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달러 환율이 ‘트럼프 트레이드’ 우려에 1400원을 오르내리면서 전문가들의 70%가 이달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동결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다만 이번에 금리를 조정하지 않으면 내년 초 경기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는 지적이 한은 내부에서도 흘러나오고 있어 인하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단계는 아니라는 분석이 제기된다.
서울경제신문이 24일 주요대 경제학과 교수와 금융사 이코노미스트 등 3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11월 금융통화위원회 서베이’에 따르면 응답자의 70%(21명)가 이달 한은이 금리를 유지할 것으로 내다봤다. 금리를 인하할 것이라는 예측은 30%(9명)에 그쳤다.
금리 동결의 이유로는 환율이 47.6%로 첫손에 꼽혔다. 이어 집값(23.8%)과 가계부채(14.3%), 미국과의 금리 격차(9.5%) 등의 순이었다. 하준경 한양대 경제학과 교수는 “물가와 성장만 봐서는 한은도 금리를 내리고 싶을 것”이라면서도 “환율이 불안한 모습을 보이고 있어 (한은이) 11월에는 일단 쉬어갈 것”이라고 예상했다.
실제 성장이 문제다. 국제통화기금(IMF)과 한국개발연구원(KDI)은 내년 1%대 성장 가능성을 경고했다. 자본시장 업계에 따르면 최근 한은은 채권시장에 성장의 중요성을 상대적으로 강조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효섭 자본시장연구원 금융산업실장은 “환율 우려가 크겠지만 지금 더 중요한 것은 경기가 심각하게 침체되고 있다는 점”이라며 “금리 인하로 이자 비용을 줄여주고 소비 진작을 할 수 있는 시그널 효과를 주는 게 중요한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중앙은행의 기준금리 조정이 실물경제에 영향을 주는 데는 일반적으로 12~18개월 안팎이 걸린다. 코로나19 이후 해당 기간이 짧아졌다는 분석이 많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달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결정은 내년 상반기를 전후한 국내 경기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특히 한은은 이달이 올해 마지막 금융통화위원회다. 이번 금리 결정이 내년 초 경기를 좌우할 핵심 변수라는 전망이 나오는 배경이다.
한은의 이달 금리 인하 전망은 30%(9명)에 그쳤지만 개인적으로 금리를 내려야 한다고 생각한다는 이들은 36.7%(11명)로 더 많았다. 1400원을 웃도는 원·달러 환율이 부담이지만 내년 성장 역시 간과하기 힘든 대목이라는 뜻이다.
실제로 내년도 한국의 경제성장률에 대해 절반이 훨씬 넘는 63.3%(19명)가 ‘1%대 후반’을 점쳤다. ‘2%’는 33.3%(10명)였다. 11월 금통위에서 한은이 성장 전망치를 조정하는데 한은이 예상치를 낮췄는데도 정작 금리를 동결하면 모순적인 결정을 했다는 지적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말도 있다. 시장에서는 금통위가 올해 성장률 예상치는 2.4%(8월)에서 2.2~2.3%, 내년은 2.1%에서 2.0% 수준으로 조정할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윤여삼 메리츠증권 연구위원은 “내년에 1.8% 성장 가능성을 내다보고 있다”며 “최근 11월 금통위 인하 가능성에 대한 얘기가 시장에서 많이 돌고 있으며 한은이 이번에 동결하더라도 (인하에 대한) 소수 의견이 등장할 것으로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이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의 취임을 전후로 글로벌 경제의 불확실성이 커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남강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미국의 자국우선주의에 따라 한국 기업의 대미 투자가 늘어나 내수(민간 투자)가 크게 위축됐다”며 “트럼프 집권으로 아메리카 퍼스트는 더 심화할 것이기 때문에 구조적으로 내수가 반등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라고 전했다.
내년 초 원·달러 환율에 대해서는 응답자의 66.7%가 1400원 미만을 예상했다. 구간별로 △1380원 이상~1400원 미만이 40% △1380원 미만이 26.7% △1400원 이상~1420원 미만 10% △1430원 이상 16.7% 등이다.
다만 금리 인하는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허인 카톨릭대 경제학과 교수는 “11월에 0.25%포인트 내린다고 해서 시장금리가 쉽게 내려가거나 해서 통화정책 효과가 당장 나타날 것 같지도 않다"며 “당장은 환율이 불안하기 때문에 12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를 보고 가는 것도 방법”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