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건설업계

살인 부른 '층간누수'…韓도 이 시스템 있었다면 달랐을까 [이수민의 도쿄 부동산 산책]

세입자든, 자가 소유자든, 주거공간의 불편을

전문적으로 해결해주는 서비스 업체들이 있다?

입주자 관리부터 빈 땅 개발까지…사업영역 무한 확장 중

갈등의 만병 통치약 없지만, 직접 대응 피로 줄일 수 있어

층간 누수 문제로 다투던 이웃을 방화 살해한 혐의를 받는 30대 정모 씨가 19일 구속 전 피의자 심문을 마치고 양천구 서울남부지방법원을 나서고 있다. /연합뉴스층간 누수 문제로 다투던 이웃을 방화 살해한 혐의를 받는 30대 정모 씨가 19일 구속 전 피의자 심문을 마치고 양천구 서울남부지방법원을 나서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19일 서울남부지방법원은 층간누수 문제로 아랫집에 사는 이웃을 살해하고 불을 지른 30대 남성 정모씨를 구속했습니다. 지금까지 경찰이 수사한 내용에 따르면 정씨는 이달 14일 자신이 거주하는 서울 양천구 신월동의 한 다세대 주택에서 2층 자신의 집에 있던 70대 여성 A씨를 살해하고, 그 집에 불을 지른 혐의(살인 및 현주건조물방화)를 받고 있습니다.



단독 주택에서 거주하는 것이 아닌 이상,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라도 이웃집에서 들리는 소음은 피할 수 없는 문제입니다. 또한 노후 건축물은 배관 등의 문제로 언제든 누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결국 층간 소음이든, 층간 누수든, 언제든 나의 일이 될 수 있다는 이야기인데요. 이 때문에 많은 분들이 구속된 피의자에 대해 공분 하고 또 피해자의 안타까운 죽음에 대해 슬퍼하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한국을 떠나 있는 저는 이 사건을 뉴스로 접하고, 한 가지 의문이 들었습니다. ‘일본에는 층간소음 문제가 없을까? 만약 있다면 이들은 어떻게 해결하고 있을까?’

일본도 대도시는 맨션이나 아파트 등 공동주택이 많기 때문에 우리의 층간소음을 나타내는 단어가 있습니다. ‘윗층 소음(上階 ?音)’이나, ‘윗층과의 소음 트러블’ 정도로 표현하는데요. 지난해 오사카의 한 공동주택에서 발생한 20대 여성 살인 사건은 용의자가 살인 후 자살해 명확한 동기는 확인되지 못했다고 합니다. 다만 수사를 진행한 경찰은 둘 사이의 명확한 접점을 찾지 못했고 ‘옆 집에서 들리는 생활 소음에 민감해진 용의자가 피해망상에 사로잡혀 계획적으로 살인을 저지른 것’으로 추정하고 용의자 사망(공소권 없음)으로 사건을 종결했습니다. 한국처럼 ‘층간소음 살인’이 뉴스 사회면에 자주 등장하지는 않지만, 이웃 간 다툼이 없지는 않다는 의미로 읽힙니다. 고층 맨션 등 공동 주택에 거주하는 이들이 늘어날수록, 일본 사회도 층간소음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란 생각이 드네요.

일본의 한 단지형 맨션의 모습. 해당 맨션은 기사의 내용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습니다./UR홈페이지 갈무리일본의 한 단지형 맨션의 모습. 해당 맨션은 기사의 내용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습니다./UR홈페이지 갈무리


그렇다면 맨션이나 아파트에 사는 일본인들은 통상적으로 층간 소음에 어떻게 대처할까요? 잠시 제가 집을 빌릴 때 읽었던 계약서 내용을 떠올려봅니다. 월세 계약 기간 생활하며 지켜야 할 룰에 대한 내용이었는데요. ‘큰 소리로 텔레비전, 스테레오 등의 조작을 하는 것, 피아노 등을 연주하는 것’이라고 적혀있네요. 그리고 여기에 덧붙여 “이웃집의 소음이 발생할 경우 관리회사에 연락 부탁드립니다.”라고 적혀 있습니다. 예를 들면 층간소음에 시달리는 101호실의 야마다씨가 201호실의 이노우에씨에게 직접 쫓아가서 항의하는 것이 아니라 해당 공동주택을 관리하는 법인, ‘관리회사’에 문제 해결을 요청하라는 것이죠. (경우에 따라서는 직접 이웃집에 쫓아가 항의하는 일본인들도 있다고 합니다. 일단 원칙은 이렇습니다.)

그렇다면 관리회사는 어떤 일을 하는 회사일까요? 일본 부동산 투자자들 사이에서 ‘부동산 관리회사’는 임대인의 골치 아픈 일들을 전문적으로 해결해주는 파트너라는 인식이 있는데요. 대부분의 관리회사는 임대인과 아주 오랫동안 관계를 이어나갑니다. 부동산 관리회사, 한국식으로 바꿔 말하면 주택임대관리업체라고 부를 수 있겠는데요. 이곳이 맡은 업무는 아주 다양합니다. 크게는 △입주자 관리와 △건물 관리로 구분할 수 있겠습니다. 입주자 관리 영역에서는 매달 받는 월세를 관리하고, 체납 임차인을 독촉해서 밀린 돈을 받아내는 일, 누수 등 입주자가 겪는 어려움을 해결하는 일도 관리회사의 영역입니다. 고객센터를 따로 운영하고 있어 24시간 365일, 관리하는 공동주택에 거주하는 이들의 생활고충을 해결해준다는 점을 어필하는 관리회사도 있더군요.

