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기업이 늙어가고 있다. 기술·경제·사회 등 모든 환경이 급변하는 오늘날 중소기업도 세월을 거스를 수는 없다. 2021년 중소 제조업 대표자가 60세 이상인 기업은 전체의 31.6%를 차지하고 있으며 70세 이상도 5%에 달한다.
일본은 우리나라보다 앞서 같은 길을 걸었지만 최근 몇 년 새 확 달라졌다. 2017년 일본 경제산업성은 중소기업 경영자 연령 분포의 정점이 1995년 47세에서 2015년 66세로 20년간 19세 높아졌다고 밝혔다. 중소기업 경영자의 고령화가 빠르게 진행된 것이다. 하지만 현재는 이들의 연령대가 젊은 층으로 완전히 바뀌었다.
일본 중소기업이 젊어진 것은 2008년 10월부터 시행한 ‘중소기업의 사업승계 촉진을 위한 중소기업 경영승계의 원활화에 관한 법률(중소기업성장촉진법)’ 덕분이다. 일본은 가업승계에 대한 엄격한 규제로 인한 장점보다 폐업 등에 따른 경제 전반의 피해가 더 크다는 사회적 합의를 도출했다. 승계 과정에서 발생하는 세금을 경감해주는 것은 물론 후계자가 일할 수 있도록 민법상 특례 조항을 둬 재산권을 지켜줬다. 그리고 승계하는 중소기업에 보증액 확대 및 정책 금융기관의 대출 지원 강화로 상속세 납부 자금 등 금융을 지원했다.
우리나라는 가업승계가 원활하지 못하다. 지난해 중소기업중앙회가 발표한 중소기업 가업승계 실태 조사 보고서를 보면 대표자의 연령이 60세 이상인 기업 가운데 승계가 완료된 기업은 2.0%에 불과하고 승계 중인 기업은 25%였다. 승계 계획이 있거나(55.4%) 없고(6.9%), 아직 결정하지 못한(10.7%) 나머지 73%는 승계를 개시조차 못하고 있다.
중소기업의 원활한 승계는 법적·경제적·사회적 측면에서 매우 중요하다. 승계는 경영 자원의 분산과 소멸을 막는 동시에 젊은이가 가업을 이어받아 혁신할 좋은 기회를 제공한다. 급변하는 기업 환경에 적응할 새로운 사업 역량을 키우면 국가적으로도 성장 동력을 얻어 경제발전을 이룰 수 있다.
최근 정부가 내놓은 세법개정안은 가업승계 대상 기업에 세 부담 경감 혜택을 폭넓게 줘 승계를 돕는 긍정적인 면이 있다. 하지만 이는 징벌적 속성이 강한 상속세 및 증여세제의 틀 속에서 특례 형태로 운영될 뿐이다. 그동안 가업승계 관련 세법은 부의 집중 현상을 심화시킨다는 부정적인 사회적 인식을 의식해 이용자 중심이 아니라 정치·정책 중심으로 설계·운영돼왔다. 정부가 그나마 상속세 과세를 유산세에서 원활한 가업승계에 도움이 되는 유산취득세로 개편하는 작업에 착수한 것은 다행이지만 늦은 감이 없지 않다. 공청회 개최 여부 등은 현재 결정된 바 없다.
가업승계 내용이 들어 있는 중소기업진흥법은 승계 지원 대상이 되는 중소기업자와 가업승계에 대한 법적 정의를 규정하고 있으나 지원을 세제로 한정하고 있다. 중소기업가업승계지원센터의 기능과 역할도 부족한 예산 등을 고려할 때 미흡하고 아쉽다. 이 법률로는 가업승계를 종합적으로 지원하는 데 한계가 있어 중소기업이 애로 요인으로 지목하는 승계 지원을 효율적으로 할 수 없다.
최근 우리나라는 창업 세대가 은퇴 시점을 지남에 따라 가업승계 이슈에 부쩍 관심이 많아지고 있다. 사회적 현상으로 나타나는 이 애로를 극복해야 한다. 현행 승계 지원 제도와는 결이 다른 새로운 방법의 접근과 대응이 필요하다. 그동안 정부가 세제 지원으로 미온적 대응을 한 게 사실이다.
이를 벗어나려면 먼저 가업승계가 단순히 재산으로서의 기업만을 후계자에게 물려주는 것이 아니라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이라는 인식을 갖도록 해야 한다. 가업승계는 기업의 경영 상태가 지속되도록 하는 소유권 및 경영권도 중요하나 이에 더해 경영자의 철학·이념·가치관·기업가정신 등 무형자산을 차세대 경영자에게 물려주는 것이 중요하다. 가업승계는 강력한 리더십과 안정감 있는 경영으로 대를 이어온 가족기업의 가치를 체계화해 전통으로 이어주는 기회다.
