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7월 서울 신림역 흉기난동 사건 발생 후 온라인 상에 ‘살인예고’ 글을 올리며 시민들의 불안감을 자극했던 범죄자 중 대다수가 벌금형이나 집행유예 등 솜방망이 처벌을 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일으킨 점에 비해 비교적 가벼운 형량을 선고한 판결이 이어지고 있는 셈이다.
17일 경찰청 국가수사본부에 따르면 지난해 7월 21일 신림역 칼부림 사건이 발생한 이후 세 달간 ‘살인예고’ 글과 관련된 검거 건수는 모두 301건이다. 경찰은 작성자 298명을 검거하고, 28명을 구속했다.
이 중 최근 재판에 넘겨진 이들은 모두 별금형과 집행유예형을 선고받았다. 지난 7월 ‘신림역 흉기난동’ 사건 이틀 후 인터넷에 “대림역에서 특정 지역 출신 사람을 살해하겠다”는 글을 올려 재판에 넘겨진 30대 남성 박 모 씨도 이날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 받았다. 당시 박 씨의 글로 인해 당일 현장에는 경찰관 9명이 출동했고, 인근 시민들은 불안에 떨어야 했다. 이에 재판부는 “박 씨가 글을 올린 날은 조선(34·구속기소)이 신림역에서 흉기를 휘둘러 무고한 시민을 살해한 지 이틀 뒤”라며 “성인으로서 자신의 글 내용과 파급력에 대해 더 진지하게 생각했어야 한다”고 질책했다.
지난해 11월 8일에는 “신림역에서 한녀(한국 여성) 20명을 죽이겠다”는 내용의 글을 작성한 이 모(26) 씨가 서울중앙지법에서 징역 8월에 집행유예 2년을, 같은 해 10월 26일에는 “인천 부평 로데오 거리에서 여성만 10명 살해하겠다”는 글을 올린 40대 남성이 인천지법에서 징역 2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 받았다.
이 같은 판결에 검찰이 더 중한 형을 선고해달라며 항소한 경우도 있었다. 서울서부지검은 지난해 12월 서울 용산경찰서에서 경찰관을 상대로 칼부림을 벌이겠다는 내용의 글을 인터넷 커뮤니티 디시인사이드에 올려 벌금 500만 원을 선고받은 30대 남성 백 모 씨에 대해 처벌이 너무 가볍다는 이유로 항소했다. 검찰 관계자는 “피고인의 범행으로 사회적 불안감이 가중된 점, 국민의 안전과 사회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불철주야 고생하는 경찰관들을 상대로 별다른 이유 없이 협박 범행을 저지른 점, 피고인의 범행으로 인해 국민의 세금으로 유지되는 공권력이 낭비된 점, 동종 집행유예 기간 중임에도 재차 범행한 점 등을 고려하면 벌금형을 선고한 1심의 형량은 너무 가볍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2심 판결에서도 징역형이 선고되지는 않았다. 실제로 지난 12일 춘천지법에 따르면 온라인에 ‘칼부림 예고 글’을 올린 혐의로 1심에서 징역형의 집행유예를 선고받은 20대 남성이 2심에서도 집행유예를 받았다. 그는 석방된 뒤 공권력을 조롱하는 듯한 ‘구속 후기’까지 작성했으나, 형량은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에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으로 약간 늘어나는데 그쳤다.
이에 대해 양태정 법무법인 광야 대표변호사는 “기본적으로 불특정 다수에 대한, 대중에 대한 살인 내지 테러를 예고하는 것은 상당한 중범죄라고 생각한다”면서도 “선고 직전까지 대부분의 (살인예고 글 작성) 피의자가 구속된 상태에서 재판을 받는다는 점을 고려하면 법원에서는 집행유예를 선고하더라도 사실 1심에서 판결을 받기 전까지 구속된 것을 일종의 실형 처벌이 됐다고 이미 고려를 했다고 보인다”고 풀이했다.
집행유예를 판결한 것 자체가 ‘살인예고’ 글 사안을 엄중하게 본 것이라는 의견도 나온다. 김한규 법무법인 공간 변호사는 “한 가지 행위에 대한 범죄를 무겁게 처벌하면 다른 범죄들의 양형도 함께 높아져야 하기 때문에 현 상황에서는 법원에서 집행유예를 선고한 것 자체가 유의미하다”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