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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기관 해제에도 족쇄 찬 출연연…완전 자율성·책임성 부여해야  

[국회 과학기술 혁신 통한 지속 성장 대토론회]

기술패권 시대에도 25개 정부출연연 무기력증

인재유출 심해 ‘연구소다운 연구소’ 도약 한계

출연연 질적 성과는 물론 양적 성과조차 미흡

대통령실·기재부·과기부 출연연 규제 없애고

“연구 몰두 생태계 조성하고 책임성 강화해야”  

국회도서관 대강당에서 26일 열린 ‘과학기술 혁신을 통한 지속 성장-출연연과 국회의 역할' 대토론회와 ‘2024년 국회 과학기술공로장 시상식’에서 국회의원들과 과학기술계 전문가, 수상자들이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 제공=과학기술정책연구회국회도서관 대강당에서 26일 열린 ‘과학기술 혁신을 통한 지속 성장-출연연과 국회의 역할' 대토론회와 ‘2024년 국회 과학기술공로장 시상식’에서 국회의원들과 과학기술계 전문가, 수상자들이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 제공=과학기술정책연구회




기술패권 시대 국가전략기술 고도화 등의 임무를 띄는 25개 정부출연연구원이 무기력증에서 좀처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출연연의 문화가 기존 제도와 관습에 찌들어 있고 감사 등에 짓눌려 ‘연구소다운 연구소’로 탈바꿈하기에는 뚜렷한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다. 출연연 내부에서는 “그동안 사사건건 정부의 간섭으로 인해 자율성·독립성이 훼손돼 마치 손발이 묶인 채 뛰는 형국이었다”고 하소연한다. 출연연에서 복지부동 문화가 만연하고 기회만 되면 대학 등으로 빠져나가려는 연구원들이 많은 게 이같은 맥락에서다.



특히 정부와 공공기관에서 발주하는 수천만원~수억원 단위의 연구과제 수주에 매달리게 하는 PBS(과제수주시스템, Project Based System) 시스템이 오히려 강화되면서 연구자들이 출연연 본연의 연구에 전념하기 힘들다는 비판이 무성하다.

이우일 전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부의장(전 과총 회장, 서울대 명예교수)은 26일 (사)한국과학기술정책연구회(회장 송철화)가 국회에서 마련한 ‘과학기술 혁신을 통한 지속적 성장-출연연과 국회 역할’을 주제로 한 대토론회에서 “우리나라가 이대로 주저앉느냐 앞으로 나가느냐의 기로에 서 있다”며 선도적 국가 연구개발(R&D) 체제로의 대전환을 강조했다. 그는 모험적 아이디어에 투자하고 신속하고 유연한 R&D 예산·정책 시스템을 갖추고 민관 협력과 국제 협력에 나서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우리 출연연은 과거 팽창사회에서는 과학기술 싱크탱크로서 추격형 R&D를 통해 국가 경제 성장에 크게 기여했다. 하지만 현재 저성장에 따른 제로섬 사회에서는 대학과 기업 사이에서 어정쩡한 입장에 처했다. 따라서 앞으로 수축사회에서 출연연은 집단과 개인 연구 사이의 균형을 이루며 도전적 연구를 선도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는 이 전 부의장의 분석이다. 그는 이스라엘의 한 벤처기업은 1만 8000m 상공에 작은 입자를 뿌려 태양에너지를 반사시킴으로써 지구온난화를 늦추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호주에서도 소금물을 공기 중으로 분사해 저지대의 구름을 밝고 크게 만들어 태양광을 효율적으로 반사시켜 바닷물의 온도를 낮추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 전 부의장은 “첨단기술 발전이 가속화하고 융·복합하는 추세에서 창의적 발상과 시도를 꾀해야 한다”며 “우리 출연연이 패스트팔로어(빠른 추격자)에서 퍼스트무버(선도자)로 거듭나 새로운 성공 방정식을 써야 한다”고 역설했다. 우리나라의 과학기술 정책이 곧바로 경제 정책과 궤를 맞추는 게 현실이지만, 선도국으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당장의 경제 성과에 연연하지 않고 미래 성장동력을 확충하는 데 매진해야 한다는 게 그의 신조다. 따라서 출연연에 국가가 원하는 전략 분야 등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도록 자율성을 부여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전 부의장은 “2019년도 이후 출연연을 포함해 국가 R&D 예산이 10조원가량 증가했다”며 “출연연의 경우 논문, 특허, 기술료 수입 등 양적 성과도 정체되고 질적 성과나 국제 성과가 미흡하다”고 지적했다. 올해 전체 예산이 5조 5000억원에 달하는 출연연은 지난 2022년 기준으로 논문 게재와 특허 출원·등록이 각각 9001건과 1만 2237건이었고 기술료 수입은 1254억원에 그쳤다. 이는 출연연에서 인재들이 맘껏 연구할 수 있는 생태계나 핵심 경쟁력을 갖추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게 그의 분석이다.