정부는 가업승계 인프라 구축 프로그램을 짜서 이를 시행해야 한다. 자신 있게 후계자임을 말하고 후계자의 자존감을 드높이도록 프로그램을 편성해야 한다. 후계자이면서 전문경영인이라고 말하는 위선은 없어야 한다. 유능한 중소기업 경영 후계자를 양성하기 위한 정보 제공, 컨설팅, 멘토링 등을 체계적·전문적으로 교육하고 계도·홍보하게 지원해야 한다. 가업의 존속과 번영을 이루기 위해 선대가 후대에 남긴 유훈이자 훈계인 가훈을 각 승계 기업에 맞춤 형태로 교육해야 한다.
사회에 공헌하고 봉사하는 마음을 고취시켜 책임과 의무를 다하는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하도록 지원하는 것도 중요하다. 내가 남에게 선을 행할수록 사회는 좋아진다. 기업이 ‘세상으로부터 빚지고 있다’는 윤리적 부채감을 가지고 조금이나마 더 나눔을 확산하려는 실천은 성숙한 사회를 만든다. 사회에 기쁨은 더하고 슬픔은 빼고 행복은 곱하고 사랑은 나누는 경영자가 늘어나야 한다. 상생의 덕목을 실천하는 방법은 먼 곳에 있지 않다. 우는 자를 붙들고 함께 슬퍼할 수 있는 기업의 아름다운 동행, 나눔의 일상화는 교육에서 나온다.
상속세 및 증여세 납부 자금 지원, 승계에 필요한 비용을 승계 펀드 등으로 확보할 수 있도록 금융 지원에도 심혈을 쏟아야 한다. 가업승계는 통상 10년 이상 오랜 시간이 소요되므로 여력이 부족한 가족기업은 가업승계에 충분한 시간과 자금을 투입하기 어렵다. 상속세에 대한 금융 지원이 있었더라면 고(故) 김정주 넥슨 창업주의 유족이 상속세 납부를 위해 정부에 NXC 주식의 29.3%를 물납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가업승계는 가능한 한 서둘러야 한다. 기업이 제품 하나하나에 혼을 불어넣는 놀랄 만큼 집요한 집념은 전 세계인을 사로잡는 매력적인 제품을 재탄생시킨다. 기술로 제품 혁신을 일으키고 가업에 새로운 경영 패러다임을 추구하는 것은 젊은 후계 경영자의 몫이다. 우리나라가 당면한 노령화로 노노(老老) 상속, 즉 80~90대 경영자가 사망한 후 60대 자녀가 가업을 물려받으면 은퇴 무렵의 후계자는 혁신 의욕보다 현실 안주를 선택할 가능성이 크다. 4차 산업혁명의 현 환경에서 혁신 없는 현실 안주는 죽음과 같다. 혁신이 일어나지 않으면 수출로 먹고사는 한국 경제는 심각한 타격을 받는다. 노노 상속을 회피하는 수단은 세대를 건너뛴 상속이다. 하지만 이 때 할증과세율이 30~40%로 높아 개선이 필요하다.
정부와 정치권은 우리나라의 원활한 가업승계 지원이 매우 시급한 상황을 고려해 지원을 종합하는 입법에 나서야 한다. 가령 ‘가업승계 촉진과 활성화 지원 특별법’을 제정해 젊은이가 이끄는 가족기업으로 환골탈태하도록 해야 한다. 가업승계특별법이 시행되면 성과 중심의 단기 실적에 흔들리지 않고 장기적 안목으로 투자해 고객에게 최고의 제품을 제공하는 중소기업이 많이 생길 것이다. 이는 세계의 혁신 조류에 부응하고 한국 경제의 성장을 견인한다. 가업승계를 촉진하는 법률 제정이 중소기업의 혁신을 이끌 것을 기대한다.
윤병섭 교수
경남대 대학원에서 경영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한국전력학원(수도공업고등학교) 개방이사,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 비상임이사를 역임했다. 행정자치부 주관 정부혁신관리평가단, 기획재정부 주관 공기업·준정부기관 경영평가단, 복권위원회 복권기금사업평가위원, 사행사업통합감독위원회 운영위원, 행정자치부 주관 책임운영기관 평가위원 등을 지냈다. 현재 서울벤처대학원대 교수이며 가족기업학회 회장, 한국경영학회 부회장을 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