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생활

구제옷에 꽂힌 MZ…친환경이 따라왔다[지구용 리포트]

[창고형 중고 의류매장 가보니]

가치소비 열풍 2030 호응

1㎏=1.5만원 저렴한 가격

레트로 감성·희소성 한몫

연 330억벌 버리는 패션계

세계 탄소 배출 10% 차지

의류기업, 중고시장 눈돌려

사진=박윤선기자사진=박윤선기자




옷걸이에 걸린 체크무늬 재킷을 들추자 ‘마쓰다 님(松田 ?)’이라고 적힌 세탁소 라벨이 눈에 띄었다. 아껴 입었는지 보풀 하나 일지 않은 이 재킷의 가격은 단돈 3만 원. 매장 안쪽에는 1㎏당 1만 5000원에 판매하는 옷들이 걸려 있었다. 두툼한 겨울용 무스탕 재킷과 상·하의가 연결된 점프슈트 한 벌을 저울에 얹자 3만 300원이 표시됐다. 평일이라 한산한 편이었지만 구제 옷을 사러온 20~30대 젊은이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최근 기자가 둘러본 경기도 김포 일대의 창고형 구제 의류 매장 4곳에는 국내뿐 아니라 해외에서 들여온 구제 옷이 빼곡했다. ‘구제 옷’하면 길거리에 잔뜩 쌓아두고 판매하는 동묘 시장이나 섬유 먼지부터 떠올리는 이들이 적지 않다. 하지만 이곳에서는 ‘창고형’이라는 수식어에 걸맞게 거대한 규모임에도 가지런히 분류된 옷들, ‘중고’ 같지 않은 고퀄리티가 눈길을 끈다. 운이 좋으면 5만~15만 원대의 가격표가 달린 버버리 등 명품 의류도 손에 넣을 수 있다. 매장 직원은 “창고형 매장들은 주로 도매에서 수익을 내지만 최근에는 환경을 생각하는 소비자들을 중심으로 인기를 끌고 있다”며 “예전에는 일본 구제 옷이 인기였는데 최근에는 미국 스타일이 더 선호되는 분위기”라고 귀띔했다.

사진=박윤선기자사진=박윤선기자


창고형 구제 의류 매장은 김포뿐만 아니라 전국 곳곳에서 성업 중이다. 서울 홍대나 부산 남포동 등에도 쾌적하게 꾸며진 구제 매장들이 있기는 하지만 작정하고 옷장을 채우려는 구제 마니아들은 창고형 매장을 찾기 마련이다. 주 고객층은 2030세대다. 중장년층에게 ‘중고 옷’이란 가난했던 시절 어쩔 수 없이 입었던 옷이라는 이미지가 강한 반면 MZ세대는 ‘나만의 옷’ ‘가치 소비’의 관점으로 바라보기 때문이다.



스스로를 ‘구제 퀸’이라고 칭하는 권혜민(25) 씨는 “요즘 유행하는 ‘Y2K 감성(1990년대 후반~2000년대 감성)’이 살아 있는 데다 쉽게 구할 수 없는 희소성이 매력”이라고 말했다. 새 옷은 공장에서 대량 생산되지만 구제 옷은 세상에 하나뿐일 가능성이 높다는 점도 매력이다. 권 씨는 “요즘 구제 옷 판매자들은 드라이클리닝을 완료했다는 인증 사진을 보여줄 정도로 위생을 꼼꼼하게 챙기고 얼룩이 심하거나 훼손된 옷은 아예 구제 시장에 나오지 않아 믿고 살 수 있다”고 덧붙였다.





패션 업계의 해악에 대한 비판도 환경 감수성이 높은 MZ세대에게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맥킨지와 유엔환경계획(UNEP)에 따르면 전 세계에서 생산되는 옷은 2014년 연간 1000억 벌을 넘어섰으며 이 가운데 330억 벌 이상은 한 번도 입지 않은 상태로 버려진다. 생산과정에서 버려지는 폐원단까지 감안하면 투입된 섬유의 87%가 폐기 처분되는 셈이다. 패션 기업들이 브랜드 가치 훼손을 감수하면서까지 싸게 파느니 소각·매립하는 쪽을 택하는 탓이다. 청바지 한 벌을 만드는 데만 3781ℓ, 패션 산업 전체로는 한 해 93조 ℓ의 물이 필요하다. 이는 약 500만 명이 사용할 수 있는 엄청난 양이다.

또 의류가 생산·유통되는 과정에서 패션 산업은 전 세계 탄소 배출량의 10%를 내뿜는다. 항공업과 해운업의 탄소 배출량을 합친 것보다 많다. 옷·잡화류는 대부분 합성 소재인 만큼 땅에 묻으면 수백 년에 걸쳐 분해되면서 미세플라스틱을 남기고 태우면 다이옥신 등 유해 물질을 배출한다. 환경문제에 민감한 MZ세대가 구제 옷에 손이 더 가게 되는 이유다. 실제로 미국 중고 의류 플랫폼 ‘스레드업’의 설문 조사에 따르면 2016년 MZ세대의 중고 의류 구매 비율은 약 23%였지만 2020년에는 42%까지 치솟았다.

이런 추세에 발맞춰 패션 기업들도 중고 의류 시장에 눈을 돌리고 있다. 미국의 대표적 중저가 브랜드인 갭·타미힐피거는 스레드업을 통해 중고 제품을 판매하고 있다. ‘지속 가능한 패션 브랜드’로 잘 알려진 파타고니아의 경우 아예 자체 중고 거래 서비스가 있다. 버려지는 트럭 방수포로 가방을 만들어 전 세계적인 팬덤을 형성한 프라이탁은 자사 소비자들이 가방을 맞바꿀 수 있는 ‘스왑’ 플랫폼을 운영 중이다. ‘중고 명품’에 주력했던 국내 기업들도 MZ세대의 취향에 맞춰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현대백화점 신촌점에 지난해 9월 입점한 중고 의류 전문 브랜드 ‘마켓인유’가 대표적이다. 보스턴컨설팅그룹은 2021년 400억 달러(약 51조 원)였던 전 세계 중고 의류 시장이 2025년 770억 달러까지 성장할 것으로 전망했다.

유주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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