이 자리에서 송철화 한국과학기술정책연구회장은 “과학기술은 국가의 생존과 지속 가능성을 위한 핵심 동력”이라며 “글로벌 대변혁 시대에 선진형 기술개발 체계 구축에 필요한 법제를 정비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곽재원 아주경제 논설위원장은 “국가 차원에서 총력전을 다해 과학기술 정책과 전략을 펴야 한다”며 “기술패권 시대 과학기술이 국가 전략의 중심에 자리 잡아야 한다”고 했다.

국회도서관 대강당에서 26일 열린 ‘과학기술 혁신을 통한 지속 성장-출연연과 국회의 역할' 대토론회에서 과기계 등 전문가들이 토론하고 있다. /사진 제공=과학기술정책연구원국회도서관 대강당에서 26일 열린 ‘과학기술 혁신을 통한 지속 성장-출연연과 국회의 역할' 대토론회에서 과기계 등 전문가들이 토론하고 있다. /사진 제공=과학기술정책연구원


김명수 전 한국표준과학원구원 원장은 “올들어 출연연의 ‘공운법(공공기관 운영에 관한 법률)’ 해제로 인해 출연연의 자율성을 높일 수 있는 계기가 만들어졌다”며 “하지만 실질적 체감 효과가 미흡하고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관리 감독이 심화될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고 꼬집었다. 김 전 원장은 인재 유출로 골머리를 앓고 있는 출연연의 혁신을 위해 자율적·창의적 연구환경 조성, 수동적이고 경직된 조직문화 개선, 연구자들의 정년 61→65세 환원, 고경력 과학기술인의 지역사회 기여방안 모색을 강조했다.



성맹제 중앙대 연구부총장은 “출연연은 첨단 연구인프라를 갖추고 있고 대학은 연구인력이 풍부한 편”이라며 “대학과 출연연이 공동연구를 수행하고 출연연 연구자를 대학의 학연교수로 활용하면 효과를 거둘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중앙대도 출연연들과의 학연교류에 적극 나서고 있다고 전했다. 성 부총장은 7~10년간 100~500억원가량 투입되는 집단연구사업의 후속 지원 비율이 20~30%에 그쳐 연구 인프라가 일시에 매몰되고 연구집단의 시너지 효과가 떨어진다는 지적도 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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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혜원 대한여성과학기술인회장(KIST 미래융합전략센터 소장)은 “과거 출연연의 각종 위원회 성비 구성에서 여성이 30%가량 배정됐으나 어느새 남성 위주로 변했다”며 “인식 전환을 통해 여성, 청년, 외국인 인재를 적극 활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EU 과학 프로그램에서 모든 위원회에 여성 비율을 40% 이상으로 못박는 사례를 참고해야 한다고 했다.

고광본 서울경제 논설위원·선임기자는 “대통령실과 기획재정부·과기정통부 등이 출연연을 ‘연구소다운 연구소’로 거듭나게 하려면 완전한 자율성과 책임성을 부여해야 한다”며 “출연연의 공공기관 지정 제외에도 불구하고 연구와 인력 운용, 인사 등의 측면에서 여전히 족쇄가 많다”고 지적했다. 그는 출연연 연구자들이 잘게 쪼개진 연구과제들의 수주·수행에 내몰리는 경향이 심화되고 있다며 출연연 본연의 연구에 매진할 수 있도록 원점에서 PBS의 전면 재검토를 촉구했다. 고 위원은 국회에 대해서도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에서 방송 이슈로 인해 여야 갈등이 심각하다며 방송 분야를 특위로 분리해 상임위원들이 겸직하게 함으로써 돌파구를 마련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권성훈 국회 입법조사처 입법조사관은 “올 초 출연연의 공공기관 지정 해제 후속조치로 앞으로 과기출연기관법 개정안이 논의될 것”이라며 “도전적 R&D를 촉진하기 위한 입법 논의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현재 국회에는 출연연의 공공기관 지정 제외, R&D 예비타당성 검토 폐지, R&D 예산 배분·조정 체계, R&D비 세액공제와 함께 국가연구데이터·기업부설연구소·연구생활장학금·출연연 연구자 정년 등에 관한 법안이 발의돼 있다.

