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가 24일 두 달 만에 만찬 회동을 가졌다. 의정 갈등 해법을 놓고 시각 차이를 노출한 두 사람은 ‘화합’을 외치며 단일 대오를 강조했다. 다만 의정 갈등 등 주요 현안들에 대해 가시적 성과를 도출하지 못하고 ‘독대 무산’의 후폭풍에 갈등의 앙금은 남아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한 대표는 윤 대통령과의 독대 자리를 마련해달라고 대통령실 측에 다시 한번 요청했다.
윤 대통령은 이날 서울 대통령실 앞 분수정원에서 국민의힘 지도부와 약 90분 동안 만찬을 가졌다. 윤 대통령과 여당 지도부의 만찬 회동은 7월 24일 이후 두 번째다. 국민의힘에서는 추경호 원내대표를 비롯해 김종혁 최고위원, 김상훈 정책위의장 등 지도부에 새로 입성한 인사들까지 총출동했고 대통령실에서는 정진석 비서실장, 성태윤 정책실장 등 수석급 이상이 자리했다.
만찬 테이블에는 한식 메뉴가 올랐고 참석자들은 오미자주스로 건배했다. 대통령실 측은 윤 대통령이 술을 못하는 한 대표를 배려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윤 대통령과 한 대표는 서로 챙기는 모습도 보였다. 윤 대통령은 “우리 한 대표가 고기를 좋아해서 소고기와 돼지고기를 준비했다”고 친근함을 표시했다. 한 대표는 윤 대통령이 아이스라테를 주문하자 “감기 기운이 있으신데 차가운 걸 드셔도 괜찮으시냐”고 했다.
윤 대통령은 만찬에서 당정 간 화합과 소통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윤 대통령은 거대 야당의 독주로 공회전하는 정국 상황에 대해 안타까움을 토로하며 국회에서 고군분투하는 여당 지도부를 격려했다. 윤 대통령은 조만간 여당 재선과 3선 의원들과 별도 회동 자리도 마련하겠다고 했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다양한 채널의 소통을 위한 당정 간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자리였다”고 밝혔다.
참석자들은 국정감사와 원전 생태계를 주제로도 이야기를 나눴다. 윤 대통령은 체코 순방 성과를 소개하며 “인공지능(AI) 반도체 등으로 전기 수요가 급격히 늘고 있어 대안이 원전밖에 없다”고 말했고 인요한 국민의힘 최고위원은 “지난 정부에서 망가진 원전 생태계가 회복 안 될 줄 알았다”며 정부의 성과를 평가했다. 다만 참석자가 30명에 달하는 까닭에 의정 갈등, 김건희 여사 특검법 등 현안에 대한 소통은 없었다는 후문이다.
여권에서는 일단 당정 갈등의 수위를 관리할 계기는 마련했다는 안도의 목소리가 나왔다. 올 1월 김건희 여사의 명품 백 수수 논란을 시작으로 당정 충돌이 빈번하게 이어졌고 이는 여권의 불안 요인으로 작용했다. 특히 추석 전에 당정이 의정 갈등 해결의 실마리로 서로 다른 해법을 제시하면서 불협화음이 커진 바 있다. 이런 상황에서 윤 대통령과 한 대표가 ‘원팀’을 거듭 외치며 관계 개선의 발판을 마련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당정 관계가 급격히 개선될 것으로 기대하기는 어려운 측면이 적지 않다. 특히 최대 현안인 의정 갈등 해결책을 둘러싼 간극이 완전 해소되지는 않았다는 평가다. 당초 한 대표는 윤 대통령을 따로 만나 ‘여야의정 협의체’ 출범을 위해 ‘2025년 의대 정원 조정’까지 의제로 삼아 돌파구를 만들려는 계획을 가졌던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윤 대통령은 계획대로 의료 개혁을 완수하겠다는 뜻이 확고하다.
윤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추석 연휴 기간 ‘응급실 뺑뺑이’ 사례들을 보면 후속 진료를 담당할 필수의료 전문의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게 근본 원인”이라며 “의료 개혁을 흔들림 없이 추진해 질 높은 의료 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모든 힘을 쏟겠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윤 대통령과 한 대표의 독대가 불발되는 한편 이날 만찬도 90분 만에 비교적 빨리 끝났다. 올 7월 만찬보다 30분 빨리 마친 것으로 당정의 서먹한 관계를 보여주는 단면이라는 지적도 나올 만하다.
어렵게 성사된 회동에 “성과가 아쉽다”는 불만은 그래서 친한계를 중심으로 감지된다. 당정 지지율이 동반 하락하는 비상 상황에서 좋은 기회를 아깝게 소진해버린 데 따른 답답함이다. 한 친한계 참석자는 “한 대표에게 발언의 기회가 없었다”며 “화기애애한 분위기와는 거리가 있다고 느꼈다”고 토로했다.
한 대표는 이날 만찬 뒤 산책을 하면서 대통령실 고위 참모에게 “윤 대통령과 정책 현안을 논의할 자리를 마련해달라”고 요청했다고 한다. 양측 모두 독대의 필요성에는 공감하고 있으나 사전 의제 조율이 관건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한 대표는 이날 기자들을 만나 김 여사 문제를 윤 대통령과의 독대에서 논의할 사안 중 하나라고 확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