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중국의 대립은 올해도 지속될 것입니다. 이번 주말 대만 총통 선거와 11월 미국의 대선 결과는 글로벌 외교 안보와 공급망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게 분명합니다.”
왕신셴 대만국립정치대 국제관계학부 특훈교수 겸 국제관계센터 부주임은 최근 서울경제신문과의 신년 특별 인터뷰에서 세계 패권을 다투고 있는 미국과 중국이 올해도 치열한 경쟁과 대립을 이어갈 것이며 이들 주요 2개국(G2)의 관계가 동북아 정세를 좌우하는 가장 큰 요인이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왕 교수는 양안(兩岸·중국과 대만) 관계를 중심으로 동북아 정세를 연구하는 전문가로 현재 국제관계연구센터에 몸담고 있다.
13일 치러지는 대만 총통 선거 결과는 대만은 물론 동북아, 나아가 글로벌 정세에 미칠 영향이 지대한 만큼 어느 때보다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다. 특히 올해 예정된 글로벌 선거의 전초전이 된다는 점에서 외교·안보는 물론 통상 분야에서도 주목을 끈다.
대만 총통 선거가 코앞으로 다가왔지만 결과를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접전 상황이다. 집권당인 민주진보당의 라이칭더 후보가 제1야당인 중국국민당의 허우유이 후보를 오차 범위 내에서 박빙으로 앞선다는 게 대체적인 평가다. 선거는 친미, 대만 독립 성향의 민진당과 친중 국민당이 미국과 중국의 암묵적인 지지 속에 ‘미중 대리전’ 양상으로 펼쳐지고 있다. 왕 교수에게 선거 결과를 어떻게 예측하느냐고 묻자 “민진당과 국민당의 격차가 크지 않다”며 과거에 이런 적이 없었다는 반응을 보였다.
실제로 대만 총통 선거가 민선으로 처음 치러진 2000년을 제외하면 모든 선거의 당선자는 과반수 득표로 승리했다. 2000년(민진당 천수이볜 39.3%, 무소속 쑹추위 36.84%)과 2004년(민진당 천수이볜 50.11%, 국민당 롄잔 49.89%)에 1·2위 후보가 박빙을 기록한 후 20년 만에 초접전이 막판까지 계속되는 양상이다. 여야가 8년 단위로 정권을 맞교환했지만 이번에는 승패를 예단하기 힘든 상황이다.
여야 승리에 따른 향후 전망을 묻자 현재 3위인 대만민중당의 커원저 후보의 승리 가능성은 낮다며 민진당과 국민당의 싸움이 될 것으로 예상했다. 왕 교수는 “선거 직전 커 후보가 허우 후보 지지를 선언할 수도 있지만 그렇다고 야권 표로 집결될지 미지수인 데다 입법 의원 선거도 동시에 진행돼 사퇴하기도 힘들다”며 선거는 삼파전으로 이어지지 않겠느냐고 내다봤다.
그는 “민진당이 승리하면 4년 또는 8년간 재집권하며 유례없는 장기 집권이 된다”며 “그렇게 되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집권(2032년까지 4연임 가정) 시기와 계속해서 맞물려 양안 관계는 더욱 악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대만은 2016년 차이잉원 현 총통의 당선 이후 중국과 대립각을 세우며 긴장 관계가 이어지고 있다. 대만 통일을 중화 민족의 과업이라고 여기는 시 주석과 대만 독립을 강조하는 민진당 정권이 이어지면 양안 관계는 지금보다 개선되기 힘들다.
왕 교수는 “국민당이 승리하면 양안 관계 불안은 다소 완화될 것으로 생각한다”며 “그러나 미중 관계는 변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미중의 전략적 대립 관계는 양안 관계의 회복에 따라 다소 좋아질 수는 있어도 2008년 마잉주 전 총통 시절로 돌아가기는 힘들다”고 덧붙였다. 왕 교수는 2008년 당시와 달리 지금은 미중 경쟁이 치열한 상황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그는 “국민당이 민진당에 비해 중국과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더라도 대만이 안보 측면에서 미국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는 점을 미중 관계가 회복되기 쉽지 않은 원인으로 꼽았다.