조선학 과기정통부 과학기술정책국장은 정부의 다양한 과학기술 진흥 정책을 설명하며 “정부는 출연연·대학·기업의 혁신 과학기술 생태계를 조성하기 위해 나서겠다”며 “국회에서도 적극적으로 협조해줬으면 좋겠다”고 요청했다.

국회 과학기술 대토론회와 국회 과학기술공로장 시상식 포스터.국회 과학기술 대토론회와 국회 과학기술공로장 시상식 포스터.


정치권에서도 과학기술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화답했다. 한국과학기술정책연구회 명예이사장인 안철수 국민의힘 의원은 “내년 1월 20일 트럼프 2기 출범을 앞두고 과학기술 패권전쟁이 더욱 심화되고 있다”며 “영원한 친구와 적도 없는 무한경쟁시대에 살아남는 방법은 초격차 기술을 갖는 것 외에는 없다”고 강조했다. 안 의원은 이어 국가 R&D 생태계와 관련, “실패하면 불이익을 받는 결과 중심의 감사 제도는 새로운 혁신을 어렵게 한다”며 “과정 중심의 감사가 이뤄져야 하며 실패가 다음 프로젝트에 불이익을 주지 않도록 해 연구자들이 도전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고 힘줘 말했다.

역시 한국과학기술정책연구회 명예이사장인 조승래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우리 R&D 과정이 기획부터 평가까지 모든 단계에서 행정 절차에 의존하고 있다”며 “정부가 출연연의 모든 것을 통제하게 되면 연구자들의 자율성을 제한하고 도전적인 연구를 저해하게 된다”며 과학기술 R&D 시스템의 대혁신을 주문했다. 이인선 국민의힘 의원, 최수진 국민의힘 의원, 황정아 더불어민주당 의원도 과학기술 혁신과 발전을 위해 국회 차원에서 적극 뒷받침하겠다고 힘줘 말했다.

한편 이날 대토론회에서는 과학기술 분야 대한민국 국회 공로상 시상식도 열렸다. 영예의 국회의장상은 나노 소재·공정 분야에서 초격차 기술 개발에 앞장서 온 정준호 한국기계연구원 책임연구원이 받았다. 국회 교육위원장상은 과학 영재 육성에 기여한 최은영 한국과학영재학교 교사(박사)가,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장상은 국방안보 전력 강화와 지식재산(IP) 제도 개선에 기여한 박민철 한국과학기술연구원 책임연구원이 각각 받았다.

국회 행정안전위원장상은 디지털트윈 재난 안전관리 플랫폼을 실용화한 조만영 가온플랫폼 대표가,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장상은 코로나19 팬데믹 당시 K 방역물품 공급 증대와 탄소중립 에너지 기술 개발에 나선 배충식 한국과학기술원 교수가 받았다.

국회 보건복지위원장상은 세계 최초로 이질균의 식물체 감염기전 규명과 식물 바이러스 이용 의약품 생산에서 성과를 낸 박정미 한국생명공학연구원 책임연구원이, 국회 환경노동위원장상은 혁신적인 토목용 자재와 생산 공정 개발을 달성한 백원옥 대일텍 대표가 각각 받았다. 국회 정보위원장상은 보안체계의 고도화와 융합전공형 교육 개발에 기여한 송철규 전북대학교 부총장이, 국회도서관장상은 여성과학기술 지원을 위한 과학기술인법 개정을 지원한 권지혜 한국여성과학기술인육성재단 박사가 각각 받았다.


고광본 논설위원·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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