사가 생산해 한국 공군에 공급한 차세대 전투기 F35-A미국 록히드 마틴사가 생산해 한국 공군에 공급한 차세대 전투기 F35-A




대한민국 국부펀드가 세계 최대 항공기 제작사인 보잉이나 전투기 생산에서 세계 최고의 기술력을 확보한 것으로 평가되는 록히드 마틴의 주주로 투자 활동을 펼치는 것은 지탄의 대상이 돼야할까. 국부펀드인 한국투자공사(KIC)는 최근 국정감사에서 보잉과 록히드 마틴 등이 무기를 제조하고 있는 데도 투자한 것은 ESG(환경·사회·지배구조) 책임 투자 지침에 어긋난다는 호된 비판을 일부 국회의원에게서 받아야 했다. 하지만 KIC가 투자한 기업들이 항공·우주 등 미래 산업과 관련성이 높은 글로벌 회사인데다 투자를 아예 배제할 경우 국부펀드의 수익률 변동성을 키울 수 있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장혜영 정의당 의원은 지난 19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국정감사에서 KIC가 투자하고 있는 해외 무기 기업 내역을 공개했다. KIC는 올해 8월 기준 △허니웰 인터내셔널(1억1073만 달러) △노스럽 그러먼(9661만 달러) △록히드 마틴(8480만 달러) △보잉(6774만 달러) △제너럴 다이내믹스(2710만 달러) △텍스트론(509만 달러) △제이콥 엔지니어링(467만 달러) △헌팅턴 잉걸스 인더스트리즈(464만 달러) 등 8개 기업에 총 4억108만 달러를 투자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장 의원은 "ESG 경영을 강조하려면 그에 걸맞은 책임 투자를 해야 한다"면서 "해외 국부펀드 및 기관들도 배제하고 있는 대량 살상무기 제조기업 투자를 철회하라"고 비판했다. 노르웨이 국부펀드(GPFG)와 스웨덴 연기금(AP7), 네덜란드 공적연금(APG) 등은 이들 기업을 투자 대상에서 배제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진승호(오른쪽) 한국투자공사(KIC) 사장이 지난 19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국정감사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진승호(오른쪽) 한국투자공사(KIC) 사장이 지난 19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국정감사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아울러 장 의원은 KIC가 석탄 관련 기업 지분을 총 3억5900만 달러 소유한 것으로 밝혀졌다며 비판을 더했다. 올 해 8월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에 제출된 보고서에 따르면 KIC는 미국 산업용 가스 판매사 '에어 프로덕트 앤 케미칼'(Air Products & chemicals Inc.) 등 총 16개 석탄 기업 지분을 보유 중인 것으로 나타났다.



KIC는 2019년 투자정책서에 책임투자 조항을 신설하고 업무지침을 제정하는 등 ESG를 고려한 책임투자를 강조해왔다. 최근에는 UN 책임투자원칙 가입 서명을 추진하기도 해 KIC의 방산·석탄 업체 투자에 비판이 가해지는 것으로 풀이된다.



다만 금융투자업계는 ESG 원칙에 공감대를 형성하면서도 특정 기업을 투자에서 단순 배제하는 것이 능사는 아니라고 강조하고 있다. 장 의원이 비판 대상에 올린 곳들이 항공, 우주, 소프트웨어 등 다방면에서 매출을 내는 글로벌 기업인 것도 고려 대상으로 꼽는다. 특히 핵무기나 집속탄, 대인지뢰 등은 이들 회사의 매출 중 극히 일부에 불과한데도, 이를 전체인 것처럼 과장해 비판하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다소 극단적인 책임 투자 원칙을 내세우는 유럽 기금들과 분산 투자 및 수익률 상승이 선결 과제인 KIC를 비교하는 것이 적절하느냐는 평가도 나왔다. KIC는 8월까지 올 들어 -13.87% 수익률을 기록하며 역대 최악의 손실을 냈고, 이날 국감에서도 수익률과 관련해 뭇매를 맞기도 했다.

국내 한 연기금 관계자는 "비판 대상에 오른 기업들은 항공과 우주, 테크놀로지 분야 비중이 큰 곳이 많다"면서 "미래 산업과 직결된 기업들을 투자 대상에서 빼는 게 쉽지 않다"고 말했다.

또다른 업계 관계자는 “캐나다 공적연금과 미국 캘리포니아 공무원연금 같은 북미권 대형 기관들도 보잉과 방위 산업체를 투자 대상에서 배제하지 않고 있는 것이 현실"이라며 “비판에도 균형 감각은 필요하다”고 꼬집었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국내 연기금의 ESG는 오히려 다양한 주주활동(Shareholder engagement)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조언한다. 예를 들어 석탄 관련 기업에 일부 투자하더라도, 해당 기업이 다양한 재생 에너지를 활용할 수 있도록 주주 권한을 행사해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 이런 주주활동들은 사회에 긍정적 영향을 미치면서 기업의 지속 가능성을 높인다는 분석이 많다. 해외 기관들 역시 이 같은 주주활동을 ESG 투자의 기본 원칙으로 꼽고 있다고 전문가들은 조언했다.

금융권의 한 펀드매니저는 "기업이 지속 가능하도록 주주활동을 펼치는 것이 ESG 업계의 최신 글로벌 스탠다드"라면서 "극단적인 정책을 장려하기 보다 운용 성과까지 함께 고려한 투자 전략을 세우는데 중점을 둬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충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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