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돈은 사회에서 번 것들입니다. 사회로 환원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죠. 지금 하고 있는 장학 사업, 죽을 때까지 멈추지 않고 계속할 겁니다.”
최근 국민 교육 발전 유공자로 선정돼 정부에서 국민훈장 석류장을 받은 이소환(85) 소산장학문화재단 이사장은 8일 서울 강남구 신사동 사무실에서 서울경제와 만나 “작지만 내실 있는 재단을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라며 이같이 강조했다.
이 이사장은 동대문 남평화상가 대표, 흥인개발 회장, 신평화패션타운관리단 회장 직무대행, 대한사이클연맹 부회장 등을 지냈고 현재는 맥스타일(전 흥인시장)관리단 부회장, 신평화패션타운관리단 부회장을 맡고 있다. 1999년 자신이 소유한 시가 3억 원의 점포 2곳을 재원으로 소산장학재단을 설립해 지금까지 23년간 총 457명의 학생에게 5억 8150만 원의 장학금을 지급했고 올해도 4000만 원을 줄 예정이다.
그에게 장학 사업은 어릴 적부터 꿈꿔왔던 일이다. 그 시절 많은 사람이 그랬던 것처럼 이 이사장도 찢어지게 가난한 삶을 살았다. 쌀이 없어 죽 먹기를 밥 먹듯이 했다. 계란은 20세 때 처음 맛봤을 정도였다. 지금은 사라졌지만 당시 존재했던 학교 수업료(월사금)를 내지 못해 교무실에 불려 가는 일은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았다. 이 이사장은 “중학교에 다니는 친구들을 보기 싫어 등교 시간 때가 되면 소를 몰고 산으로 올라가고는 했다”며 “이때 앞으로는 나 같은 애들이 안 나오도록 해야겠다고 다짐했다”고 회상했다.
21세 군 제대와 동시에 상경해 서울시 상수도 검침원, 식품·담배 가게, 스웨터 점포 등 갖은 일을 다하며 돈을 모았고 나중에는 남평화상가에 40개 이상의 점포를 보유한 성공한 사업가가 됐다. 그 결과 한때 동대문에서 부가가치세를 가장 많이 낸 인물이 되기도 했다.
그에게는 돈에 대한 확고한 철학이 있다. ‘사회에서 번 돈은 사회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장학재단을 설립하겠다고 은사님들을 찾아갔을 때의 일이다. 국어 선생님이 그를 바라보며 한마디를 남겼다. “돈이 있을 때 하고 없을 때 안 하려면 아예 하지 마라.” 한번 일을 시작했으면 죽을 때까지 책임감을 갖고 하라는 의미였다. 이 이사장의 머릿속에 천둥처럼 울린 소리였다. 그는 “크지도 않고, 전국이 아니라 고향인 경북 예천 지역 학생만을 대상으로 하는 자그마한 장학 사업이기는 하지만 내실 있게 끝까지 이끌어 나갈 것”이라며 “앞으로도 욕심내지 않고 사회에 봉사하며 살고자 한다”고 덧붙였다.
재산이 많기는 하지만 그에게는 없는 것, 안 하는 것 역시 많다. 우선 자동차가 없다. 어디 갈 때는 꼭 대중교통을 이용한다. 사무실 비서 역시 없다. 점포 관리는 직접 한다. 자금 관리를 위한 프로그램도 배웠다. 술·담배는 물론 어르신들이 심심풀이로 하는 화투 놀이도 할 줄 모른다. 대신 서예로 마음을 닦는다. 이 이사장은 “손자가 자동차를 타고 다닌다고 했을 때 그 나이에 무슨 차를 몰고 다니냐고 호통을 친 적이 있다”며 “나이에 따라 자신의 환경에 따라 순리를 거스르지 않는 게 행복하게 사는 법”이라고 강조했다.
물론 걱정이 없는 것은 아니다. 가장 우려하는 것은 경기가 나빠지면서 점포 수입이 갈수록 줄어든다는 점. 월 임대료의 경우 예전의 절반 수준으로 뚝 떨어졌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장학재단은 점포 임대료 등을 통해 얻는 수익으로 운영된다. 점포 수입이 줄어든다는 것은 곧 지급할 수 있는 장학금의 규모가 작아질 수도 있다는 의미다. 당장 올해와 내년은 자체 충당금으로 예년과 같은 수준으로 줄 수 있지만 시간이 지나도 경기가 회복되지 않는다면 장학 사업에도 타격을 줄 수 있다. 이 이사장은 “지금과 같은 경기 침체는 국제통화기금(IMF) 사태 시기에도 볼 수 없던 것”이라며 “재단 운영이 걱정되기는 하지만 잘 극복해나갈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애써 우려를 덜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