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시론]속죄양 찾기보다 통합·협치의 계기로 삼아야

차진아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참사 책임 물으며 처벌대상 찾는 건

슬픔·분노 표출할 표적몰이에 불과

여야 협력해 같은 일 반복 막는다면

후세에 '전화위복'으로 기록될수도

차진아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차진아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지난 주말의 이태원 참사는 모두에게 큰 충격이다. 특히 젊은 청춘들이 제대로 피어보지도 못하고 이렇듯 황망하게 세상을 떠났기에 더욱 안타깝고 가슴 아프다. 코로나19 사태로 분출구를 찾지 못했던 젊은이들의 열정이 핼러윈 데이를 맞아 이태원에 모였다가 이 안타까운 참사가 벌어졌다. 이태원 참사를 보면서 혹자는 성수대교 및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를, 어떤 사람은 세월호 사고를 떠올리기도 한다.

그러나 이태원 참사는 이들 사고와 분명히 다르다. 대규모 희생자가 발생한 점은 유사하지만 사고에 대해 책임져야 할 관리 주체가 현행법상으로는 없다. 성수대교 및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는 부실 공사 책임과 시설 관리 주체의 책임이 명백하다. 세월호 사고도 선박 운영 주체에 일차적 책임이 있고 사고 당시 구조 관련 담당 기관 등의 책임도 문제 된다.



그런데 이태원 참사는 주최자가 있는 행사도 아니었고 각자 거리를 자발적으로 이동하다 발생한 사고다. 이에 대해 누구에게 법적 책임을 물을 것인가. 경찰, 용산구청, 서울시, 행정안전부, 대한민국 정부, 이 중 누구의 책임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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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적 책임을 물으려면 이러한 사고가 충분히 예견 가능하고 회피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사고 발생 이후에 비로소 여러 문제가 제기되고 있지만 압사 사고의 위험에 대한 강력하고 설득력 있는 경고가 있었던가. 일부 우려가 있었으나 이런 사고를 예견한 것으로 보기는 어려우며 오히려 일부 언론에서는 핼러윈의 이태원 모임을 긍정적으로 소개하면서 젊은이들의 이태원행을 부추기기도 했다. 사고로 많은 사상자가 발생했으니 누군가는 반드시 처벌돼야 하나. 그런 방식으로 책임을 묻는 것은 슬픔과 분노를 분출할 대상으로 속죄양을 만드는 것과 다르지 않다.

참사 당일 골목길 뒷면에서 “밀어, 밀어”라고 소리 지르며 밀쳐댄 사람들이 있었고 이 행동이 사고의 직접적인 원인임이 확인된다면 이들에 대한 책임을 물을 수는 있다. 반면에 이태원 참사는 불행하고 안타까운 사고지만 이들 기관의 불법은 확인되지 않았다. 좁은 이태원 골목길에 많은 사람이 밀집한 상태에서 누군가가 뒤에서 밀치는 바람에 수많은 젊은이가 압사하는 참사가 발생했다. 경기장이나 공연장도 아니고 주최자 없이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모인 길거리에서 이런 참사가 일어난 것은 우리나라에서는 처음이다. 이런 일을 누군들 예측했겠는가. 이 참사 이전에는 예측하지 못했고 그래서 대응 매뉴얼도 만들지 못했던 것 아닌가.

이태원 참사를 계기로 여야가 극한 대립과 정쟁을 잠시 멈추고 후속 조치를 위해 협력한다니, 반가운 일이다. 그러나 참사 직후 특정 정당의 당직자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그 원인이 청와대 이전이라고 주장했던 것이나 특정 언론사에서 사고 관련 정부 책임에 대한 제보를 받겠다고 공지한 것은 이 가슴 아픈 사고조차 정략적으로 이용하려는 사람들이 있음을 말해준다. 과연 여야의 정쟁에 이 참사가 이용될 가능성은 없는가.

이 참사가 자체로는 대한민국의 미래를 좌우하는 사건은 아닐 수 있다. 그러나 이 사고로 인해 여야의 정쟁이 심화된다면 후세의 역사는 그렇게 기록할 수도 있다. 반대로 이 사고를 계기로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우리 모두가 한마음 한뜻으로 노력하고 여야가 제대로 협치하게 된다면 후세의 역사는 불행한 사고였지만 전화위복이 됐다고 기록할 수도 있다. 어떤 것이 안타깝게 희생된 젊은이들의 죽음을 진정으로 애도하는 길이 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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