투표일이 다가올수록 중국의 개입이 늘어날 수 있다는 지적에 왕 교수는 “중국 공산당이 특별한 움직임을 보이지 않을 것”이라며 “과거 사례에서 베이징이 얻은 교훈이 있다”고 강조했다. 왕 교수는 1996년과 2000년 총통 선거를 언급했다. 중국은 1996년 선거를 앞두고 미사일 도발을 감행했으나 대만 국민들은 이에 반발해 대만 분리주의자였던 국민당 리덩후이 후보에게 표를 몰아줬다. 2000년에는 선거 3일 전 주룽지 당시 중국 총리가 “대만 독립은 전쟁을 의미한다”고 말한 것이 대만 독립 성향의 천수이볜 민진당 후보 지지로 집중돼 당선으로 이어졌다. 왕 교수는 “두 후보의 지지율 격차가 5% 이내인 만큼 중국이 무리하게 특별한 행동에 나서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변수는 있다. 중국의 경제 제재다. 왕 교수는 “묘한 부분이 있다”며 양안 경제협력기본협정(ECFA)을 거론했다. 중국은 2010년 대만과 자유무역협정(FTA)에 준하는 ECFA를 체결했으나 최근 제한·파기 가능성을 언급하고 있다. 그는 “중국 상무부의 대만에 대한 조사가 이달 12일까지 3개월 연장됐다”며 “선거를 하루 앞두고 조사를 마무리한 뒤 어떤 결과를 내놓을지에 따라 유권자들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앞서 중국 상무부는 지난해 4월 중국산 2000여 개 품목에 대한 대만의 수입 금지 조치가 무역 방해에 해당하는지 조사에 나서며 종료 시점인 10월 12일에 기한을 3개월 연장했다. 지난해 12월 대만산 화학 제품 12개에 관세 감면을 중단한 조치도 총통 선거를 앞두고 대만을 압박하는 조치라는 해석이다. 왕 교수는 대중국 교역 규모가 갈수록 커지는 대만에 군사 위협보다 경제 제재가 더 큰 압박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민진당이 재집권에 성공할 경우 대만 해협에 대한 긴장감을 한층 고조시키는 한편 대만에 대한 수출 통제를 더욱 강화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지난해 ‘시진핑 집권 3기’를 맞은 중국이 올해는 내부 통제를 더욱 강화할 것으로 내다봤다. 왕 교수는 “중국 인민들은 여전히 공산당에 대한 신뢰가 강하다”며 “갈수록 지방정부가 아닌 중앙의 권한이 커지고 공산당으로 권력이 집중되는 것이 시 주석 본인에게도 안정적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고 말했다.
대만 통일을 강조하는 시 주석이 대만에 대한 군사적 위협을 하더라도 무력 행동에 나서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내다봤다. 왕 교수는 “2025년·2027년 등을 거론하며 중국이 대만을 무력 침공할 수 있다고 전망한다”며 “특히 2027년은 시 주석이 집권 4기를 맞아 대만 통일을 위해 역사적인 행동에 나설 수 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그는 “그러나 대만이 독립하겠다고 나서거나 내란이 일어나지 않는 한 중국이 먼저 침공하기에는 위험 부담이 크다”며 “대만의 반격에 미국과 동맹국의 협조가 더해진다면 중국이 매우 큰 대가를 치러야 하고 반드시 성공한다고 장담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레드라인을 넘는 직접 공격이 아니더라도 중국의 대만에 대한 정책은 다양한 만큼 “무력은 최후의 고려 수단”이라고 주장했다.
중국이 중화 단결을 바탕으로 미국과 계속해서 대립하면 동북아 정세는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북중러 대 한미일 구도가 이어질 수 있다고 예측했다. 한국과 일본의 경우 안보는 물론 경제적인 측면에서도 “여전히 미국 편에 설 것”이라는 반응이다. 미국이 한국과 일본에 주도권을 쥐는 입장이라면 북중러는 다소 차이가 있다고도 설명했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와의 전쟁 이후 중국의 필요성이 커졌고 중국은 북한의 도발에 국제사회의 눈치를 보느라 어느 정도 거리를 둘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올해 미국 대선이 있어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도 대선을 앞두고 새로운 변화를 추구하기는 힘들 것으로 전망했다. 지난해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계기로 미중 양국 정상이 만났지만 큰 틀에서 합의한 것은 마약·군사 관련 정도라는 점을 예로 들었다. 왕 교수는 “미국 입장에서는 마약 범람 문제를 해결하고 세계 질서를 장악하기 위해 중국에 대한 장악력을 보이려면 고위급 군사 회담 재개가 필요했다”고 설명했다.
He is… △대만 국립정치대 국제관계학 박사 △2013년~ 대만 국립정치대 동아시아연구소 교수 △2013년~ 대만 타이베이대 행정정책학과 겸임교수 △2014~2015년 미국 캘리포니아대 정치학과 방문교수 △2017~2022년 대만 국립정치대 동아시아연구소 소장 △2022년~ 대만 국립정치대 국제관계센터 부주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