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년 만에 정권 교체에 성공한 노동당의 키어 스타머 신임 영국 총리가 공식 취임 첫날 새로운 내각을 구성하고 이튿날 전 정권의 이민정책을 폐기하는 등 숨 가쁜 변화의 시작을 알렸다.
가디언 등 외신에 따르면 스타머 총리는 5일 오전(현지 시간) 보수당의 리시 수낵 전 총리가 사의를 표명한 직후 버킹엄궁에서 찰스 3세 국왕을 만나 정부 구성 요청을 받으며 총리로 공식 취임했다. 스타머 총리가 이끈 제1야당인 노동당은 전날 총선에서 절반 의석수를 훌쩍 넘는 412석을 확보하면서 사상 최대의 승리를 거뒀다. 이날 스타머 총리는 런던 다우닝가 10번지 총리관저 앞에서 취임 연설을 통해 영국의 재건을 약속하며 “변화의 작업은 즉각 시작된다”고 밝혔다.
경제성장을 최우선 과제로 삼겠다고 한 스타머 총리는 연설 직후 새로운 내각을 공개했다. 21명이 발표된 가운데 여성이 11명이고 자수성가한 ‘흙수저’ 장관이 많다는 평가가 나온다. 스타머 총리가 노동당 대표이던 시절 구성한 예비 내각 인사가 대거 기용돼 ‘즉각적인 변화 의지’를 드러냈다는 호평이 있지만 일각에서는 “역대 가장 지루한 내각(가디언)”이라는 비판도 있다.
노동당 부대표인 앤절라 레이너는 부총리 겸 균형발전·주택장관을 겸임한다. 집안 난방을 걱정해야 할 정도로 어렵게 살았고 16세에 출산하는 등 드라마틱한 성장기를 보냈다. 더타임스는 레이너 부총리를 가리켜 “노동당 내 가장 진실한 인물 중 하나”라고 평가했다. 경제정책을 책임지는 수장으로는 영국중앙은행(BOE) 출신의 레이철 리브스가 임명돼 영국 800년 역사상 최초의 여성 재무장관이 됐다. 가디언은 “영국 정치에 존재하는 ‘유리 천장’을 깼다는 의미”라고 논평했다. 정책적으로는 보수당과 오히려 가깝다는 평가를 받는 리브스 장관은 “역대 가장 성장 지향적인 재무부를 만들겠다”고 약속했다. 이 밖에 외무장관에 기용된 데이비드 래미는 가이아나 이민 빈곤 가정 출신으로 하버드대 법대에 입학한 첫 흑인 영국인이라는 이력이 있다. 버락 오마바 전 미국 대통령과 개인적 친분이 깊고 미국 민주당 인사들과 접점이 많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스타머 총리는 취임 다음 날인 6일 첫 내각 회의를 열어 수낵 정부가 사활을 걸고 추진한 일명 ‘르완다 정책’을 폐기했다. 르완다 정책은 소형 보트를 타고 영국해협을 건너오는 망명 신청자를 영국에 머무르게 하지 않고 곧장 르완다로 돌려보내는 내용이다. 스타머 총리는 총선 캠페인을 진행하면서도 이 정책이 효과가 없다고 주장하며 이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국경안보본부를 신설하고 국경을 통제하겠다는 구상을 밝힌 바 있다.
한편 신임 총리는 7일부터 영국 4개 구성국을 방문할 예정이며 8일에는 미국 워싱턴DC에서 3일간 열리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정상회의에 참석해 외교 무대에 데뷔한다. 새 의회 공식 개원식과 새 정부의 주요 정책 청사진이 처음 공개되는 국왕의 ‘킹스 스피치(국정연설)’는 17일 진행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