주택임대관리회사 중 하나인 스타츠 그룹의 직원이 담당하는 맨션을 관리하고 있다./스타츠 그룹 홈페이지 갈무리주택임대관리회사 중 하나인 스타츠 그룹의 직원이 담당하는 맨션을 관리하고 있다./스타츠 그룹 홈페이지 갈무리




또 건물 관리로 들어가면 입주자가 계약 종료 이후에 이뤄지는 퇴거 청소, 수리, 리노베이션 등과 같은 수선도 관리회사의 업무에 포함됩니다. 한국 아파트의 관리 사무소처럼 장기수선충당금을 관리하는 일도 이들의 몫입니다. 관리 회사는 담당한 맨션에 공실이 생기면 새로운 입주자를 모집하기도 하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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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지어 일본 최대 부동산 관리회사인 다이토켄타쿠는 지주와 접촉해 신축 맨션을 기획, 설계하는 일도 사업영역으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건축 그 자체만 제외하고 부동산이라는 키워드로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사업영역으로 보고 진행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한국에서는 디벨로퍼와 입주자대표회의, 관리사무소, 공인중개사 등이 각각 나눠 수행하고 있는 역할을 관리회사에서 도맡아 처리한다고 보면 될 것 같습니다.다만 관리회사가 임대인, 즉 맨션 주인 등과 어떤 식으로 계약을 맺냐에 따라 이처럼 방대한 업무영역은 다소 조정될 수 있다고 하네요.

일본에서는 널리 보급된 부동산 관리회사 문화는 한국에서는 아직 생소한 개념입니다. 사실 2010년대 다이와리빙 등 일본 부동산 관리회사들이 시장 개척을 위해 한국 주택임대 분야에도 발을 들인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몇 년 만에 백기투항 하고 모두 사업을 접었습니다. 입주자가 매달 월세를 내는 일본과 달리, 한국은 계약시 오가는 전세금이 임대 시장의 큰 축을 이루고 있다는 점이 그 첫 번째 이유로 꼽힙니다. 또한 임대인들이 매달 월세 수익의 5~8%를 수수료로 내야 하는 관리회사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한국 임대인들 사이에 서는 ‘그 돈을 내느니 내가 직접 수리도 하고 세입자 관리도 한다’는 마인드가 강하다는 말이죠. 그 결과 한국은 신축 아파트의 커뮤니티 관리나 보안유지, 관리사무소장 파견 등의 업무에 초점을 맞춘 토종 관리업체(우리관리, 타워 PMC)를 중심으로 시장이 움직이고 있습니다.

일본 주택임대관리업체 1위 다이토 켄타쿠 홈페이지 갈무리일본 주택임대관리업체 1위 다이토 켄타쿠 홈페이지 갈무리


그렇다면 50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하고 있다는 일본 부동산 관리회사의 1위는 어디고, 규모는 어느정도일까요? 앞서 언급한 다이토켄타쿠그룹이 지난 2022년 기준 120만2245호로 1위입니다. 그 다음은 세이스이 하우스그룹으로 67만4125호로 관리하는 호수 규모가 절반으로 훅 떨어집니다. 3위는 스타츠그룹, 65만 2017호입니다. 4~6위는 각각 다이와리빙(61만8231호), 레오팔레스21(56만7314호), 토켄코퍼레이션(26만611호)입니다. 다만 이곳들은 아파트와 맨션 등 공동주택의 임대관리에 특화된 관리회사로, 오피스 빌딩 메니지먼트와 고급 분양맨션의 종합관리에 강점을 보이고 있는 도큐커뮤니티나 일본 하우징 등 맨션 종합관리회사하고는 조금 결이 다른 서비스를 제공한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하지만 어느 분야에 강점을 지녔든, 공동주택이라는 특정 공간에 사는 입주자의 안락한 삶을 위해 노력하는 기업들이라는 점은 공통점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만약 한국에 부동산 관리회사 시스템이 정착돼 있었다면, 누수나 소음 같은 생활 속 불편이 살인사건으로 번지는 일은 없었을까요? 부동산 관리회사가 주거공간에서 겪는 모든 문제를 다 해결해줄 수도 없고, 그들을 쓰는 비용 역시 공짜가 아닙니다. 하지만 윗집에서 물이 새거나, 옆집의 소음이 심각할 때 고통을 겪는 입주자 대신 항의나 수리를 대신 해줄 누군가가 있다는 것은 상당히 의지할만한 시스템이라 생각합니다. 이미 발생한 일에 대한 가정은 무의미한 일입니다만, 하나의 공간을 나눠 쓰는 입주자들끼리 다투고 마지막에는 한 사람이 삶을 마감해야 해야 하는 일이 벌어진 것에 대해 안타까운 마음을 지울 수 없습니다. 모쪼록 층간소음과 누수 문제 등을 입주자가 직접 나서서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일본의 부동산 관리회사처럼 ‘제3자’의 위치에서 전문적으로 해결해주는 곳들이 늘어났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물론 이웃을 배려하는 마음이 제일 중요하겠습니다.

도쿄=이수민기자 noenemy@sedaily.com

이수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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